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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씨알 Feb 01. 2024

동물권의 윤리학적 기초

조제프 R. 데자르뎅, 『환경윤리』 5장 및 6장 (by 강규태)


 전통적인 서양철학자들은 인간을 제외한 동물은 도덕적 권리를 갖지 않는다고 보았다. 도덕적 권리는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동물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 특성으로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지성 혹은 영혼을, 칸트는 행위의 자율성을, 데카르트는 의식을 들었다. 이들이 볼 때 동물은 이런 특성을 갖지 않으므로 도덕적 권리가 없고, 따라서 인간은 동물에 대해 직접적인 도덕적 의무가 없다. 예외적으로 동물의 권리를 인정한 철학자로는 공리주의로 유명한 벤덤이 있다. 공리주의는 고통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행복을 최대한 증진시키는 방향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인데, 벤덤은 이 원칙을 동물에게도 적용한다. 동물도 고통을 느끼는 능력인 유정성(sentience, 쾌고감수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전통적인 철학의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동시에 동물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졌다. 동물권에 대한 현대 윤리학 이론은 크게 세 가지 갈래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피터 싱어로 대표되는 공리주의적 입장으로, 벤덤의 입장을 이어받아 동물이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기반으로 동물권을 옹호한다. 둘째는 톰 리건으로 대표되는 의무론적 입장으로, 동물도 그들 각자가 삶의 주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셋째는 폴 테이러로 대표되는 덕 윤리적 입장으로, 동물을 대하는 명시적인 규칙을 제시하기보다는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와 성품을 함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세 가지 입장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선 싱어는 공리주의 입장에서 고통을 느낄 가능성이 큰 동물은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그 존재에게 무엇이 이득이 되고 무엇이 해가 되는지, 즉 이해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해관계를 가진 존재들을 도덕적 고려 대상으로 대우해야 한다. 이런 기준에 따라, 싱어는 신경계가 충분히 발달하여 유정성을 갖는 동물들은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른 성별의 인간이나 다른 인종의 인간의 이해관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성차별주의·인종차별주의 인 것처럼, 동물들의 이해관계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종차별(speciesism)이라고 말한다.


 싱어와 달리 리건은 동물이 유정성을 갖기 때문에 도덕적 권리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조너던 스위프트의 풍자적 수필인 「겸손한 제안」은 이 점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이 수필에 나오는 "겸손한 제안"은 가난한 어린아이를 부자들의 식량으로 팔자는 것이다. 팔린 아이는 짧은 생애 동안 고통 없이 행복하게 살다가, 고통 없이 도살되어 부자들의 별미로 요리된다. 여기서 우리는 팔린 아이들이 고통을 겪지 않는다고 해서 이 행위에 도덕적인 문제가 없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컨대, 어떤 존재가 도덕적 권리를 갖는지 여부는 그 존재가 고통을 느끼는지와 별개이다. 대신 리건은 어떤 존재의 도덕적 권리는 그 존재가 삶의 주체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 단순히 생존하는 것 이상을, 그리고 단순히 의식적이라는 것 이상을 포함한다. 삶의 주체가 된다는 것은 ... 믿음과 욕망, 지각과 기억, 자신의 미래를 포함하는 미래에 대한 감각, 쾌락이나 고통이라는 감정과 함께 정서적 생활, 선호와 복지, 자신의 욕망과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행위할 능력, 순간순간의 시간을 넘어선 심리물리적인 정체성,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는 삶이 다른 존재를 위한 유용성과는 별개로 좋은지 또는 나쁜지 하는 개인적 복지 등을 갖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리건은 행위의 도덕성이 그 행위가 낳을 결과(고통의 증감) 때문이 아니라, 그 행위가 삶의 주체들에게 갖는 의무에 부합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므로 의무론적이다. 단, 리건의 의무론은 칸트의 의무론과는 다르다. 칸트는 인간만의 특성(이라고 그가 간주한) 자율성에 기반을 두고 인간만의 도덕적 권리를 옹호했다면, 리건은 삶의 주체이기만 하다면 다른 동물도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고 보았다.


 싱어의 공리주의든 리건의 의무론이든 실천적으로는 몇 가지 공통적인 함축이 있다. 우리는 축산업을 비롯한 동물 사육, 오락 목적의 사냥, 꼭 필요한 경우를 제외한 동물 실험을 그만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싱어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러한 행위들은 인간의 약간의 이익을 위해 동물들에게 막대한 고통을 안겨주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리건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행위들이 동물들을 삶의 주체로서 대우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부적절하다. 이처럼 싱어나 리건은 동물권을 뒷받침하는 설득력 있는논증을 내놓으면서 동물권 운동에 큰 기여를 했다. 

하지만 싱어나 리건의 입장이 갖는 한계도 있다. 우선, 이들의 입장을 적용했을 때 도덕적 권리를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는 동물은 매우 한정적이다. 싱어가 말한 유정성을 갖는 동물이나, 리건이 말한 삶의 주체로서의 동물은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가까운 포유류가 대부분이다. 인간과 매우 다른 생물학적 특성을 갖는 동물들, 예를 들어 굴은 싱어가 말하는 의미의 유정성을 갖거나 리건이 말하는 의미의 삶의 주체인지 불분명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동물들에게 함부로 대해도 무방한가? 그렇치 않아 보인다. 이 문제는 싱어나 리건이 도덕적 권리를 갖는 존재의 전형으로서 인간을 상정하고, 그와 유사한 동물에게 도덕적 권리를 확장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즉, 인간 외의 동물도 도덕적 권리를 갖는 존재로 포함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인간의 지위를 특별하게 여기는 인간중심주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 것이다. 다른 문제는 싱어나 리건의 입장이 일종의 개체주의로서, 개별 동물 개체의 도덕적 권리만을 인정하고 종 자체나 생태계 등의 도덕적 권리는 인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멸종위기종과 생태계을 보호해야 한다는 도덕적 직관을 가지고 있지만, 종 자체나 생태계는 고통을 느끼지도 않고 삶의 주체도 아니기에 싱어나 리건의 입장에서는 도덕적 고려의 대상으로 포괄하지 못한다. 이들의 입장을 극단적으로 적용하면, 우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조류의 마지막 생존자 10마리나 지구상에 수백억 마리가 존재하는 닭 중 10마리 중 어느 쪽을 특별 대우할 이유가 없다.


 싱어나 리건과 달리 동물권의 기초를 생명 그 자체에서 찾는 입장인 생명 중심 윤리도 있다. 이런 생명 중심 윤리는 구체적인 행동 지침이나 규칙을 제시하는 규범 윤리(normative ethics)보다는, 행위자가 도덕적인 태도와 성품을 함양하도록 해야 한다는 덕 윤리(virtue ethics)에 바탕을 두고 있다. 싱어나 리건의 입장은 규범 윤리에 속한다. 동물과 관련된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 싱어는 "동물의 고통 총량을 예측하여 그것이 최소한이 되게 행동하라"는 규칙을, 리건은 "동물이 삶의 주체인지 판단하고 만약 그렇다면 그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는 규칙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생명 중심 윤리는 사람들이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함양하게 하는 일에 중점을 둔다. 


 생명 중심 윤리의 초기 형태는 알베르트 슈바이처의 생명 외경 원리이다. 슈바이처는 사람들이 생명에 대한 외경, 즉 존경과 두려움이 결합된 감정을 느낌으로써 생명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게 된다고 보았다. 그가 보기에 도덕적으로 선한 사람이란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바탕으로 각 생명의 고유한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다. 물론 우리는 때때로 다른 생명을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마주친다. 그러나 선한 사람은 그런 결정을 내릴 때도 조심스럽게 숙고하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생명을 해하지는 않는다. 즉 슈바이처는 우리가 구체적인 규칙 없이도 자신의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의식하고 책임감 있게 다른 생명을 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아쉽게도 슈바이처의 생명 외경 원리는 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지지는 못했다. 이론적인 체계성을 갖춘 이론은 아니기 때문이다. 대신 생명 중심 관점을 이어받아 엄밀한 형태의 윤리학으로 발전시킨 학자는 폴 테일러이다. 테일러는 모든 생명이 고유한 가치를 지녔다는 점을 체계적으로 정당화 하고자 했다. 테일러의 생명 중심 윤리학은 모든 생명체가 자신만의 선(good, 좋음)을 갖는다는 점에서 출발한다. 즉, 모든 생명체는 무언가가 증진될 때 이득을 보고 좌절될 때 피해를 본다는 점에서 자신만의 선을 갖는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논제는 생물학으로 뒷받침된다. 


- 인간은 다른 모든 생명체와 같은 의미와 조건에서 지구 생명 공동체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 인간을 포함해 모든 종은 상호의존적 체계의 일부다.

- 모든 생명체는 자신의 방식대로 선을 추구한다.

-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 밖의 다른 생명체보다 더 우월하지 않다.


 모든 생명체가 자신만의 선을 갖는다는 점과, 위의 네 가지 논제를 받아들이면 다음 두 가지 규범에 이르게 된다. (1) 고유의 가치를 갖는 존재는 마땅히 도덕적 고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2) 모든 도덕 행위자는 고유의 가치를 지닌 존재의 선을 존중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다음과 같은 인간의 네 가지 의무가 따라 나온다.


- 불침해의 의무: 인간은 어느 생물체에도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런 의무는 다른 모든 의무와 마찬가지로 도덕적 행위자들에게만 적용된다. (우리가 유발하지도 않은 피해까지 방지할 적극적 의무를 갖지는 않는다.)

- 불간섭의 의무: 인간은 개별 생물체들이나 생태계, 생명 공동체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자신의 행위가 피해의 원인일 때를 제외하고는 생물체들이 자신의 목적을 실현하는 것을 도와야 할 적극적 의무는 갖지 않는다.)

- 성실의 의무: 인간은 야생동물을 기만하거나 배반하지 말아야 한다. e.g., 사냥이나 낚시를 하지 말아야 한다.

- 보상적 정의: 다른 생물체에 피해를 끼치는 인간은 그 생물체에게 보상해야 한다.     


 지금까지 동물권에 대한 현대의 세 가지 주요 윤리 이론을 간략하게 살펴봤다. 싱어의 공리주의적 입장에 따르면 동물도 고통을 느낄 수 있으므로 동물의 도덕적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 리건의 의무론적 입장에 따르면 동물은 삶의 주체이기 때문에 도덕적 권리를 갖는다. 이들의 이론은 동물권 운동에 큰 영향을 끼쳤지만, 인간과 먼 동물이나 종 자체, 그리고 생태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한편 슈바이처와 테일러에 의해 발전된 생명 중심 윤리는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 태도를 가진 사람은 구체적인 지침 없이도 생명을 대할 때 사려 깊은 선택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이론에는 서로 다른 장점이 있다. 우리는 싱어가 강조하는, 동물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고, 이러한 공감은 동물권 운동과 개개인의 실천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다른 한편 리건은 동물의 고통만 줄인다고 해서 모든 도덕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음을 잘 짚어준다. 그리고 생명 중심 윤리는 동물, 더 나아가 생명 일반에 대해 우리 삶의 태도 자체를 변화시키는 길을 보여준다. 이 이론들이 제시하는 논점과 사유 방식은 우리가 동물·생태계·자연 전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재성찰할 수 있게 해주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2023년 2학기 씨알 스터디팀인 '핵손해' 팀이 활동을 마무리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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