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빠의 서재 Jan 28. 2022

공부 말고, 학습

스스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자기는 어렸을 때 공부 잘했어?”


(누워있다가 일어나며) “응? 갑자기? 그게 궁금했어? 평화롭게 하루가 마무리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훅 들어오는 질문이네.”


“나 사실 자기한테 엄청 짜증 난 거 있었거든.”


(옆에 앉으며) “왜~ 남편이 뭘 잘.못.했.을.까.?”


(한숨을 쉬고) “사실 자기가 뭘 잘못해서 짜증 난 게 아니라, 뭘 너무 잘해서 짜증이 났었어.”

(웃으며) “내가 뭘 잘하는 게 있다고.”


“얼마 전에 우리 회사에서 부서 전체에 대량으로 보고서 할당되었잖아. 한 사람 당 두 개씩. 나는 사실 그 보고서 쓰는 업무 때문에 엄청 스트레스받고 며칠을 힘들게 고민했었는데, 자기는 후딱 하룻밤 야근해서 쓰더라고. 그래서 그걸 보면서 엄청 짜증 났었어. 난 이렇게 힘들게 머리 싸매면서 쓰는데, 누구는 그걸 너무 쉽게 해 버리니까.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지만, 그냥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 없었어. 나 스스로가 되게 바보 같았단 말이야.”


(안아주며) “에구... 우리 여보가 그랬구나. 근데 남편도 몇 주 동안 고민했었어. 잡고 쓴 게 하루였으니까 그걸 보고 하루 만에 쓴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아. 내가 천재도 아니고.”


(웃으며) “천재 아닌 건 알지.”


(피식 웃으며) “그래 남편의 지능을 현실적으로 잘 파악하고 있어서 고맙네. 그러니까 자기가 나 때문에 마음 상할 필요는 없지 않아?”


(표정이 다시 굳으며) “그래서 사실 더 짜증이 나. 타고난 머리가 다른 거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받아들이겠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아. 자기는 텍스트를 읽고 소화해서 내용을 추리는 게 엄청 빨라. 수백 쪽을 읽고 짧게 요약도 하고, 짧은 글을 읽고 그거 가지고도 막 몇 페이지씩 쓰고. 재능이 아니라 뭔가 경험이 달라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


“경험이라... 근데 나 어렸을 때 공부를 잘한 적은 없었는데? 초등학교 때야 뭐 안경 쓰고 똘똘하게 생겼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는데, 그거야 그냥 생긴 게 그랬던 거고. 막상 3년 주기로 외국과 한국을 왔다 갔다 하면서 교육 과정이 치즈처럼 구멍이 슝슝 나있어서 적응하고 따라잡기도 힘들었어. 공부는 자기가 잘하지 않았어? 항상 전교에서 상위였잖아. 학생회장도 하고.”


“내가 짜증 나는 이유가 그거야. 공부를 잘한 거랑, 실제로 세상에 나와서 역량을 발휘하는 거랑 큰 상관관계가 없다고 느껴. 나는 공부가 좋았다기보다는 경쟁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아. 이기고 싶었던 거지. 나 뭔가를 탐구하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어. 교육 제도가 주입식이다 보니까 닥치고 외우면 성적이 오르기 마련이었고.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까, 화가 나. 공부는 그냥 흘러가는 정보를 그 순간 저장하고, 시험 볼 때 머리를 가동해서 꺼내서 문제지에 쏟아내면 끝이거든. 그 결과는 괜찮았을지도 몰라도, 내가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를 생각하면, 의미가 하나도 없어. 평생 학교에 있는 게 아니잖아. 공부는 주어진 틀 안에서만 하는 거고, 막상 대학교만 가도 공부라는 틀 자체가 너무 넓어지고 다양해져. 회사를 가거나 대학원에 가면 더 말할 것도 없고. 근데 자기는 어렸을 때 외국에서 학교를 다녀서 그런지, 그런 틀에 구애받지 않고 공부한 것 같아서 오히려 지금은 득을 보고 있다고 생각해.”


(과거를 회상하는 표정) “자기 말을 듣고 보니까, 이번에 단기간에 보고서 써내는 과업도 고등학교 때 문학(literature)이나 역사(history) 과목 시험이랑 비슷하게 접근했던 것 같아. 질문이 주어졌을 때,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고, 처리하는 과정이 크게 다르지 않아. 그 질문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어떤지 몇 주 정도 생각해보고, 근거가 될만한 자료들을 훑어본 다음에, 몇 가지 추려서 내 주장과 근거를 조립하면 그게 보고서가 되는 거니까.”


(눈이 커지며) “그래 내가 말하는 게 이거야. 한국의 중고등학교까지의 교육 제도는 이런 훈련을 전혀 시키지 않아. 생각을 하면 안 돼. 무조건 해야 해. 생각하고 고민하는데 시간을 쏟으면 순식간에 뒤쳐지거든. 공부하고 시험 보고 그러다 보면 끝인 것 같아. 그때는 내가 공부를 잘했다고 그게 자존감의 강한 근간 중 하나였거든? 근데 지금 와서 보니까 학교에서 공부 잘한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고, 못한다고 절망할 필요도 없었어. 교실에서 벗어나면 사실 의미 없어.”


“맞아. 진짜 중요한 건 학습 능력인 것 같아. 공부 말고. 그게 동일시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 공부는 주어진 틀 내에서의 학습의 결과를 보는 평가 시스템에 대응하기 위한 방법이고. 학습은 새로운 정보나 질문을 접했을 때, 가지고 있는 지식을 결합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인 것 같아. 그 지식이 꼭 내 머릿속에 다 들어있어야 하지 않고, 책이나 강의, 혹은 스스로의 경험으로부터 체화해야 하는 능력. 공부를 통해 키울 수 있지만, 공부로만 키워지지는 않는 듯하네.”



“그래서 난 사실, 우리 아들만큼은 나의 길을 걷지 않았으면 좋겠어. 우리 아들이 중고등학교 내내 경쟁에 치여서 지친 상태로 세상에 나갔는데, 막상 그렇게 힘들게 해왔던 것들이 크게 도움이 안 된다는 허무함을 느끼면 내가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 자기가 말했듯이, 학교에서 공부는 그냥... 낙제만 안 하면 돼.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안 이상, 학습 능력을 키워주는 게 우리의 역할이라는 생각이 드네.”


“나도 자기 생각에 크게 공감해. 몇 년 전에 중남미에서 교육부 관계자 사절단 와서 일주일 동안 국내연수했었잖아. 그때 나도 동행했는데, 주제 중 하나가 초등학교 교육이었거든. 그래서 교육부도 가고 초등학교 면담도 하고 그랬는데, 당시 들었던 말들 중에 아들이 태어나고 가장 뇌리에 남는 말이 있어 - ‘초등학교 교사 양성 커리큘럼이 제일 힘들다. 초등학생이 8살에 입학을 하면, 약 20년 뒤 성인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다. 20년 뒤를 미리 생각하고, 어떻게 가르칠지 고민하는 일이 쉬울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필요한 역량에 집중해야지. 지금의 단기적인 성과보다는.”


“20년 후를 생각하고 고민한다니 약간 아찔하다... 우리가 예언가나 미래학자도 아닌데, 어떻게 그러지? 결국 우리가 미리 알고 어떤 길을 가야 하는지 잡아주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결국 아들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이 드네. 어떤 길을 가던, 그 길에서 필요한 능력을 스스로 배양할 수 있는 바탕을 깔아줘야 한다고 생각해. 학습 능력이 그 바탕이 아닐까?”


“내 생각도 그래. 일종의 자가 업그레이드 기능을 탑재시켜줘야지, 우리가 프로그램 다 짜서 세상에 내보내면, 우리 기준에서 한 거라 전혀 도움이 안 될지도 몰라.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 조금씩 지혜를 쌓을 수 있는 틀이 더 중요해. 공부를 많이 하면 아는 것이 많아지지만, 학습 능력이 탁월한 사람은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


“근데 학습 능력을 어떻게 키우지?”


“일단 우리 아들은 학습 능력이 높아지는데 아주 좋은 기초를 가지고 있어.”


“우리 아들 이제 돌 조금 지났는데 무슨 소리야?”


“엄청난 호기심을 가지고 있잖아. 학습의 시작은 궁금증이라고 생각해. 지금도 뭔가 새로운 물건이나 사람을 보면 관심을 가지고, 관찰하고, 그 대상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즐거워하고. 그 시작은 호기심이지. 학습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질문이라고 생각해. 질문을 던져야 답이 나와도 또 다른 질문을 하거든. 새로운 생각이나 혁신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거고. 지금은 저 선반 위에 뭐가 있을까를 궁금해하지. 하지만  커가면서 관심 영역이 넓어질 거야. 다섯 살 정도만 되어도 애들이 질문하는 기계처럼 계속 질문을 하잖아. 그걸 절대 귀찮아하지 말고, 최대한 잘 수용해보자”


온 세상이 다 궁금하잖아. 앞으로도 그러렴.


“난 그 질문들에 다 답할 자신이 없는데... 자기가 할래?”


“나도 자신 없는데. 그걸 다 미리 예습할 수도 없고. 그게 가능하면 나 천재 맞지. 모르면 모른다고 하고, 같이 알아보자고 하면 되지 뭐. 그리고 우리가 다 알아서 답하면 그게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궁금해서 직접 찾아보고 생각해보는 과정이 학습인데, 그걸 막아버리잖아. 난 사실 애들이 학교에서 흥미를 잃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궁금증을 억압해서 그렇다고 생각해. 정답만 잘 구하면 그 과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잖아.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가 결과에만 집중되어있는 것은 큰 문제라고 생각해. 조금만 더 장기적으로 생각해서 ‘우리 아이가 학습 능력이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건 내가 진짜 한국의 교육제도에서만 쭉 커온 사람이라서 보이는 반응일 수도 있어서 자기가 거부감을 느낄 수 있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공부는 안 시키고 호기심만 쫓게 두면 너무 뒤처지지 않을까?”


(웃으며) “어느 정도 기초적인 공부는 해야지. 호기심만 있다고 학습이 되지는 않아. 역사를 돌이켜봐도, 인류가 지식을 축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실행해서 그런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은 그냥 호기심이 많은 원숭이에 머물러 있었겠지.”


“자기가 무슨 말하는지는 알겠어. 근데 어디 가서 다른 사람 앞에서 그런 비유하지 마... 그런 건 나만 받아주는 거야. 사랑의 힘으로.”


“네...”


“하지만 공부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나도 동의하고 공감해. 학습 능력이라는 것도 기초적인 소프트웨어랑 데이터는 있어야 키워지는 거지. 물론 나도 우리 아들이 학교에서 성적이 좋지 않으면 신경은 쓰기겠지만, 그게 본질은 아닌 것 같아.”


“본질은 사실 점수보다도 더 잘 보이지 않을까? 우리도 회사에서 어떤 사람이 뭘 잘하는지 꼭 정량적인 점수가 나와야 파악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일 년에 두 번 인사평가 나올 때 ‘이 사람이 사실은 뛰어났었네’라고 알아채는 게 아니라, 이메일만 받아봐도 알 수 있지 않아?”


“그러네. 그런 면에서 독해랑 글쓰기 능력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는 부분이기도 하고. 아이디어가 있어도 그걸 표현하고 전달하는 연습, 그리고 내 생각의 근거가 되는 정보를 수집하고 종합하는 연습이 얼마나 중요한지 매일 느껴. 물론 우리 아들이 세상을 글로 배우는 사람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모든 것들을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울 수는 없잖아?”


“맞아. 특히 여자 친구가 생기면 글은 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해보겠지. 백날 읽어봐도, 실제로 도움이 되는 것은 한 번의 경험이니까. 근데 경험해보고 싶어도 안 되는 것도 있잖아. 가령, 왜 비소가 독극물인지 직접 경험을 통해 배우게 할 수는 없어. 그래서 난 수학과 과학은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자기 고등학교 때부터 수학 싫어서 엄청 스트레스받아했다고 어머님께 들었는데... 자기가 웬일이야?”


“싫지만 필요해. 수학과 과학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려면, 건물에 들어가 보거나 밤하늘만 올려봐도 알 수 있어. 벽돌을 쌓기도 전에 건물이 유지될지 알 수 있고, 직접 가보지 않은 우주도 어떻게 생겼는지 설명할 수 있잖아.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는 방법은 알아야 해. 설령 못한다 해도, 그 개념은 습득해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수학은 논리적으로 사고하고, 참과 거짓을 구별하는데 유용한 도구잖아. 최소한 사기 안 당하려면 배워야지.”


“이건 편견일 수 있는데, 수학이랑 과학에 집중해서 배운 사람들이 세상을 약간 0과 1이나 참과 거짓으로 판단하는 경향이 있지 않아? 나와는 다른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도 학습해야 하지 않을까?”


“맞아. 난 그래서 철학을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 그냥 누가 무슨 말을 했고, 몇 세기에 어떤 사상이 나왔다 외우는 그런 과목 말고. 언어로 구체화하기 힘든 개념이나, 사람 간 대립이나 윤리에 대해서 생각하려면 철학이라는 틀이 있어야 해. 완전 새로운 상황이나 아이디어를 접했을 때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해주게 하는 게 철학이잖아.”



“그렇게만 되면 우리 아이는 굉장히 지혜롭게 클 수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이런 거에만 신경 쓰다가, 막상 우리가 아이의 앞길을 막으면 어쩌지? 우리의 의도는 좋았어도, 막상 아들이 현명하게 크면서도 학교에서는 뒤쳐지면 걱정이 안 될 수는 없잖아.”


“그건 맞아. 단기적으로는 뒤쳐질 수 있겠지. 하지만 결국 독해, 글쓰기, 수학, 과학, 철학이 학문의 기초잖아. 교과목이라는 건 결국 그 학문의 위에 서있는 거고. 기초를 튼튼하게 키우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수월해질 거야. 다만 성적이라는 결과에 집착하지는 말자. 공부에 관심이 없는 부모가 되지도 말고. 우리 아들의 학습 능력을 키운다는 목표를 위해 좋은 도구들을 갖추도록 도움은 줘야지.”


“음... 근데 이제까지 우리가 한 이야기가 되게 추상적이라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우리 아이의 학습 능력이 좋아지고 있는지 알 수 있을지 모르겠네.”


“우리가 그 정도는 모니터링해야지. 근데 나는 그 방법이 성적이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야.”


“그럼?”


“내 생각엔, 우리의 역할은 잘 들어주는 것 같아. 아들이 무엇을 궁금해하는지, 그리고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웠는지, 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면 알 수 있어. 최고의 예습과 복습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아들이 책상에 앉아서 가만히 있을 천성이 안될 것 같아. 답답해서 못 견뎌할 거야.”


“그럼 어떻게 하게?”


“데리고 나가서 산책하면서 어떤 걸 배웠는지 물어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어보면 되지 않을까? 사실 학습하는 방법 중에 가장 효과성이 떨어지는 게 책상에서 앉아서 하는 공부야. 어떤 질문에 대해서 고민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그리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게 가장 효과가 높다고 하더라고. 우리 학교 때도 선생님이 말한 건 기억 못 해도 내가 친구한테 설명한 건 기억나잖아. 우리 뇌는 수신함보다는 발신함이 더 기능이 좋다고 하더라고. 어렸을 때는 말로 하고, 좀 크면 글로 써서 전달해보도록 하고. 고등학교 정도 되면, 반대 의견도 주고 반박도 시켜보면, 지식을 더 효율적으로 흡수할 수 있을 거야.”


“자기는 그럼 단순 암기 같은 학습 방식은 절대 반대야?”


“아니, 전혀.”


“의외네. 왜?”


“암기는 사실 필요한 정보를 빠르게 꺼내서 쓸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알고리즘이야. 컴퓨터로 치면 단축키. 그렇게 유용한 걸 반대할 이유가 없지. 다만 내가 절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건 질문하기와 이해하기 과정 없이 외우는 거야. ‘왜 이럴까?’라고 질문해보고, ‘그래서 그렇구나’라고 이해를 하고 외워야 머릿속에 남지. 무조건 외우는 건 사실 뇌를 물고문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야. 고통스럽기만 하고 남는 게 없거든. 물론 어떤 것들은 외우는 게 이해보다 쉽지. 가령 구구단 같은 거. 그리고 우리 아들이 모든 과목을 다 좋아할 수는 없잖아? 싫어하는 과목은 그냥 외워서 시험 보고, 잊어버리고, 이루고 싶은 목표를 향해 가는데 발목만 잡히지 않을 정도로만 하면 될 것 같아.”


“이렇게 가르치면 우리가 너무 유별난 학부모가 될까?”


“글쎄, 아직 우리 아들이 초등학교 가려면 멀었지만, 세상은 빠르게 변하잖아. 필요한 지식도 계속 변하고. 그러니까 오히려 우리 같이 생각하는 부모들이 더 많아질 수 있어. 자기처럼 학교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으며 성장한 부모일수록 더. 지금 당장 학교에서 조금 부진하다고, 장기적인 목표를 잊어버려서는 안 돼.”


“장기적인 목표가 뭔데?”


“결국에는 우리 아들이 스스로를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우리가 평생 옆에 붙어있을 수도 없고, 세월이 지나면 설령 우리가 계속 붙어있다고 해도 도움이 안 되니까.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실제 문제 해결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하면 돼.”


“그게 더 어려운 거 아냐?”


“그렇지. 당연히 그게 어렵지. 하지만 우리가 계속 옆에서 같이 노력해주자. 언어영역 성적이 안 나와도, 좋아하는 책은 꼭 사주고. 수학 점수가 떨어져도, 수학에 대한 생각은 하게 다큐멘터리라도 같이 보고. 생물을 싫어하면 여행 데려가서 신기한 동물들을 보여주고. 역사나 사회 과목에서 낙제한다고 잔소리하지 말고, 신문 스크랩이라도 주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그게 우리 역할이라고 생각해. 쉽진 않지 당연히. 특히 학교라는 제도 속에서 호기심을 유지시켜 주는 건 정말 어려울 거야. 질문이 많은 유별난 아이라고 타박받을 수도 있고. 하지만 최소한 부모인 우리는 그러지 말자.”


(웃으며) “그래. 나도 꼭 자기 교육 방침에 동참할게. 근데 자기가 이래 놓고 나중에는 막상 ‘외워사라도 시험은 잘 보란 말이야!’ 이러는 거 아니야?”


“내가 아들에게 무조건 외우라고 강력히 주장할 것은 하나밖에 없는데?”


“그게 뭔데?”


“나중에 결혼했을 때, 아내가 왜 그런지 궁금할 때마다 그냥 이해하지 말고 외우라고 하려고.”


“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돼. 그냥 외워야 결혼생활이 행복해.”


“지금 내 이야기하는 거야?”


“응!”


(쿠션으로 때리며) “어이구 그래 외워라 외워”



덧.


아들에게,


네가 꾸준히 호기심을 가지고, 책을 읽고,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공유한다면, 네가 학교에서 계속 낙제를 한다고 해도 엄마와 아빠는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필요한 지식도 계속 변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부에 관심이 없어도 학습은 멈추면 안 된다. 호기심을 가지고 세상을 보아라.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기 위한 도구를 준비하거라. 그리고 절대 혼자 학습하지 말거라.


학습하면 너 자신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세상이 바뀌어도 넌 항상 앞서가 있을 것이다.



알았지 아들. 이 세상에 암기과목은 결혼뿐이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보다 운동을 먼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