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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조 Sep 27. 2022

'우리는 도시가 된다'의 기묘하고 직설적인 세상

N.K 제미신의 <우리는 도시가 된다>




'우리는 도시가 된다'의
기묘하고 직설적인 세상
N.K 제미신의 <우리는 도시가 된다>
리뷰
by 민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탄 버스에서 어두운 한강변을 보고 있노라면 이 소설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긴 맨해튼도 브루클린도 아니지만, 이곳도 뉴욕 못지않게 '잠드는 날이 없는' 도시 아닌가? 한강을 가로지르는 저 대교가 이 도시의 핏줄이고 지금쯤 서울이라는 이름을 가진, 과거를 잃어버린 여자아이가 도시의 적을 물리치기 위해 화물 트럭의 힘을 빌리고 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지 않나.


 제미신의 신작 소식을 들었고 그 소설의 배경이 '지금'의 뉴욕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의 전작 부서진 대지 시리즈를 재밌게 본 사람은 누구나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아닌가^^; 아무튼 나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미 한차례 멸망한 세계 곳곳을 누비는 주인공의 일대기를 봤는데, 그다음 작품이 너도 알고 나도 아는 현대 도시가 배경이라고 한다면 그 도시가 제아무리 대단한 도시 「뉴욕」 인들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해질 수밖에 없다. 좀 좁지 않나? 물론 뉴욕 좋지만, 그런 건 다른 사람 소설에서도 볼 수 있지 않나?


 사실 제미신의 단편집 <검은 미래의 달까지 얼마나 걸릴까>에서 이 시리즈의 프로토타입이라고 할 수 있는 단편을 이미 읽었다. 흥미롭다고 느끼긴 했지만, 해당 단편집에는 더 좋은 다른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 단편에서 보여준 것 이상으로 보여줄게 남은 것 같지 않다고 감히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상상도 하지 못한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우리는 도시가 된다>의 세계는 부서진 대지 시리즈보다 익숙한 세상이지만 더 낯설고 기이한 규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처음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거의 전혀 알 수가 없다. 이 소설의 어떤 사건들은 그냥 빙의 현상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떨 땐 마블 영화에서 본 듯도 하다. 어쨌거나 더 이상 도시는 좁지 않다. 그 위에 다른 차원의 같은 도시를 덧씌우고, 그 도시를 구성하는 구역들의 수만큼 많은 수의 주인공을 세워 또 이야기로서의 다차원을 생성하면 되니까. 이제 무대는 무궁무진하다. 따분하다고 생각했던 익숙한 도시 풍경은, 책 속의 초현실적인 장면들을 좀 더 쉽게 상상할 수 있게 해주는 좋은 재료가 된다.


 어반 판타지에 가까워 보일만큼 그토록 알쏭달쏭하고 환상적인 법칙으로 움직이는 세상을 보여주고 있으면서, 재밌게도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할 땐 절대 '환상적인' 방법을 쓰지 않는다. 자, 가장 처음 소개할 이 도시의 수호자는 매일같이 백인 경찰들에게 쫓기는 홈리스 흑인 청소년입니다. 당신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존재가 바로 우리 도시를 지키고 우리 도시가 사랑(해야)하는 존재란 말입니다! 부서진 대지 시리즈에서는 인류로서의 백인을 살뜰하게 해체해 비인간적 존재들에게 그 특성 일부를 배분하고 주류 인종들은 유색인종인 방식이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인종차별이 뉴스 헤드라인처럼 등장한다. 조금도 우회하지 않고 마구 닥쳐온다. <다섯 번째 계절>때 보다 더 대담하게, '바로 지금' 이곳에 있는, 소외되고 박해받는 존재가 사실 우리 도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소리친다.


 그 방식이 매우 마음에 든다. 현실은 돌려 말하는 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이 소설의 이런 말하기 방식은 이 이야기와 아주 잘 어울린다.  


 이 소설 속 도시는 기묘하긴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아는 법칙을 그도 따르고 있다. 돈을 받고 힘을 준다. 동시에 직설적이긴 하지만 여전히 독자도 주인공도 알지 못하는 미스테리가 존재한다. 왜 도시는 하필 그들에게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주는 것일까? 「도시」가 형성하는 거대한 원념을 온몸으로 느끼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그 도시의 가장 어두운 곳에서, 도시의 맥박과 숨결이 느껴지는 그 콘크리트와 철근 근처에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일까? 속출하는 흥미로운 괴물들 앞에서 블록버스터 히어로 영화를 보며 느끼던 얄팍한 희열에 몸을 맡기고 있던 독자의 멱살을 붙잡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작가는 호통을 친다. 그러면서도 작은 단서에 더 마음이 가는 독자들을 위해 은근한 비밀들을 뒤에 숨겨 두었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의문이면서도 아쉬운 점은, 이 소설에서 잉태되고 출산되는 수준에 이른 도시들이 하나같이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히 유럽인들이 땅을 약탈하고 원주민을 비주류로 몰아내는 계약을 맺음으로써 탄생한, 도시가 아닌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들이 아시아엔 없어서라고 하기엔 작가가 지향하는 바에 좀 어긋나지 않나? 이 아쉬움이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어쨌든 한국은 그쪽 문화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는 국가이면서 큰 도시가 있는 국가이기도 하고, 이 소설은 한국어로 번역되었고, 이 소설 속의 「도시」와 그 도시의 화신이 너무 멋진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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