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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Apr 23. 2022

(4)창문너머 에펠탑이 보인다

4. 오페라 가르니에, 스타벅스1호점 

4. 오페라 가르니에, 스타벅스1호점


나의 파리여행에서 꼭 실행하고 싶은 세 번째 버킷리스트는 ‘칵테일바’이다. 

세계유명 바텐더들이 뽑은 ‘세계 50대 핫바HotBar’에 이름이 올라있는 칵테일바가 숙소에서 지하철로 30분 이내의 거리에 있다.


첫째 버킷리스트는 실행했고, 두 번째는 딸에게 넘겨주고 세 번째를 감행할 차례이다. 하지만, 사위가 급한 일이 생겨 먼저 돌아가야 하는 돌발사태가 발생했다. 아이를 놓아두고 딸과 내가 외출할 여건은 안 된다. 나는 파리의 술집을 밤에 혼자 방문할 용기도 없고, 물론 말도 안 통한다. 부득이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한다.  


그러나 아아, 다시 파리에 올 수 있을까. 내가 리도쇼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더구나 그 칵테일바를 방문할 행운의신을 영접할 수 있을지. 


“얘, 10년 후에 내가 울 애기에게 파리 여행 같이 하자면, 따라와 줄까? 그 때는 울 애기가 나의 보호자가 되어서 나를 에스코트해야 할 만큼 나는 더 늙고 더 기력도 빠질 거야. 사춘기 한가운데 있는 울 애기는 여자친구이외에 눈에 보이는 것이 있을까. 할머니랑 놀아준다는 지장 찍은 각서를 현시점에서 받을까?”


내 질문에 딸아이는 질문으로 공격한다. 나의 아이에 대한 짝사랑이 극으로 치닫고 있음을 간파한 질문이다. 

“엄마, 우리 아이가 하버드대학이나 프린스턴대학에 합격하면 입학선물로 벤츠 승용차 한대 쏠 거야?”


나는 그 순간 “오냐, 까짓 벤츠, 한 대 쏘마” 라고 손을 번쩍 들고 외치고 싶었다.  


참고로 하는 말이지만, 내 주위에는 하버드나 프린스턴 학부에 들어간 아이들이 제법 있다. 그래서 나는 ‘자식은 내 자식이 커 보이고 벼는 남의 벼가 커 보인다’는 속담대로 내 손자는 그러한 세계적인 명문대학에 편하게 합격하리라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벤츠 한 대 쏘겠다.’고 편하게 약속은 못했다. 


약속 못한 첫 번째 이유는, 나는 그다지 부자가 아니다. 둘째로 친손자가 아직 태어나지 않았다. 친손자가 하나 둘 셋쯤 생길 지도 모른다. 나의 장자에 장자도 물론 하버드대학에 들어갈 것이다. 하지만 손자마다 벤츠 승용차를 사 줄 경제적 여력은 지금으로서는 없다.  


아아, 로또 복권이 맞아줄까? 내일부터 복권을 열심히 사자. 보유한 주식이 100배 올라줄까. 아니, 10년 후엔 날렵한 전기차가 상용되고 가격도 반 가격이 된다던데, 오늘 당장 적금이라도 들어둘까. 


파리-Les Grands Boulevards 버스커 앞에서 킥보드를


파리에서의 마지막 날, 칵테일바에의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던 차에 파리의 스타벅스 1호점은 우연히 발견되었다. 아이에게 선글라스와 손목시계를 사주려고 하루 종일 백화점등지로 발품을 팔았던 터라 잠시라도 휴식이 필요했다.  


오페라 가르니에 계단에 주저앉았다. 석양이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흐르는 노을에 먼 건물은 황금빛이 되어가고 그 반영에 하늘까지 술에 취한 듯 불그레해졌다.  


오페라 가르니에 광장에서는 길거리 공연을 하는 버스커가 모자를 앞에 놓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씨잉 킥보드를 타고 아이는 긴 그림자를 달고 연주자 앞을 가로 지른다. 


오늘은 어디에 가서 저녁을 먹을지 아니면 간단하게 시장을 봐서 밥을 해먹을지, 음식점과 슈퍼마켓 등을 검색했다. 오페라 가르니에에서 큰길을 건너면 파리의 스타벅스1호점이 있다는 것이다. 기다리는 행렬이 건물 밖으로 까지 늘어져있어서 커피 한잔을 손아귀에 쥐려면 30분이상은 족히 걸린다는 정보를 알고 갔다.  


하지만 우리를 환영한다는 듯 입구에서부터 문이 환하게 뚫려있었다. 딸이 앉을 자리를 잡을 테니 엄마는 음료를 사오라고 했다. 


나도 세계 어디를 가든지 커피는 주문할 수 있다. 그저 ‘커피’라고 주문하면 되니까. 그리고 컵의 사이즈를 규격하는 그랑데, 라지, 미디움 쯤은 나도 발음할 줄 안다. 아메리카노 커피와 과일음료 한잔을 시켰다. 


한국의 슈퍼마켓이나 과일가게에는 바닥에서 50센티쯤 높이의 진열대에 입안에 군침이 도는 초콜릿이며 젤리가 난짝 올라앉아있으면서 아이들을 유혹한다. 물건을 결제하려고 발길을 멈춘 계산대 바로 옆의 진열대이다.  


한국에서 살 때에도 내가 과일가게나 슈퍼마켓에 간다고 하면 아이는 할머니 치마꼬리를 잡고 쫒아 나왔다. 그럴 때마다 초콜릿을 집어드는 아이를 제지할 능력은 없어서, 과일가게 점원에게 야단을 쳤다. 


“이보세요. 어른이 멈춰서있는 계산대 옆, 애들 눈높이에 딱 맞춘 진열대에 쬬꼬렛을 진열해 놓으니까, 아이가 손을 대잖아요. 아이의 눈에 안 띄고 손에 안 닿는 높은 곳으로 이동진열하면 안 될까?” 

했더니, 야채가게의 총각이 싱글싱글 웃으며 “영업방침입니다.” 라고 한다. 




그 영업방침은 파리의 스타벅스에도 어김없었다. 제 눈높이의 유리진열장 안에 들어있는 초콜릿을 본 아이는 한 손은 할머니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초콜릿을 가리키며 응석을 부린다.  


“조기 조 맛있게 생긴 쬬꼬렛 한 개만 주세요.” 

라고 영어로 대충했는데, 아르바이트 점원은 프랑스말만 들으려 한다. 조급해 보이는 뒷사람은 날더러 계산대에서 비켜나라 하고, 아이는 초콜릿을 손에 넣기 위해 바닥에서 뒹굴 기세다. 


“아가. 함미가 프랑스 말을 한마디도 못해서 주문이 안 돼. 자아, 함미가 신용카드 줄 테니 엄마보고 주문을 해달라고 해. 함미가, 울 애기, 초콜릿 한 개는 먹도록 엄마에게 허락 받아줄게. 알았지?”

나는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딸은 아이에게 아예 단맛을 차단했다. 초콜릿도 콜라도 절대 금지이다. 그렇지만 할머니들은 손자에게 초콜릿도 맛보게 해주고, 콜라도 한모금은 마시게 한다. 디지털 게임도 마찬가지이다. 


어렸을 적 맛보았던 단맛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다. 황홀하고도 행복하다. 아마도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나, 빨강 색연필로 100이라는 숫자 아래 가로로 두 줄이 길게 그어진 시험지를 받았었다. 100점의 노력의 대가로 상으로 탔던 눈깔사탕이 눈앞에 선하다.  


탁구공만한 눈깔사탕을 입안에 밀어 넣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서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손바닥에 꺼내놓고 입안의 단물을 삼키고, 끈적끈적 하던 손바닥을 핥아먹고, 다시 입안에 넣고 굴리던 맛있는 추억이라니. 


아이는 드디어 바삭한 비스킷에 초콜릿을 씌운 제 손바닥만 한 쿠키를 얻었다. 개선장군 같은 승리의 미소를 띠고 코를 벌름거리며 할머니를 바라본다. 초콜릿을 혀로 쓰윽 핥아 본다. 더 오래 즐기려고 베어 먹지 않고 핥아 먹는다. 


스타벅스 오페라 가르니에 점은 17세기에 지어진 건물 1층에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크리스털 샹들리에와 웅장한 대리석 기둥으로 인해 제국의 위엄을 과시하는 베르사유 궁전을 모방한 느낌이 든다.  


어느 비밀의 문이 열리고 신데렐라, 아니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가 보석으로 치장한 드레스자락을 끌고 나타날 것은 분위기 이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커피점일 것 같다.  


실내 기둥은 외관과 동일한 대리석이고, 벽은 은은한 파스텔 톤의 푸른색 계열이다. 19세기에 그려진 천장 벽화도 그대로 되살렸다. 벽의 모서리와 장식으로 걸린 그림의 테두리에도 모두 금박을 입혀놓았다.  


금발의 벽안 남자들이 커피 잔과 노트북을 앞에 두고 앉아있다. 나도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놓고 앉았다. 나는 중세 유럽의 공주가 되었다. 세 번째 버킷리스트였던 칵테일바를 탐험하지 못한 억울함이 반은 보상받았다. 


“함미, 우리 에펠탑에 올라가야 해요.”

가봉으로 돌아간 아이가 영상통화 화면에 떴다. 나는 책상 앞 벽면에 에펠탑 사진을 걸어놓았다. 추억을 회상하기 위해서이다. 휴대전화에는 파리에서 내가 사준 선글라스를 끼고 시계를 보는 아이의 모습을 바탕화면으로 깔아놓았다. 


“에펠탑 밑에서 살다 왔잖아. 낮에도 밤에도 맨날 맨날 에펠탑만 보고 있었잖아.”

“아니요. 우리는 에펠탑 전망대에 올라가지 않았어요. 파리에 가야 해요. 빨리 비행기타고 만나요” 


듣고 보니, 아이의 말이 맞다. 우리는 파리에서 나름 새벽부터 서둘러서 에펠탑 밑에 도착했는데도 대기 행렬의 긴 띠에 질려서 매번 유람선을 타러갔거나 룩셈부르크 공원으로 갔거나 베르사유 궁전으로 발길을 돌렸었다. 


“오냐, 울 애기, 파리 다시 가자. 코로나 끝나면. 꼬옥.” 

지구 반대편에서 아이도 새끼손가락을 들어 올려 약속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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