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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Nov 16. 2022

19)기승전술,세라비!
起承轉酒,C'estLaVie!

072)그리운 분 찾아드립니다.

072)그리운 분 찾아드립니다.-눈물소주


지가 연예인 이냐, 헐리우드 팍이라니. 웃겨.


“팍사장 와이프랑 나하고 엄청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결혼 반대를 했더니, 나하고 절교하고 둘이 결혼했어요. 팍 사장에게 내 폰번호 알려주고, 와이프에게 전해주라고 해줘요. 갑돌이, 아니, 헐리우드씨가 내 친구마저 세뇌시켜서 20년이 다 되도록 나를 미워한다면 전화를 안 할 테고.”


며칠 안 있어 갑순이에게서 전화가 와서 만났다. 친구는 누구보다도 행복한 듯했다. 20여 년 전보다 더 기품있고 우아해보였다.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충만한 사랑 속에 있는지, 핸드백 구두 장신구들도 고가의 명품들이었다. 


갑순이와 결혼한 갑돌이는 애초에 나하고 동아리 활동을 같이 했었다. 


나는 작가지망생이었다. 내가 쓴 시나리오로 실험적인 단편영화라도 만들어보려고 영화모임에 가입했었고, 갑돌이는 즉석에서 메모지에 끄적거린 시나리오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지망생이었다. 


우리 모임에는 미모를 뽐내는 여자 연기지망생들도 가입했는데 갑돌이는 그런 여자들과의 연애가 동아리 가입 궁극의 목적인양 행동했다. 


그 즈음 갑돌이는 단편영화제에 출품할 영화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나에게 연기자로 출연을 부탁했다. 갑돌이의 여친들인 연기자 지망생들은 아직 데뷔한 프로도 아니면서 높은 개런티를 요구해서 섭외를 못했고, 나처럼 연기자지망생도 아닌 작가지망생을 용도 변경하여 출연시켰다. 


더구나 이번 영화의 여주인공은 예쁠 필요가 없다는 모욕적인 말도 거르지 않고 했다. 


옛날 사진첩 어딘가를 찾아보면 메가폰을 잡고 영화를 찍는 갑돌이의 모습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는 내 모습이 동시에 찍힌 사진이 분명 있다. 


나는 양수리 풀밭에서 실연당한 여자가 자살을 암시하는 연기를 해야 했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두물머리 강가에서 강소주를 마시며 흐느껴 울어야 했다. 


어떤 상황에서 어떤 연기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르고 멋 내느라 흰바지를 입고 갔다가 진흙물이 들어서 바지를 버렸다. 


영화촬영현장/사진출처:네이버

털털거리는 시외버스타고 가서 민박집에서 묵고 꽁보리밥에 된장 비벼먹으며 고생했는데, 일당도 못 받았다. 나중에 연극표 두 장 받았다. 


촬영 일정이 끝나고 철수하기 전날 민박집에서 소주와 막걸리를 마시면서 양은 주전자가 다 찌그러지도록 두드리고 악을 쓰고 놀았던 기억만은 참으로 선명하고 신선하다. 


존재하지도 않는 시나리오를 썼다는 작가가 소주를 마시며 하늘에게 종주먹질을 하며 울부짖었다. 젊음의 눈먼 사랑을 한탄하는 것인지, 여자의 이름을 외치며 난장질을 쳤지만 아무도 그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인연이 닿으려고 이런 일이 일어났겠지만, 내가 갑순이 하고 만나는 자리에 갑돌이가 우연히 나타났고 자연스럽게 합석이 되었다. 


넉살좋은 갑돌이가 열심히 갑순이에게 약장수처럼 작업을 걸더니, 어느 날 둘이 결혼하겠다고 했다. 세상에나, 나는 둘이서 사귀는 줄도 몰랐었다. 


갑돌이는 내 친구 갑순이에게 어울리는 짝이 아니다. 적어도 내가 판단하기에는 그렇다. 


갑돌이가 남자사람 친구라면 거의 만점짜리이다. 하지만 남편감으로는 빵점이 아니라 마이너스 점수이다. 결격사유가 많다. 


갑돌이는 한마디로 한량 기질이 농후해서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유머러스하고 재치도 있다. 술자리분위기 메이커였다. 키가 작고 좀 느끼한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이목구비가 제자리에 크막하게 자리 잡았고 아버지도 부자였다. 하지만 공부는 안하고 연애만 했는지 학벌이 약했다. 


갑돌이가 울 친구 갑순이를 만나기 전까지 자랑삼아 내게 보여준 여자 친구만 예닐곱 명은 된다. 갑돌이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분명 여자문제로도 속깨나 썩일 것이다. 


그런 저질스런 놈에 비해 울 친구 갑순이는 순진하고 착했다. 규율이 엄한 집안에서 온실의 화초처럼 자라서 남자하고 데이트를 해본 적도 없다. 


내가 울 엄마에게 갑순이를 묘사 설명하면 “어떻게 그런 애가 니 친구니?” 라고 하신다. 우리 엄마는 나처럼 조신한 딸 곁에 더욱 조신한 친구들이 한동아리 모여 있는 줄 모르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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