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1)그리운 분 찾아드립니다.-눈물소주
[그리운 분 찾아드립니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내 시선이 닿는 높이에 붙어있는 전단에 쓰인 글의 내용이다. 밑 부분에는 개인 휴대폰 전화번호가 붙어있었다.
고향친구와 오랜만에 만나서 ‘그리운 첫사랑 찾기’에 관해서 수다 삼매경을 하느라 배를 붙잡고 뒹굴면서 웃어서 힘이 다 빠진 상태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수십 년 동안 지겹게도 친구였기 때문에 그녀의 첫사랑 두 번째 사랑 세 번째 사랑 네 번째 사랑까지도 다 들어 알고 있는 터였다. 그녀는 찾을 만한 사랑은 다 찾아봤고 더 이상 찾을 사람은 없다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누구? 내가 모르는 첫사랑도 있어? 첫사랑 원, 첫사랑 투, 첫사랑 쓰리, 그리고 그 후로 지나간 서너 번의 사랑까지. 내가 이름까지는 기억을 못해서 번호를 매겼지만.”
“니가 내 역사를 다 아냐?”
“그럼 모르냐? 아홉 번째 사랑이 사흘 전에 생겼다면 모를 수 있지.”
“얘들아, 시답잖은 얘기 그만하고. 지금, 우리가 찾아야 할 사람은 갑순이 아니니?”
좌중의 대화를 내가 끊었다. 진짜로 나는 갑순이가 그리웠다.
갑순이는 거의 20년 동안 연락처를 차단하고 숨어버린 친구이다. 그녀가 잠수를 탄 까닭은 우리가, 그중에서도 특히 내가 그녀의 결혼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이다. 갑순이 이름이 언급되자 우리 모두는 갑순이와의 추억을 회상하느라, 갑자기 센티멘탈해졌다.
“맞아. 우리 갑순이, 누가 소식 아는 사람 있어?”
“소식 알면 진즉에 전했지. 갑돌이는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나는 친구의 ‘그리운 첫 사랑’이 아니라 ‘그리운 갑순이’를 찾기 위하여 휴대폰 카메라로 그 전단을 찍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 전단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요즈음도 그리운 사람을 못 찾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현시대는 SNS가 과하게 발달하여, 숨바꼭질이라도 하려고 일부러 꼭꼭 숨은 사람이 아니면 다 찾아진다. 죽었어도, 이민을 갔어도, 와병 중이어도, 심지어는 교도소에 영어의 몸으로 있는 사람도 소식은 알 수 있다.
하지만 갑순이는 어떠한 SNS 활동도 안하는 오로지 전업주부인지 몇 번 인터넷을 뒤져봤지만 검색의 그물에도 안 걸렸다.
영화에 관한 일을 할 것 같은 갑순이의 남편 박갑돌을 수소문해봤다. 어렵지 않게 찾아졌다. 이름도 ‘Hollywood Park’으로 바꾸었다.
개명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 나은 인생을 위해 개심회개하려는 인상이 풍기는데, ‘헐리우드 팍’이라는 개명은 갱생의 삶이 아닌 한술 더 진보한 바람둥이임을 만방에 알리려는 혐의가 짙어 보였다.
지가 연예인 이냐, 헐리우드 팍이라니. 웃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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