오히려 찰떡
나는 허술하기 짝이 없는 엄마다. 아이의 시선에서, 내가 주로 연출하는 풍경은 이렇다.
1. 외출하려고 뒷자리에 앉았더니 운전석에서 “아 맞다 깜빡했다!” 외치며 뛰쳐나간다.
2. 어제 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 찾길래 찾아주었더니 오늘 “어 그거 어딨 더라?” 하며 찾고 있다.
3. 고구마 쪄준대서 놀면서 기다리는데, 방에서 “헉 냄비 타는 거 아냐?” 하며 뛰쳐나온다.
4. 궁금한 게 생겨서 물어보면 뭐 하나 속시원히 가르쳐 줄 때가 별로 없다.
나라고 그러고 싶겠니. 나도 다방면으로 꼼꼼하고 세심하게 아이들 케어를 해내는 엄마이고 싶었습니다만,
나도 잘 못 챙기는 나에게 아이 둘 키우기란 미션은 초보에게 프로경기에서 뛰라는 말과 같았다.
육아는 만만치 않다. 내 몫으로 생성된 하루 에너지를 엄청난 속도로 흡입한다. 흡입한다고 하여 뭔가 채워지는 것 같지도 않다. 엄청난 저효율 상품인 데다가, 주 양육자가 내뿜는 다양한 에너지와 미묘한 분위기까지 쉬지 않고 흡수 중이다. 그것도 매 순간. 흡입한 재료들은 언제 어떻게 발현될지 알 수 없다. 양분이 되어줄 수도 있고 일부는 내면의 빌런으로 존재할지도 모른다. 수상한 내 에너지와 분위기를 고스란히 물려주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내가 찾아낸 조력자는 책이었다. 책집사님을 모시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있었다.
첫째 6살 무렵. 학습지를 시킬 때가 되었나 싶어 학습지 회사별 릴레이 상담을 시작했다. 낮에는 그녀들의 입담에 침을 흘리며 듣고, 저녁마다 남편에게는 “여기가 괜찮을 것 같아”라고 했다. 그러던 와중 맘카페를 통해 책육아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읽을거리를 찾아 한 마리의 하이에나처럼 도서관을 떠돌기 시작했다.
아이의 관심사를 매의 눈으로 관찰하고 좋아할만 한 책을 공수해서 간식 먹을 때 툭, 놀다가 심심해 보일 때 툭, 아이눈이 닿는 어느 곳에 (몰래) 스윽 던져놓는다. 아이가 잘 푼 건지, 이해하고 있는지, 진도는 어디쯤인지 확인할 필요가 없다. 삼식이 모드로, 아이 설명을 들으며 맞장구 쳐주면 그만이다. 정말 삼식이 엄마인 나에게 더할 나위 없다.
”책은 재밌다 “ 이 다섯 글자만 알려주면 일단 성공이다. 정서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알면 더 알고 싶고 더 알수록 사랑하게 된다. 아이를 지켜보니 그렇다. 배움의 기쁨을 알아간다. 몰입의 경험도 쌓인다. 계획형이 아니라도, 건망증이 심하고 바쁜 엄마도, 스스로 무언가를 알아가는 기쁨을 알려줄 수 있다. 오히려 세세하게 다 챙겨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찰떡이다. 풍부한 감수성과 문장력 등은 덤으로 갖추게 된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이 모든 걸 다 갖춘 독서천재 라거나 하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엄마인 내가 줄 수 있는 역량 이상의 것을 책을 통해 흡수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 이상의 가치를 전달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온 책육아. 책을 그저 함께 읽을 뿐인 모든 풍경이 자연스럽다. 딱 내 취향이야. 떠밀지 않는 자연스러움 속에 싹트는 튼튼한 생각고리들을 요리조리 연결하고 있을 테지.
대뜸 첫째가 파리의 수도를 물어본다.
응? 프랑스 수도가 파리잖아? 세계사 지도 하루에 30번 보는 첫째가 이걸 헷갈렸나?
표정을 보고 알았다. 아. 시험에 들었구나.
못 미더운 엄마는 책 읽는 아이에게 가끔 시험에 들곤 한다. 엄마 그 정도는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