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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서재 Feb 02. 2022

AI의 시대에 글쓰기가 중요한 이유

기술의 발전은 본질의 중요성을 더 빨리 보이게 한다

아들에게,


어쩌면 아빠가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글쓰기는 아빠의 시대보다 너의 시대에 더 중요해질거라 생각되네.


시간을 초월하는 글쓰기


인간이 언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약 10만 년 전이라고 해.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서 쓰기 시작한 것은 약 5천 년 전이고. 인간이 언어를 사용한 기간 중 95%는 말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거지.  9만 5천 년 동안 말로 잘 의사소통을 하다가, 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말(言)은 실시간이고, 휘발성이 높거든. 하지만 글로 쓰면 남아. 시간을 초월할 수 있어. 기록하면 축적하고, 축적하면 지식이 될 수 있잖아. 문명(文明)을 글을 뜻하는 '文'으로 표기하는 이유는, 문명은 글쓰기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의 경험과 지혜를 축적하고, 이를 후손에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손에 쥐면서 인류는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어. 글쓰기라는 이 도구는 네가 사는 시대에 어쩌면 더욱 중요할지도 몰라.



인공지능의 시대의 지식 생산자


아빠가 살았던 세상은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의 전성기였어. 변호사, 회계사, 의사, 엔지니어   분야에 대해 통달하고,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경제 사회적 부가가치가 집중되었던 시대였지. 사회가 복잡해지고, 고도화된 지식이 요구되는 문제들을 자주 직면하게 되자, 전문가 시스템을 운용하게 된거야. 이는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도 지식의 분업을 통해 거대한 사회의사결정가능하게 해줬어.


하지만 1960년대부터, 다른 전문가 영역이 생기기 시작했어. 바로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인간의 데이터를 학습하면서 서서히 전문가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했고, 자연어와 비정형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게 되면서 획기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어. 데이터만 주어지면 스스로 학습을 할 수 있게 되면서, 특정 분야에 대한 탐색과 추론을 하고, 문제 해결 방안을 제시하는 전문가의 역할은 점점 인공지능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고 있지. 아마 너의 다섯 번째 생일쯤에는 인공지능의 발달이 특이점을 넘게 되면서 인류는 불의 발명 이후 가장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도 몰라.


이 추세가 계속된다면, 특정 분야의 지식에 숙달된 전문가는 점점 인공지능에 의해 대체되고, 인공지능이 못하는 분야에서 활약하는 사람들이 새로운 주류가 될 거야. 그리고 인간 고유의 영역은 바로 '질문'이야. 인공지능은 스스로 무엇을 모르는지 알 수 없어. 인공지능은 문제 해결 능력은 인간을 추월할 수 있지만, 문제제기 능력은 근본적으로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질문'은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남게 돼. 앞으로 질문을 던지는 자들은 '지식 생산자'로서,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인공지능을 도구로 활용하여 혁신을 창출하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특정 분야에서 지식을 축적하기보다는, 한 분야에서 숙달된 역량을 통해 다양한 분야와의 통섭(consilience)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면서 살게 될 거야.


이러한 지식 생산자들은 서로 어떻게 협력을 할까?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소통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글쓰기야. 복잡한 내용을 압축적으로 전달할 수 있고, 받는 사람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내용이 변질되지 않아. 기계 간 정보 교환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사람 간 정보를 글쓰기보다 더 효율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는 수단은 존재하지 않아. 다른 사람의 생각을 가장 높은 압축률로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에, 글쓰기에 숙달된 사람일수록 통섭을 더 자주, 더 멀리 있는 분야와 할 수 있게 돼.


어쩌면 코딩보다도 더 중요할지도 몰라. 인공지능의 발전이 너무 빨라서, 이제 조금 있으면 컴퓨터와 소통하기 위해 컴퓨터의 언어가 아니라 그냥 인간의 언어로 말하는 시대가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거든. 그렇다면 '자연어'를 정확하게 구사하고, 다른 사람과 인공지능과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사람이 각광받을 거야. 자연어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글쓰기고. 기술은 고도화될수록 친숙한 인터페이스로도 접근이 가능하거든. 최신식 컴퓨터도 백 년 전 발명된 타자기의 인터페이스를 입고 나오는 것처럼.



글쓰기는 너의 등대


현대인 한 명이 하루에 접하는 정보량은 20세기 초 사람들이 평생 접하는 정보량과 거의 비등하다고 하더라고. 하지만 넘치는 정보가 과연 너를 더 똑똑하게 만들까? 진흙 점토판을 들고 있는 고대 바빌론의 서기보다 최신 전자기기를 손에 쥐고 있는 현대인이 지능이나 사유의 깊이 면에서 우월할까? 사실 큰 차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아. 수동적으로 정보가 스쳐 흘러가는데 익숙한 현대인보다는, 흘러가는 유프라테스 강을 보며 깊은 사유를 한 바빌론의 서기가 오히려 더 깊이 있는 글을 쓸 수도 있어. 시대가 변하고 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하드웨어, 즉 뇌의 성능은 획기적인 발전이 없었거든.


지능이란 정보를 선별하고 조합하여 산출할 수 있는 처리 능력이라고 할 수 있어. 이러한 지능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어. 언어, 수리, 공간, 색감 등등... 이걸 다 종합해서 '역량'이라고 해보자. 정보에 대한 접근성을 역량으로 착각하면 안 돼. 오프라인이 되는 순간 바보가 된다면, 애초에 똑똑하지 않았던 거야. 기술과 기기를 통한 접근성은 보다 많은 정보에 노출되게 해 주지만, 그뿐이야. 오히려 과다한 정보에 노출되어 유효한 정보를 선별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더라고. 머릿속에 든 정보의 양을 역시 역량이라고 할 수 없어. 아무도 책이 수북이 쌓인 창고를 지혜롭다고 하지 않잖아?


고대부터 현대까지 사람의 역량을 발달시키는데 가장 보편적인 도구는 글쓰기야. 그렇기 때문에 글을 보면 그 사람의 지적 수준, 사유의 깊이, 창의성을 빠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어. 조선이라는 나라가 국가를 이끌 인재를 뽑기 위한 과거시험이 글쓰기였던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해. 처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이 방대해질수록 글쓰기가 중요해지거든. 전국에서 오는 수많은 정보를 종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최종결정자에게 조언하려면, 결국에는 글쓰기야. 멍하니 앉아 정보에 노출되는 것은 쉽지만, 의사결정이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기 위해 정보를 추출하고, 기존 정보와 조합하고, 이를 다른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능력은 쉽게 얻어지지 않아.


결국 네가 쓸 수 있는 글이 너의 역량의 가장 정확한 척도야. 이를 달리 말하면, 네가 너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최적의 도구이기도 해. 말은 휘발성이 높고, 녹음하여 기록으로 남겨도 다시 들으려면 말한 시간만큼 또 투입해야 하잖아. 그런 의미에서 동영상도 마찬가지야. 하지만 글쓰기를 하면 먼 훗날 다시 봐도 쓴 시간에 비해 읽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아.


글을 잘 쓰면, 너는 점토판만 있어도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어.

        

먼 훗날 기억되는 사람은 점토판이라는 기술을 만든 사람이 아니라, 점토판에 글을 쓴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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