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________저작권에 대하여 , 삶에 대하여
나는 단어 하나에 머무르는 사람이다.
사람들은 보통 스쳐 지나가지만, 나는 문장 하나에도, 말의 여운에도 오래 머문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글 속에서, 딸각하고 마음에 걸리는 문장을 만난다.
그럴 때마다 나도 쓴다.
그 문장과는 전혀 다른 문장을, 그러나 뿌리 깊은 곳에선 꼭 닮은 감정으로.
사람들은 '저작권'을 딱딱한 개념으로 생각한다.
법률, 소유, 보호, 침해, 처벌... 그런 단어들이 줄줄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나에게 저작권은 '인정받는 감정'에 가깝다.
나만 알고 있던 마음을, 누군가 "그건 너의 것이야"하고
세상에 공식적으로 적어주는 일.
그게 저작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군가 내 글을 훔쳐가도,
정작 그 글을 쓴 내가 '쓴 감정'까지는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나는 그 글을 쓸 때 울었고, 웃었고, 떨었고,
주저했다.
그 떨림은 내 것이다.
그리고 저작권은 그 떨림의 증거이자, 흔적이다.
나는 오늘도 쓴다.
누구의 문장을 베끼지 않고,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문장도 아닌
단지 '지금의 나'로밖에 쓸 수 없는 글을 쓴다.
그게 나의 저작이다.
그리고 그것이 쌓여 '내 삶 한 권'을 만들어 간다.
정다운의 삶 한 문장, 오늘은 조금 짰지만 그만큼 더 진했다.
저작이란, 처음부터 창조된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감정이
내 안에서 다시 살아나는 일 아닐까.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나는 운다. 웃는다. 떠올린다.
잊고 있던 장면을 꺼내본다.
그때 나는 단지 독자가 아니라, 어쩌면 공감이라는 또 하나의 창작자가 된다.
'저작권'이라는 단어를 보고,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오래전 가수 솔비가 한 말이 떠올랐다.
화려한 시계, 선글라스, 갖가지 물건을 수집하다 도둑을 맞고 난 뒤,
그녀는 깨달았다고 했다.
"아, 이런 건 다 훔쳐갈 수 있는 거구나.
진짜 나한테 남는 건 따로 있었구나."
그리고 그녀는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운동을 시작했다고 했다.
누구도 훔쳐갈 수 없는 무언가를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문장을 본다.
한 줄의 글이 내 안을 통과하면, 이상하게도
내가 써야 할 말이 솟는다.
그 문장은 누군가의 것이지만,
그로 인해 태어나는 나의 문장, 나의 감정,
나의 회복은 온전히 내 것이다.
그건 모방이 아니라, 변주다.
베낌이 아니라, 탄생이다.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글을 읽고,
내 안에서 다시 '나답게' 된 것들을 기록한다.
그리하여 내 감정이 머물고 떠올린
모든 공감, 모든 상상, 모든 기억이
나의 저작이 된다.
오늘도 나는, 훔칠 수 없는 것을 모은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다시 살아내기 위해서다.
잊혔던 감정, 흐릿해진 기억, 문득 떠오른 생각,
그 모든 걸 다시 내 안에 불러오고 싶을 때 나는 글을 쓴다.
그러니 어떤 의미에서든
내가 쓰는 것들은 이미 세상에 있었던 감정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문장, 누군가의 노래, 누군가의 표정에서
나는 자주 울고 웃었다.
그리고 그런 순간마다
내 안에서는 또 다른 말이 태어났다.
다시 말해, 나는 '공감'으로부터 쓰는 사람이다.
솔비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지만, 나도 물었다.
진짜 내게 남는 건 무엇일까?
훔쳐갈 수 없는 것을 쌓고 싶어 졌다는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참 동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기록하고 있는 것들 역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것들이다.
저작권은 단지 법의 보호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건 네 것이야'라고 말해주는 감정의 도장 같은 것이다.
누군가의 글에서 시작됐을지라도
그 글로 인해 내 안에 생겨난 감정, 떠오른 기억,
그리고 다시 써 내려간 문장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그건 표절도, 모방도 아니다.
다시 태어난 감정이고,
다시 쓴 인생이고,
다시 살아낸 순간이다.
어쩌면 우리는 매일 저작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공명하고,
누군가의 노래에서 위로받고,
그 안에서 다시 '나'로 살아내는 것.
그게 바로
공감의 저작,
기억의 저작,
회복의 저작이다.
나는 오늘도
훔쳐갈 수 없는 것들을 모은다.
누군가의 문장에서 시작된
나만의 문장을 기록한다.
그리하여 오늘도,
내가 쓴 것이 곧,
내가 살아낸 것이 된다.
"당신의 공감도, 언젠가 누군가의 저작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