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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Mar 26. 2022

(1)창문너머 에펠탑이 보인다

1. 나는 볼(ball)이 두 개 있어요.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세상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기가 세상에 남긴 발자취로 인하여 단 한 사람의 삶이라도 평화롭고 안전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시(詩) <성공이란 무엇인가> 중에서 



1. 나는 볼(ball)이 두 개 있어요. 

1. 나는 볼(ball)이 있어요. 1. 나는 볼(ball)이 있어요. 1. 나는 볼(ball)이 있어요. 

“나는 볼(ball)이 두 개 있어요. 이거 보세요. 만져보세요.” 

나는 목욕을 마친 아이의 몸을 수건으로 닦고 있다. 머리에서는 따뜻한 흰 김이 오른다. 

“볼이 어디 있는데?”

“여기요. 잡으려고 하면 자꾸 위쪽으로 도망가요.” 


아이는 내 손을 자기의 사타구니로 이끌어간다. 

“정말이구나. 동글동글한 볼이 오른쪽 하나, 왼쪽에 또 하나 있구나.”


기쁨의 순간을 붙잡으려면 엄격한 절제력이 필요하다. 기쁨의 순간은 예고 없이 다가온다. 나는 언제나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이고 좋아라, 횡재로다. 내가 언제 어떻게 요렇게 예쁜 사내아이의 가랑이 사이에서 달랑거리는 물건을 만져본단 말인가. 나는 웃음을 숨기면서, 좋아서 못 살겠다는 표정이 아닌, 난생처음 신기한 물건을 대하는 놀라는 표정을 골라 연출한다. 


“함미는 볼이 없어요?”

“없어.”

“왜 없어요?”

“할머니는 여자야. 하느님이 여자에게는 볼을 안주셨어.”

아이는 아직 남녀의 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볼을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을 딱히 가릴 필요가 없는 나이이다. 


나는 아이의 얼굴과 목과 가슴과 배와 등과 엉덩이와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발등과 복숭아뼈까지 로션을 바르고 아토피피부병이 있는 부위에는 피부연고를 발라준다. 


찹쌀떡처럼 차진 아늠살은 토닥토닥 두드리고, 고무공처럼 탄력있는 엉덩이도 통통통 두드리고, 말랑말랑한 종아리는 조물조물 주무르면서, 보드라운 살집의 지상 최고의 손맛을 싸목싸목 즐긴다.


딸과 딸의 아들과 하루 종일토록 파리의 거리를 팔방돌이했더니 지치고  피곤하여 정신마저 혼미해지려고 했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도 힘들어서 작은방 한구석에 빨래 뭉치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함미, 치카치카하고 자야해요. 치카치카 안하면 이빨에서 벌레 나와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어깨를 발록발록 쥐었다 폈다 하는 감촉이 전해온다. 


“함미가 몸이 고단하구나 한숨 자고 양치할게.”

눈꺼풀이 저절로 스르르 닫히며 잠의 너울이 덮인다. 


“엄마는 고단한 게 아니라 게으른 거 아냐?”

남의 딸도 말본새가 이렇게 곱지 않은가. 내 딸은 엄마가 슈퍼우먼인 줄 아는가보다. 엄마의 피곤을 게으름으로 몰아붙이는 딸의 속셈은 따로 있다.  


여행 동안만이라도, 늙은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목욕을 거들어주었으면 한다. 젊은 딸은 좀 쉬겠다는 심보이다. 아니 딸은 내가 손자의 엉덩이도 두드려보고 고추도 보고 싶어 하는 줄을 다 알고 있다. 


“말할 기운도 없어. 내 딸인 네 나이가 낼모레가 마흔인데, 니 엄마는 아침하고 저녁이 다르게 쇠잔해지고 있어.”


5년 전, 딸이 임신을 하고 산달이 다가오니 친정에 와서 출산을 하겠단다. 나는 새로운 생명을 맞을 대비를 했다.  


딸은 바람벽을 타고 일렬종대로 행진을 하는 개미가족을 보더니 비명을 지르며 개미가족의 보금자리인 꽃 핀 화분들을 죄다 버리자고 했다. 전염병을 옮겨주는 개미에게 물려서 병에 걸린 갓난아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 부모님이 아끼고 아끼다가 물려주신 수석들까지 다 치우자고 생난리를 피웠다. 수석 동호회에 가입하여 수집한 수석을 몽땅 거저 드린다는 광고를 냈더니 가져가겠다는 전화가 빗발치듯 걸려왔다.  


SUV 차량으로 화분을 실어간 사람은 자기네 집을 멋지게 장식하는 꽃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주었고, 수석을 가져간 사람은 프랑스산 와인으로 답례했다. 


나는 40년 된 낡은 아파트의 방을 친환경벽지와 바닥재로 도배를 했다. 친환경이란 무엇인가, 개미나 파리나 다 같이 사이좋게 서로 도우며 공생하는 환경이 친환경 아닌가?  


갓난아이 무는 개미는 해충이므로 박멸하고 진딧물 잡아먹는 개미는 익충이므로 살려둔다면, 익충이자 해충인 개미는 반만 죽이고 반만 살려두자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또, 헬스클럽에도 등록을 했다. 총체적으로 근육과 뼈대를 강화하여 건강한 슈퍼할머니, 애기를 안고 달릴만한 체력을 가진 센 할머니가 될 연습을 했다. 


헬스클럽에서 트레이너가 가르쳐 주는 운동법은 대체로 고교시절 벌을 서는 동작과 흡사했다.  


철봉에 매달리기, 역기 들기, 팔 굽혀 펴기, 윗몸을 일으키기, 오리처럼 궁둥이를 씰룩거리며 앉은걸음걷기, 계단 오르내리기, 반으로 잘린 고무공 위에서 앉았다 일어나기, 누워서 엉덩이를 들어 올리고 다리 휘젓기, 그 외에도 별의별 망측한 포즈를 다 잡으라 하며 못살게 굴었다. 


내 생피 같은 돈을 내고 본때 있게 기합을 받았다. 엎드린 상태에서 몸을 어깨에서 발목까지 일직선이 되게 하여 버티는 플랭크라는 운동을 하면서는 하도 힘에 부쳐서 트레이너의 귀싸대기를 올려붙일 뻔했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트레이너에게 욕은 수없이 했다. 저절로 나오는 욕을 어찌하랴. 하지만 채 몇 달도 되지 않아 건강한 근육을 상으로 받았다. 


동기들의 모임에 나가면 내 척추와 등이 곧고 반듯해지며 키가 자란다는 느낌보다는 친구들의 키가 줄어든다는 느낌을 받고, 내 어깨가 펴진다기보다는 친구들의 어깨가 앞으로 굽는 것이 보였다. 


그렇게 비장하게 각오하고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도와주는 손길 없이 내 아들 딸을 키워봤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양육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근육을 강화하고 기름진 음식으로 보양섭생을 했어도 피곤해서 입술이 부르트고 손목은 시큰거렸다. 


나는 젊지 않았다. 내가 또래 보다는 더 젊고 건강할지는 몰라도 실제로 젊지는 않다. 3킬로그램이 못되는 아이가 10킬로그램이 넘을 때까지 키우려면 끊임없이 앉았다 섰다를 반복해야 하고 손발을 물에 적셔야 하고, 아이를 안았다 내려놓기를 반복해야 한다. 어린애보기에 소모되는 체력이 어디 그 뿐이던가. 


나는 아이를 바라보면 나 자신도 알 수 없는 힘이 솟는다. 샘솟는 사랑을 느낀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날에 함께하고 싶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대한민국 군인으로 입대할 때까지는 살아있고 싶다. 입대하는 날 논산 훈련소까지 따라가서 눈물 짓는 작별의 순간을 그려보고, 모의실연을 해보기도 한다. 


아이가 자라 결혼하여 새 생명을 낳는 상상을 한다. 내가 죽기 전에 증손자를 안아볼 수 있을까. 그날까지 나는 질긴 소갈비도 뜯을 수 있는 치아와 소화력 왕성한 위장과 100미터를 20초 안으로 달리는 건강한 체력과 날아다니는 파리도 손을 휘둘러 잡을 수 있는 민첩한 순발력도 갖추고, 건강하게 살아있고 싶다. 


아이가 태어난 지 백일 쯤 되었을 때, 아이를 안고 부모님을 뵈러갔었다. 아버지는 기저귀를 가는 외증손자를 들여다보시더니,  


“옹골진 사내로구나, 넌 좋겠구나, 내 팔에 힘이 없어 아이를 안아보지도 못하겠구나. 저런 어린 생명이 집에 있으면 얼마나 희망이 넘치겠니. 아이가 있으면 매일 매일 새소식이 생기잖니. 이렇게 죽음을 바라보는 노인네만 살면 희망이라고는 없다.” 


희망이 있는 내 삶이 기뻤고 희망이 없으시다는 아버지를 바라보니 슬픔이 몰려왔다. 생명이란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며 종족을 이어가는 것이리라. 


아버지의 종족번식의 욕망은 딸의 딸에게서 태어난 사내아이로는 채워지지 않으셨다. 장자의 장자에게서 장자가 태어나기를 희원하셨다.  


돌아가시기 전에 장손이 빨리 결혼하여 증손자를 생산하기를 절실하게 소망하셨다. 증손자를 안아볼 때까지 죽음을 유예하고 싶어 하셨다. 딸의 외손주를 보면서도 딸이 누리는 미래의 희망과 매일의 새 소식을 참으로 부러워하셨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만감이 교차하며 잠의 나락으로 빠져드는데, 오잉, 또랑또랑한 아이의 목소리가 울린다.  

“난 함미 좋아해요. 사랑해요. 함미가 목욕시켜주세요.” 


분명 아이의 목욕시키기를 할머니에게 떠넘기기 위해, 딸이 제 어미인 나를 마구 부려먹기 위하여 아이를 훈련 시켰을 터이지만, 아이가 함미를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에  나는 활화산처럼 힘이 솟구친다. 

“오냐, 오냐, 함미가 씻겨줄게.”


“그 봐, 게으름이라니까.”

어미의 의무를 할머니에게 떠넘긴 딸은 편하게 휴식의 자세를 잡는다. 나는 평생 딸과 손자 아이에게 충직하게 자원 봉사하는 종(從)이 될 것 같다. 내게 노동력이 있고, 그나마 경제력이 있는 한. 


“난 엄마처럼 안 살래”

딸이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에 한 말이다. 나는 딸과 아들과 남편에게 줄 사과를 깎고 있었다. 꼭지를 따고 껍질을 벗겨내고 과육은 잘라서 접시에 담고 나는 꼭지와 씨 근처에 조금 붙은 과육을 앞니로 갉아 먹고 있는 중이었다.   


“엄마는 사과도 깡치만 먹고, 생선도 아빠가 발라먹기 귀찮아서 남긴 뼈에 새끼손톱만큼 붙은 살점이나 징그럽게 생긴 내장만 먹잖아.”


“제발 그러렴. 넌 공부 열심히 해서 연봉 높은 직장을 가지려므나.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 뒷자리에 타고 출퇴근하고, 비행기 일등석에 비서 데리고 출장 다니며, 집에는 보모에 요리사에 정원사도 두고 살아라. 요리는 취미로 기분 내킬 때나 하고, 과일도 깎아서 대령하는 것만 먹고.”

“엄마는 날더러 왜 부자한테 시집가라고는 안 해?”


“엄마 친구들 중에 부잣집으로 시집간 애들 많아. 시가에서 집도 사주고 차도 사주고 보석부스러기도 자주 물려주시는 모양이지만, 보석으로 치장한 성안에 갇힌 공주야. 자유가 없어. 맘대로 외출도 못하더라. 난 내 딸이 끈에 매인 두레박 같은 팔자로 사는 것 보다 내 딸이 잘나서 사회적 경제적 주체가 되는 삶, 아니 어려운 얘기 말고, 대통령의 부인이 되기를 꿈꾸지 말고, 대통령이 되는 꿈을 꾸라고....”


난 언제나 기도 했다. 자식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을까 마는 나는 내 딸이 배우자에게 종속된 삶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앞날을 개척하는 성숙한 자아를 가진 사회적 인간이 되기를 기도했다.   


하느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셨다. 적어도 딸은 가사도우미와 보모도 있다. 내가 무보수로 헌신하는 가사도우미이자 보모인 것이다. 딸은 엄마가 기도했던 대로 하인을 부리며 살고, 엄마인 나는 딸의 하인이 되었다. 


보리밥에 간장만 찍어 먹고, 언니들에게 물려받은 교복을 기워 입으며 어린 시절을 보낸 친구가 있다. 그녀의 결혼생활에 대한 소원은 ‘울더라도 벤츠 뒷자리에서 울게 해주세요.’였다. 정주간에서 젖은 행주치마에 눈물 찍어내는 그녀의 엄마의 남루한 삶이 싫었던가보다.  


그녀는 기사가 운전하는 벤츠도 타고 가정부도 두고 살지만, 내가 속사정은 모르지만 ‘울며’ 산단다. 그녀의 기도가 “벤츠 뒷자리에서 마냥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살게 해주세요.”였다면 과한 욕심을 부린다고 하느님이 기도를 안 받아주셨을까. 


세상의 모든 부모는 자식의 상전이라기보다는 자식의 하인이기 마련이다. ‘부모는 문서 없는 종이다.’라는 속담도 있다. ‘부모는 먹지 않고 자식을 주고, 자식은 먹고 남아야 부모에게 준다.’는 속담도 있다. 


그리고는 아이와 즐거운 목욕놀이를 했다. 머리감기만 빼고 혼자 할 만큼 컸다. 이도 혼자 닦고, 몸도 혼자 씻는다. 

“울 아가, 너 키가 180센티미터 되더라도, 함미가 엉덩이 토닥토닥해도 되지? 응?”

“네 함미.” 


아이는 대답도 잘한다. 지금 아이의 키는 120센티미터일 뿐이다. 내가 허리를 굽혀서 시중을 들어야 한다. 나는 후유 한숨을 길게 내어 쉬고 등허리를 주먹으로 두 번 두드리고 겨우 몸을 편다.  


에구, 언제 60센티미터를 더 키운 단 말인가. 그렇게 커버리면, 내손이 아이의 이마까지 닿지 않아서 꿀밤을 한 대 먹이려면 까치발을 들어야 하겠지. 


아이가 출산 예정일 보다 일찍 세상에 나오는 바람에 친정엄마인 내가 탯줄을 자르게 되었다. 사위는 외국 출장 중이었기에 내가 그 감격스런 순간을 가로챘다. 나는 아직도 아이를 보면 탯줄을 달고 첫울음을 터뜨리던 장면이 겹쳐질 때가 많다. 


딸의 가족은 내 집에서 3년 반을 살다가 사위의 새로운 부임지인 아프리카 가봉으로 갔다. 아이와 공항에서 징징 울며 작별하던 순간부터, 우리는 프랑스 파리여행을 계획했다. 


1960년 프랑스의 공동체 구성국으로 독립한 가봉은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다. 대통령 부부는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에서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친프랑스 노선을 지켜오고 있다. 유럽까지의 직항비행기는 파리와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를 왕복하는 한 노선뿐이다.  


나는 한국에서 파리로 직항하는 비행기를 12시간 타고 왔다. 딸네 가족은 리브르빌에서 비행기를 한번 갈아타고 파리로 왔다. 직항은 항공료가 만만치 않기 때문에 비행기를 갈아타고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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