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지나치게 고해상도로 보여주니까
한국에서 왜 MBTI가 인기를 끌까?
관계에 대한 인문학적 사고를 불편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적 사고는 어떤 대상에 대해 탐구하고, 질문하고, 알아가고, 또 다른 시각에서 다시 해보는 사고의 틀이다. 반면 한국은 '단순하게, 정리해서' 사고하는 것을 강하게 선호하고, 다른 시각을 말하기 매우 힘든 사회다. "A는 B이다! C이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이 한번 '대세'로 자리 잡으면,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나요?"라는 질문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 성격이나 성향은 극도로 복잡하다. 이렇게 복잡한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으면 그 역학이 더욱 복잡해진다.
어떤 사람에 대해 직접 알아가는 과정은 다분히 인문학적이며, 그중에서도 인류학에 가깝다. 결혼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어떤 사람과 살면서 그 사람 하나를 알아가는 것이, 새로운 부족에 들어가서 수행하는 연구보다 결코 쉽지 않다. 단순한 사고로는 사람을 파악하기가 불가능하고, 복잡한 것을 파악하려니 피곤하고, 아예 파악하지 않으려니 외롭다. MBTI는 I(내향)과 E(외향) S(감각)과 N(직관), T(사고)와 F(감정), J(판단)과 P(인식)으로 구분하여 총 16개 성격으로 구분한다. 적당히 복잡해서 어떤 성향인지 맞춰보면서, 적당히 다른 사람과 거리를 두면서도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에 최적화된 성격 유형 지표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일수록, 이러한 지표는 의미가 퇴색된다. 부모나 배우자, 형제와 자매의 MBTI를 알게 된다고 서로 더 잘 알게 될까? 가까운 관계일수록, 주관적 경험과 공유된 상호작용의 기억이 지배적이다. 성격 유형 지표는 이러한 경험과 기억에 편리한 태그를 붙여줄 뿐이지, 본질과 결코 혼돈될 수 없다.
MBTI가 크게 유행한다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사람 간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는 시간을 두고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를 맺는 것을 피곤해한다. 빠르고 단순하게 파악하고 나와 맞을지 안 맞을지를 파악한다. 관계가 불편할 여지가 보인다면 신속하게 거리를 두는 게 답이다. 관계의 피상성을 넘기엔 두렵고, 혼자 있으려니 외롭다. 내가 직접 그 사람과의 경험을 쌓기 전에, '객관적이고 정리된' 지표로 괜찮을 관계일지 미리 알고 싶다. 잘 안 맞는 사람과의 관계만큼 피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 사람들의 모임 행태를 가장 잘 표현하는 말은 '끼리끼리'다. 호환 가능한 특성을 지닌 사람들끼리 모이니 통한다. 잘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이니 편하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모임이 많다. 나와 통하는 모임들이 주기적으로 개최되어야 외롭지 않다. 하지만 사람은 복잡하다 하지 않았는가 - 그 어떤 모임도 나라는 개인의 복잡성의 일부만을 충족시킬 수 있다. 모여도 외롭고, 헤어지면 더 외롭다.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긴 시간에 걸쳐 촘촘해지는 관계는 한국에서 드물다. 그래서 우리는 시끌벅적한 술집도, 가슴속에 외로움이 사무치는 사람도 많은 역설적인 사회 속에서 살아간다.
이런 생각을 깊게 하는 것을 보니, 난 역시 INF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