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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빠의 서재 Feb 05. 2022

가짜의 위대함

허구가 현실을 만든다

아들에게,


우주가 얼마나 큰지 생각하면, 사람은 너무나도 작고,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존재해. 하지만 우리 안에도 우주가 하나 있어. 우주의 입장에서는 먼지보다도 작은 사람이, 머릿속에서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단다. 이는 오로지 내가 존재함으로써 생겨나는 우주고, 나 없이는 생겨날 수 없는 우주야 - 바로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만드는 우주.


서점에 가면 사람들이 만들어낸 우주들을 모아놓은 곳이 있어.

문학, 소설 코너에 가면 위대한 창조자들이 만들어놓은 우주를 손안에 쥐고 탐험해볼 수 있단다. 책을 펼치면 가보지 않은 나라의 풍경을 보고, 만나보지 못한 사람의 사랑 이야기를 듣고, 세상에 없는 괴물을 마주할 수 있어. 아빠는 어렸을 때부터 진짜가 아닌 가짜인 세상에 푹 빠져 지냈단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우주를 탐험하는 사람들 이야기나, 요정과 난쟁이가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의 모험, 아빠 성격에는 절대 하지 못할 사랑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읽는데 엄청난 시간을 들였어. 학교에서 읽으라고 정한 책들은 숙제 끝나면 다시 안 폈고. 할머니에게는 비밀이다.


왜 사람들은 상상의 산물일 뿐인 이야기, 진짜 일어나지도 않았고, 일어날 수도 없는 정교한 거짓말인 허구의 이야기를 이렇게 소중히 다룰까?

혼자 하는 경험은 사실 굉장히 제한적이고, 반복적이야.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태어난 나라에서 살고, 비슷한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 서점에 가서 실제로 모험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왜 그런지 알 수 있어. 너무 위험하고, 너무 힘들고, 그리고 사실 꼭 해야 되는 게 아니거든. 지평선을 바라보며 저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진짜로 그 너머로 가기 위해서는 큰 용기와 희생이 필요해. 하지만 누구든지 책은 읽을 수 있잖아? 누군가 상상해준 덕분에 의자에 앉아서도 모험을 떠날 수 있는 거야.


그리고 책장을 넘기면서 떠나는 모험이 끝나면, 우리에게 실제로 영향을 끼치기도 해.

누군가에게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고백하는 용기를 주기도 하고, 평생 한 마을에서 살아온 사람이 여행을 떠나게 하기도 한단다. 아빠는 어렸을 때 공상과학을 특히 좋아했어.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몇 년마다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야 했던 아빠는, 공상과학 소설을 보면서 주인공이 새로운 행성에 가서 외계인들을 만나는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었던 것 같아. 외계인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는 모습을 보다 보면, 처음 가본 나라라도 ‘뭐 그래 봤자 지구인들끼리 보는 건데’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야. 물론 차라리 외계인을 만나는 게 쉽다고 느낀 적도 있었지만.


진짜 신기하지 않아?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이 실제로 우리에게도 영향을 끼친다는 게 말이야. 왜 그럴까? 가짜의 이야기라도 사실 우리의 경험과 완전히 동떨어지지 않아서 그래. 상상이라도 직접 경험해봤거나, 다른 이야기에서 들어본 것들을 상상의 재료로 쓰거든. 학교에서 문학을 꼭 가르치는 이유가 바로 이거야. 허구의 이야기라도, 그 허구의 재료를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왜 이런 상상을 했는지 알 수 있어.


아빠가 좋아했던 공상과학이 좋은 예시겠다.

옛날 공상과학은 인류가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내용이 많아. 인간은 착하고, 외계인은 탐욕에 가득한 나쁜 종족이라고 명확히 구분하고, 힘든 싸움 끝에 인간이 이기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아. 그러다가 조금 후대 작품을 보면 인류가 더 이상 서로와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세계 정부를 세워서 우주를 탐험하거나, 새로운 외계인과 갈등을 겪다가 협의하는 줄거리가 주류를 이루게 되더라고. 그리고 그 이후에는 어쩌면 인류가 이 우주에서 악한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인류에 대한 회의감이 있는 작품이 많이 나와. 지구라는 고향을 스스로 파괴하고 있는 유일한 종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듯이 말이야. 공상과학 작가들도 지금 처한 상황에 근거해서 앞으로 인류의 미래가 어떨지 상상하는 거야. 그럼 먼 훗날, 이 작가들이 상상한 미래를 보고 우리는 그 작가들이 살았던 과거에 대해서 알 수 있어.


용을 무찌르는 성 조지(St.George)는 실제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잖아


옛날부터 이야기꾼들은 특별한 대우를 받았단다.

누더기만 걸친 떠돌이라도, 모닥불 앞에서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귀빈 대접을 받았어. 머나먼 나라의 이야기,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 장엄한 산과 수평선 너머 바다의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을 모이게 했어. 매일같이 그날 있었던 이야기만 나눴다면, 사람들은 재미없어서 모여 살지 않았을 거야. 우리는 서로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어서 모닥불에 앞에 모이고, 도시를 짓고, 책을 만들었다고 생각해. 그리고 이제 네가 살아갈 세상은 사람들은 실제로 메타버스를 통해 각자 하나의 세상을 창조해갈 거야. 노래와 책 속에 있었던 세상이 눈앞에 펼쳐질 세상이 오면, 경험보다는 상상력이, 분석력보다는 통찰력이, 정밀함보다는 엉뚱함이 더 큰 가치를 지니게 될 것 같네.


네가 살면서 만나게 될 모든 사람들은 너에게 해줄 이야기가 있을 거야.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길 바래.

그 이야기가 진짜가 아니라도 해도.


진짜가 아니라 해도, 세상엔 들을만한 멋진 이야기가 너무 많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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