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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마음이 같아지는 때

(by 감기알약팀 일동)

by 씨알


한 학기 동안 우리는 기후위기 앞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공부했다. 함께 읽을 논문과 책, 잡지 등을 정하고, 이야기 나눌 주제들을 정리하면서 가장 신경 쓴 것은 먼저 우리의 모든 마음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는 것이었다. 이미 많은 자료를 통해 알려져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기후위기 앞에 놓인 사람들의 마음은 아주 다양하다. 우리는 특히 조지 마셜의 <기후 변화의 심리학>을 읽으면서 기후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여러가지 심리적 패턴에 대해 알아볼 수 있었다.




먼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 마음이 있다. 사람들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직면했을 때 위기를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정상적 상황으로 여기면서 현실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한 비정상적 상황이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재난 발생의 가능성과 그 영향을 과소평가하게 되는 이러한 심리적 패턴을 ‘정상성 편향’이라고 부른다. ‘아마 괜찮을 거야’, ‘그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은 아닐 거야’와 같은 재난 앞에서의 생각들은 기후위기를 적극적으로 부정하는 정치인, 과학자의 주장과 결합하면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을 비현실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것으로 폄하하거나 후순위로 미루고자 하는 흐름을 강화한다.


기후위기를 외면하는 마음도 있다. 북반부는 지리적/환경적으로 기후위기의 타격을 늦게 받는 지역에 해당하고,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사회적 인프라나 완충제가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북반구에 거주하는 이들은 기후위기를 실감하기 어려우며 이러한 변화를 주의 깊이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 외면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편 기후 위기 피해 당사자들은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를 정면으로 겪고 있을 때에도 그것을 외면할 수 있는데,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그 경험을 특정한 개념으로 언어화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후위기로 인한 여러 피해를 겪고 있던 노르웨이 바닷가 마을의 한 주민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사는 방식과 생각하는 방식은 서로 달라요. 우리는 그렇게 분리해서 생각하는 법을 배우죠. 그건 일종의 세상을 사는 기술이에요.”


이러한 외면 현상은 주로 사회적 침묵/의도적 회피의 형태로 나타난다. 에비아타 제루버블은 사회적 침묵/의도적 회피 개념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상적 대화에서 우리가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가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것만큼이나 큰 의미를 갖는다고 말한다. ‘기후위기’는 의사소통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회피되는 대표적인 개념 중 하나다. 사람들은 점점 더워지는 날씨, 이례적인 폭설, 들쑥날쑥한 기상 현상을 기후위기 개념을 통해 이해하기보다는 ‘날이 덥네’, ‘눈이 많이 오네’와 같은 비정치적 문장으로 표현하기를 택하고, ‘기후위기’를 당파적 개념으로 이해하면서 일상적 대화 상황에서 이를 언급하기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기후위기를 제대로 직면하고 슬퍼하는 마음도 있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년(16-25) 중 약 75%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출산 기피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기후변화 망상(우리의 모든 행동이 기후위기와 직결된다는 체감에서 오는 극심한 두려움)’, ‘솔라스탤지어(고유한 장소에 대한 감각이 붕괴되고 땅/집/고향/정체성이 사라지는 고통)’ 등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우리는 기후위기 앞에서 다양한 종류의 마음을 갖게 된다. 무기력감, 우울감, 저항심, 외면하고 싶은 욕구, 사실이 아닐 거라는 느낌 등 설명할 수 없는 많은 종류의 느낌들이 우리들의 마음 속에 들끓고 있다. 내게 들었던 질문은 이런 것이었다. 우리가 엇비슷한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이렇게나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나 다양한 마음들이 우리 사회 안에 들끓고 있는데 우리는 어떻게 함께 행동할 수 있는 걸까? 우리가 어떻게 더 나은 미래로 갈 수 있는 걸까? 이런 고민이 들 때면 항상 떠오르는 글 중 하나가 신형철 평론가의 <느낌의 공동체>다.


“나는 네가 커피 향을 맡을 때 너를 천천히 물들이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일곱 시간을 자고 눈을 떴을 때 네 몸을 감싸는 그 느낌을 모르고, 네가 좋아하는 가수의 목소리가 네 귀에 가닿을 때의 그 느낌을 모른다. 일시적이고 희미한, 그러나 어쩌면 너의 가장 깊은 곳에서의 울림일 그것을 내가 모른다면 나는 너의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 것인가.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나와 너는 대체로 타자다. 나는 그저 '나'라는 느낌, 너는 그냥 '너'라는 느낌.


그러니까 스터디를 시작하던 당시에 나는, 나와 당신이 설령 어떤 면에서는 비슷하더라도 결국 가슴 깊이 느끼고 있는 것이 다르다면 희망은 없을 것 같다는 허탈함, 느낌이라는 차원에서만큼은 나도 당신을, 당신도 나를 명확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허무함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한 학기 동안 우연히 공부하기 시작한 ‘정동’ 개념을 통해 나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A가 (비인간 존재를 포함하여) A 아닌 존재와 맺게 되는 실존적인 관계는 일종의 사건으로서, A에게도, A 아닌 존재에게도 변화를 가져온다. 이때 발생하는 변화 중 하나가 정동의 발생이다. 정동이란 무엇일까. 정동은 “보살피고 아끼고 행동하고 이행하고 움직이고 접촉할 때 드는 심리 에너지의 흐름”, 즉 관계를 맺을 때 우리 사이에서 생성되는 느낌이다. 관계를 맺고 있는 자들을 가로지르며 발생하는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A가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기후정의행진에 나가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온 수많은 나 아닌 존재들을 마주했을 때, 그곳의 온도, 냄새, 색채, 몸짓, 표정, 이미지 등은 느낌이 되어 A에게, 그리고 A 아닌 존재들에게 전달될 것이다. 광장에 나온 사람들은 관계 속에서 어떤 느낌을 공유하게 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행동하기 위해 나왔다는 안도감, 기후위기가 정말로 오고 있다는 불안감, 함께 목소리를 높일 때 드는 해방감 등의 수많은 느낌은 A 안에서 생성된 A만의 느낌이 아니라, 공유된 에너지로서의 느낌이다. 시원한 바람이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모두의 머리카락을 헤집고 가는 것처럼,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의 마음에는 비슷한 느낌이 불어오는데, 이러한 소용돌이를 정동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정동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관계이다. 실존적 관계가 사라진 곳에서는 정동이 발생하지 않으며, 반대로 관계가 만들어진 곳에서는 우리를 하나로 묶는 느낌, 정동도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정동은 우리를 함께 새로운 곳으로 이끌어간다. 그래서 나는 정동에 대해 공부하면서 신형철 평론가가 느낌이라는 층위에서 너와 내가 대체로 타자라는 글 아래에 바로 이어 적은 문단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느낌의 세계 안에서 드물게 발생하는 사건일 것이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명확히 표명될 수 없는 느낌들의 기적적인 교류, 그러니까 어떤 느낌 안에서 두 존재가 만나는 짧은 순간.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공부를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너와 내가 관계를 맺을 경우 너의 마음과 나의 마음이 순간적으로 같아질 수 있다는 것, 느낌이라는 것이 내 안에서, 너의 안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그 관계 안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로 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내 안에 ‘너’가 많아질수록, 느낌의 세계에서 서로를 만난 경험이 누적될수록 홀로일 때 분화되어 있던 수많은 마음들이 함께 같아질 수 있을 거라고.


얼마 전 친구는 하루 종일 침대 속에 박혀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내게 “이럴 때일수록 함께 있어야 해”, “밖으로 나와야 해”라고 말해주었다. 겨우 몸을 일으켜 목 속으로 찬 공기를 들이키고, 방학이 시작된 이래로 한 번도 찾지 못했던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의 제목들을 중얼대보고, 친구가 만들어온 식사를 함께 나누어 먹으면서 나는 나 혼자 방 안에 머물러있던 동안 나를 조여오던 나 혼자만의 느낌들을 잊어버리고 나 아닌 것들과 연결되면서 생성된 느낌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나의 바깥으로 나오는 것이다. 나의 바깥을 적극적으로 상상하면 상상할수록, 특히 나의 주변으로부터 멀리 가면 멀리 갈수록, 당연하게도 내 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새 용기와 상상력이 생겨난다.



(이 글은 2024년 2학기 씨알 스터디팀인 '감기알약' 팀이 활동을 마무리하며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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