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여행을 계획하면서 세 가지 버킷리스트 실행을 목표로 세웠다. 첫째는 에펠탑이 보이는 음식점, 길거리 작은 카페, 룩셈부르크 정원의 노천식당에서, 파리지앵처럼 좀 한가하고 게으르게 식사하는 것이다.
여행이 즐거운 이유 중의 하나가 내 밥 안차려먹고 가족에게 밥상을 진상하지 않아도 되는 일탈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평생을 여일하게 가족의 식사를 준비하고 진설해야 하는 대부분의 주부들은 ‘남이 차려주는 밥상’을 소원한다.
언젠가 한겨울에 홀로 부산으로 취재여행을 갔었는데 몇 년 만에 처음이라는 한파가 해운대 바닷가에도 몰아쳤다.
으르렁거리며 진군하다 방파제에서 몸부림치며 부서지던 파도를 바라보며 나는 노천에서 실컷 낭만에 젖어 와인을 마시고 스테이크를 썰었고, 커피와 샌드위치로 브런치도 즐겼다. 몸에 담요를 두르고 난로도 피웠지만 혹한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좋았었다. 안타깝게도 한국의 여름은 과하게 덥고 겨울은 또한 과하게 추워서, 그보다도 맑은 날이 뜸해서 야외에서 식사할 만한 날을 잡기 어렵다.
그렇다 하더라도, 맘만 먹으면 일주일에 한번은 야외에서 요리사가 차려주는 식사를 받을 수도 있을 텐데, 선뜻 이루어지지 않는 까닭은 내게는 분에 넘치는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늘 급한 일과 중요한 일 사이에서 급한 일을 쫓다가 중요한 일 놓치고, 하고 싶은 일은 더욱 뒷전으로 밀리게 되어버린다. 그러고도 또 다시 쳇바퀴 돌 듯 살아간다.
나는 더 해보고 싶었던 짓을 해보기 위하여, 더 해보고 싶은 짓을 만들기 위하여 파리에 왔다.
첫 번째의 버킷리스트는 도착하자마자 이루었다.
볼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햇빛과 머리카락을 빗질하며 지나가는 바람을 맞으며, 흠흠 꽃향기를 맞으며 웨이터가 날라주는 식사를 만끽했다.
에펠탑을 바라보면서 야외에서 식사를 했고, 루브르 박물관 광장 앞에 설치된 유리 피라미드를 바라보며 테라스 레스토랑에서도 식사를 했다. 예약도 힘들었고, 식사의 가격도 눈물이 날 정도로 비쌌지만, 죽기 전에 다시 만나기 힘든 기회였던 만큼, 비용을 지불하면서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파리에서의 아침식사/ChristineGates
파리의 집값은 에펠탑이 얼마만큼 잘 보이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파리에 주재하는 사위의 지인이 휴가차 한국으로 들어가면서 사위가족에게 빌려준 집에 묵고 있다. 사위의 장모인 나는 허용 숙박객 명단에 없으니, 호텔을 잡든지 따로 사례를 해야 하겠지만, 염치 불구하고 얹혀있다.
집은 방이 2개에 화장실과 욕실이 분리되어있고 거실과 부엌에는 딱히 경계가 없다. 한국의 아파트 평수로 짐작하면 18평쯤 될 것 같다.
아직 혼자 잠들지 못하는 아이와 딸과 내가 한방을 쓰고 사위가 작은 방을 쓸 계획이었지만, 사위가 거실의 소파로 굳이 잠자리를 옮긴다고 우겨서 내가 집주인의 짐이 가득하고, 짐 트렁크를 펴면 몸 뉘일 면적이 간신히 남는 작은방 하나를 쓰게 되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 만한 면적을 차지하는 것도 여행객에게는 대단한 호사란다. 서울로 나들이 온 외국인 여행객이 강남 한가운데 있는 지인이 비워준 아파트를 통째로 사용하는 것이다.
집밖으로 나가면 100미터 이내에 슈퍼마켓이 있고, 50미터 이내에 낮은 철책에 화분을 달아놓은 블랙퍼스트와 모닝커피를 파는 노천카페가 있다. 카페에
서 아침녘이면 꽃에 물을 주는 모양으로 이슬방울을 단 꽃들이 방글방글 생기를 뿜어내며 오가는 행인을 반긴다. 센강가로 산책을 나가면 햇살을 받은 부드러운 윤슬이 눈이 부시게 빛난다.
아이는 킥보드를 탄다. 6살 어린 아이에게 무리하게 걷는 여행일 것 같아서 여행가방에 킥보드를 넣어왔다. 아이는 완만한 내리막 경사에서 바퀴를 굴려서 내려오는 스릴을 즐긴다. 나는 아이의 차지고 보드라운 손을 잡고 걷고 싶은데, 아이는 씨잉, 내달린다.
에펠탑 건설 당시 많은 지식인들이 ‘혐오스런 철골덩어리’라며 건설을 반대했다. 프랑스 작가 ‘기 드 모파상Guy de Maupassan’은 ‘파리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곳’인 에펠탑 2층 쥘베른 식당에서 종종 점심을 먹었다고 한다. 나 역시 에펠탑을 바라보며 느끼는 단상은 모파상과 다르지 않다.
에펠탑은 철 기둥을 잇는 리벳을 약 250만 개나 사용한 총무게 9700톤의 쇳덩어리이다. 에펠탑 안에 들어가 보면 당연하게도 에펠탑은 볼 수 없고 내장기관인 철골뼈대만 보인다. 철공소에 들어온 듯한 역겨운 쇳내로 철근 골조의 에펠탑 안에 있음을 진하게 느낄 수 있다.
그러나 한 마장이라도 떨어지면 에펠탑 쪽만 바라보게 된다. 자꾸 눈길이 간다. 에펠탑효과라고 한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가 명명한 효과인데, 처음에는 싫어하거나 무관심했지만 대상에 대한 반복노출이 거듭될수록 호감도가 증가하는 현상이란다.
한마디로 자주 보면 정이 들고 정이 들면 좋아지게 마련이란다. 에펠탑은 1909년 철거예정이었지만 용케도 살아남아서 프랑스의 영광스러운 과거와 과거 못지않게 빛날 미래를 상징한다.
에펠탑 근처이자 집 근처, 에펠탑이 바라보이는 음식점에 앉아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는 냅킨에 에펠탑을 그린다. 아이는 필기구를 보면 무언가를 그리고 쓴다. 아이가 3년 반을 살던 우리 집 벽에도 아이의 낙서 흔적이 남아있다.
나는 아이가 그리는 에펠탑과, 시야에 담아지는 에펠탑의 앙상하지만 건강하게 생긴 철다리를 바라본다. 그리고 에펠탑을 그리는 아이와 뒤편의 에펠탑 다리를 사진기에 담는다.
보릿고개를 경험한 한국 사람이 꿈꾸는 행복한 아침 밥상은, 임금님께 진상품이었다는 이천 평야에서 나는 쌀로 지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흰쌀밥에 소고기국이다. 프랑스인에게는 바게트 빵에 우유나 커피 한 잔이다.
딱딱한 빵을 만드는 가문의 아들과 부드러운 빵을 만드는 가문의 딸이 사랑에 빠졌는데 두 가문은 서로의 빵을 비난하며 반목질시했다. 그 바람에 두 남녀는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생을 마쳤다. 그제야 화해한 두 가문은 겉은 딱딱하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 빵을 탄생시켰다는 전설도 있다.
나는 바게트 빵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크루아상을 선호한다. 더구나 프랑스에서는 한국의 반 가격이면 맛있는 크루아상을 만난다.
겹겹이 쌓인 페이스트리가 노릇하게 구워진 크루아상을 한입 깨무는 순간, 어디서인가 나타난 바리스타는, 바닥을 드러내는 잔에 커피를 채워준다. 갓 구운 바게트 혹은 크루아상 하나에 갑자기 파리가 좋아져 버린다.
한국의 정부가 농민들을 위하여 정부가 높은 가격으로 쌀을 수매하는 것은 참아야 하겠지만, 쌀값이 모든 농산물 값을 견인하여 끌어올림으로써, 한국에서 유럽산 유기농 과자보다 국산 누룽지를 훨씬 비싼 가격에 사 먹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세금 내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억울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