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나는 호랑이 새끼입니다.

호랑이? 아니, 개띠입니다.

by Horang unnii

내게는 이름보다 더 많이 불리는 애칭이 있다. 스티브 잡스 하면 애플이 떠오르는 것처럼, 나 역시 뭔가 대단한 업적을 남겨서 붙여진 이름은 아니지만 아주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별명이다.


어떤 사람은 나를 "호랭"이라 부르고, 또 어떤 사람은 "호랑이", 혹은 줄여서 "호랑"이라고도 한다. 통칭으로 "호랑언니"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런데, 애칭이 '호랑이'라서 그런지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너 혹시 호랑이띠야?"

아니다. 나는 82년생 개띠다.

호랑이 띠도 아닌데,

나는 왜 '호랑이'라 불리게 된 걸까?


어릴 때부터 엄마는 나를 보며 늘 한마디를 했다.

"니는 호랭이 새끼다."

어디 가서든 누구 보다 앞장서서 나서는 내 모습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늘 그렇게 말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는 날이면 엄마는 어김없이 혀를 차며 말했다.

"누가 호랑이 새끼 아니랄까 봐, 대장 노릇만 하고 다닌다." 그렇게 나는 호랑이가 되었다.


어느 날 문득 궁금해졌다.

"엄마, 근데 나는 왜 호랑이 새끼야?"

"엄만, 왜 맨날 나를 호랑이라고 불러?"


엄마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를 가졌을 때 꿈에서 커다란 호랑이를 봤어."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꿈속에서 엄마는 깊은 산속을 걷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엄청난 덩치의 호랑이가 나타났다. 엄마보다 두세 배 커 보이는 거대한 호랑이.

그 곁에는 어린 새끼 호랑이 두 마리가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사냥꾼이 나타나 활을 겨눴고,

어미 호랑이는 새끼를 지키기 위해 도망칠 수 없었다고 한다. 한 마리는 입에 물고 갈 수 있었지만,

다른 한 마리는 그대로 갈 수도 없고 피하지도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그 순간, 어미 호랑이는 엄마를 바라보았고, 마치 자신이 물지 않은 새끼를 품에 안으라는 듯 등을 내주었다고 한다. 엄마는 본능적으로 새끼 호랑이를 품에 안았고, 어미 호랑이의 등에 올라타 사냥꾼을 피해 함께 달렸다고 한다. 그렇게 꿈에서 깨어난 엄마는 태어날 아이가 분명 '아들'일 거라고 확신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태어난 건, 딸이었다.

바로 나.


"그래서 내가 호랑이 새끼야?"


어느 날 문득 물었던 내 질문에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너는 이미 태어날 때부터 호랑이 새끼였어."


그 말을 듣고 보니 어릴 적부터 내 성격은 영락없이 '호랑이'였다.


골목대장 호랑이


나는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고무줄놀이보다는 고무줄을 끊고 도망치는 걸 더 좋아했고,

공기놀이를 하느니 친구들의 공기를 몽땅 접수해서 도망가는 편이었다.

선도부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깨에 노란 띠를 두르고 친구들을 단속해야 하는데

정작,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단추를 풀어헤치고 다녔다.

"네가 규칙을 어기면서 어떻게 선도부를 하냐?"선생님들은 타박했지만, 또 교무실의 선생님의 우유를 받아먹는 당찬 아이기도 했다.


중학교 시절, 나는 또 한 번 호랑이라는 별명을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어 느날,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다. 엄마는 평소처럼 나를 불렀다.

"호랑아, 친구들이랑 과일 먹어라."

"어? 너희 엄마 왜 널 호랑이라 불러?"

이름대신 호랑이라 부르는 엄마의 모습에 친구들이 의아해했다.

나는 엄마의 태몽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친구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딱이다! 딱."

그리고, 그날부터, 친구들 사이에서도 나는 '호랑이'가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야, 너 걸을 때 왜 그렇게 어슬렁어슬렁 걷냐?"

"아니, 왜 맨날 뒤를 두리번거리면서 걸어?"

"왜 항상 동서남북을 다 확인하냐고."

그때는 몰랐지만, 친구들이 말하는 내 걸음걸이는 진짜 호랑이를 닮았다고 했다.

천천히 걷지만, 주변을 늘 살피면서 움직이는 모습이 마치 호랑이가 사냥감을 찾는 듯하다고.


성격도 딱 호랑이라는 거다. 욱하는 성질, 작은 덩치에 비해 쓸데없이 강한 힘, 고집불통,

겁 없이 덤비는 성격.

특히, 친구들이 억울한 일을 당하면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어떤 애가 괴롭힘을 당하면 그걸 참지 못하고 가서 한마디 했다.

"야, 한 번만 더 이러면 나한테 죽는다?"

그렇게 나를 따르는 친구들이 많아졌고, 자연스럽게

친구들 사이에서 '호랑이'라는 별명은 더 굳어졌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나는 춤과 음악을 사랑했다.

스포츠댄스, 살사댄스, 모던, 스윙, 라틴, 재즈, 클럽음악까지. 움직임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어느 날, 동호회에서 닉네임을 정해야 했는데, 별 고민 없이 "호랑이"하고 적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닉네임이 '호랑언니'로 바뀌었다.

그때는 '언니'라는 호칭이 유행이었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그렇게 불렀다.


언젠가부터 이름보다 '호랑언니'라고 불리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사람들도 내 본명을

모른 채 살아간다.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나는 이름보다 "호랑언니"로 기억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 이름 안에는, 엄마의 태몽도, 내 어린 시절도, 그리고 지금의 내가 모두 담겨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