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0년 전에 파리에 온 적이 있고 그때 리도쇼를 관람했었다. 여행상품에는 포함되지 않아서 따로 관람료를 지불했는데, 세계 3대 쇼 중의 하나라는 명성대로 카바레 쇼의 진수를 맛보았다.
그날 나는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다. 적어도 10년 내로 리도쇼를 다시 보러 오리라고. 리도쇼가 그때 까지 지속 공연된다면 말이다.
파리의 리도쇼는 1946년에 탄생했다. 현재 진행 중인 쇼, ‘파리의 기적Paris Merveilles’는 2015년 이래 상연되고 있으며, 리도 역사상 27번째 쇼다. 유명한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에서 연출가로 오랫동안 활동한 이탈리아 공연 기획자 ‘프랑코 드라고네 Franco Dragone’ 사단이 참여하여 한층 예술성을 끌어 올렸다고 광고한다.
세계 최고70 여명의 배우들이 600여벌의 화려한 의상으로 펼치는 색깔의 물결과, 첨단 기술을 응용한 무대장치, 연극, 조명, 무대, 의상, 디자인, 음향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세계 최고 수준의 종합 쇼란다.
마법과도 같은 장면이 매 순간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파리지앵들도 꼭 보고 싶어 하는 최고의 카바레 쇼, 무대와 가까운 VIP석은 프렌치 스타일의 정식 코스 요리도 제공된다.
광고문안에는 공개되어있지 않지만 리도쇼를 언급할 때면 귓속말로 들려주는 비밀정보가 있다.
모든 무용수는 백인이며, 여성무용수 두 명중 하나는 젖가슴을 드러낸 토플리스로 출연하는데, 가슴을 인공으로 부풀린 무용수는 없다.
그러나 어린이도 입장이 가능하다니, 어린이는 아련한 향수의 엄마의 젖통으로, 성인 남성은 성적매력의 심벌로, 아름다움과 예술성만 감상하시라는 것 같다.
나는 지금 10년 만에, 리도쇼와의 약속을 지키러 파리에 왔다. 리도쇼는 예매를 기본으로 하지만 관람하고자 염원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길이 열려 있다. 파리 현지인보다 외국인에게 훨씬 인기가 있기 때문에, 예매를 하고 스케줄이 어긋나는 사람이 많아서 순간순간 취소표와 암표가 인터넷과 극장의 매표소에 나온다.
리도를 만나러가는 나의 계획은 사위에게 제 아들을 맡기고 딸과 내가 광 내고 멋 내고 숨 막히게 스릴 있는 밤마실을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아이가 문제였다. 아이는 엄마와 아빠 없이 할머니와 둘만의 은밀한 시간을 간절하게 원한다. 그 은밀한 시간에 할머니의 태블릿 속의 디지털 게임을 만나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젊은 엄마들이 제 자식을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맡기면서 촘촘하게 엮인 금기의 그물을 덮는다.
단 음식과 짠 음식 금지, 유튜브 시청금지, 디지털 게임 금지이다. 식탁에 단정하게 앉혀서 싱겁고 밍밍한 유기농채소로 요리한 음식을 먹이고, 정답게 같이 공놀이나 레고 블록 쌓기, 혹은 도미노 놀이 등을 하다가 저녁8시면 씻기고, 사랑의 목소리로 동화책을 읽어주고, 일찍 재우라고 한다.
아이는 할머니의 밥 먹자는 소리에 얼른 식탁에서 달아나 장난감을 늘어놓은 곳으로 간다. 나는 기차놀이를 하는 아이를 무릎걸음으로 쫓아다니며 밥을 한 술 한 술 떠먹여야 한다. 아이는 밥을 입안에 머금고 있거나, 심지어는 목구멍으로 넘기지 않고 뱉어내기 까지 한다.
달려드는 숟가락을 피하며 도미노 쌓기를 한다. 아이가 세워놓은 도미노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곡예 하듯이 밥을 떠먹여야 한다. 휴우, 힘들다.
그러면 나는 딸이 안보는 틈을 타서 유기농채소와 유기농 소고기로 이루어진 음식위에 짭조름한 햄과, 소금과 들기름을 매겨 구운 김을 얹어 먹인다. 그래도 내가 고봉으로 밥이 얹힌 숟갈을 들고 다가가면 아이는 도망치기 바쁘다.
밥 먹이기의 최후의 수단으로 나는 얼른 컴퓨터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만화영화거나 자동차가 경주하는 화면을 열어준다. 어젯밤에도 아이는 한밤중에 엄마가 잠 들었음을 확인하고 할머니 방으로 건너왔다.
“함미. 나 함미랑 잘래요.”
아이의 말을 ‘할머니를 좋아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아이는 엄마 몰래 할머니의 태블릿으로 동영상도 보고 게임도 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아이의 연기에 속고 있는 줄은 나도 다 안다. 그러나 우리는 방문을 잠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슈퍼마리오랑 놀았다.
내가 리도쇼에 가고 싶은 마음보다, 아이가 슈퍼마리오를 만나고 싶은 맘이 더 클 것 같다. 할머니치마꼬리만 붙들고 졸졸 쫓아다니는 아이의 심중을 할머니가 어찌 모르겠는가. 딸의 생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사실도 때마침 떠올라주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맘을 다잡아먹고 딸에게 말한다.
“어미야, 네 생일선물로 이 엄마가 니들 부부에게 리도쇼를 쏘마. 내가 애기를 볼 테니, 다녀오너라. 와인 반병이 딸린 디너와 쇼 관람에 1인당 20만원이 넘는다. 파리에 올 기회도 생각처럼 그리 쉽지 않을 것이고, 아이 떼어놓고 너희 둘만 즐길 기회도 자주 오지는 않을 것이다. 어여 다녀 오니라. 내 맘 변하게 전에.”
버킷리스트 하나가 10년 뒤로 냉큼 밀린다. 쏟아진 말을 얼른 주워 담고 싶다. 말 떨어지기가 바쁘게 딸은 어깨가 드러나는 드레스를 찾아 입는다. 사위는 여행가방에서 꺼낸 꾸깃꾸깃 주름진 턱시도에 스팀다리미를 들이댄다.
건강하고 젊은 딸과 사위가 성장을 하고 다정하게 짝지어 나가는 모습은 아름답다. 나에게도 분명 저렇게 찬란하게 빛나던 젊음의 시절이 있었으련만, 딸은 내가 원래 엄마로 태어났고 아이는 할머니는 원래부터 할머니인 줄 안다.
딸과 사위에게 생일 선물로 그 비싼 리도쇼를 상납하여 등 밀어 내 보내놓고, 나와 아이가 한 짓은 뻔하다. 딸과 사위가 현관문을 닫는 순간, 우리는 태블릿에 게임을 내려 받는다.
파리의 와이파이는 굼벵이처럼 느리다. 관광객이 와글와글 몰려있는 에펠탑 근처라서 와이파이가 체증을 빚는다. 어제는 에펠탑 밑에서 유람선 승선표를 핸드폰으로 예매하려했다. 화면에는 동글동글 돌아가는 해바라기만 떴고 도무지 접속이 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내가 하루에 1만원이 넘는 데이터서비스를 신청했다. 핫스팟으로 데이터를 나누어줘서 간신히 유람선 승선표를 예매했다.
‘무제한 기가 데이터 사용’으로 결제를 하는 동안도 아이는 못 참겠는지 울음을 터뜨리려 한다. 뱅글뱅글 돌아가던 해바라기 꽃이 사라지고 드디어 슈퍼마리오의 익살스런 얼굴이 나타나자, 아이의 얼굴에서 환한 웃음꽃이 핀다.
아이는 화면 속으로 풍덩 잠수한다. 몰두한 나머지 폭탄이 터진다한들 들리지도 않을 것이지만 나는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울 아가, 너 때문에 할머니가 서울에서부터 보고 싶어 하던 리도쇼가 날아갔어. 그러니까 울 애기는 할머니에게 리도쇼를 변상해야 해. 알았지? 나중에 할머니랑 리도쇼 보러오는 거야? 응?”
“네”
포크에 찍어 입에 넣어주는 파인애플을 고개는 돌리지 않고 입만 벌려 사흘 굶은 새끼참새처럼 받아먹으며, 할머니의 말은 못 들었을 것이지만 대답은 잘한다. 아이는 제 엄마 아빠가 한밤중에 돌아와서 현관문을 여는 순간까지 마려운 오줌도 참으며 게임의 주인공 슈퍼마리오와 놀았다.
리도쇼는 어린이도 입장 관람이 가능하다. 그러나 어린이는 와인은 마실 수 없다. 아이와 와인을 마시려면 10년만 기다리면 되나? 아니 좀 더 기다려야 한다. 프랑스에서는 음주허용나이가 18세이다. 나는 아이가 음주가 허용되는 나이가 되면 같이 리도쇼를 보며 와인을 마시고, 핫hot하다는 칵테일바에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