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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홈은 Jul 27. 2022

로그아웃

어서와, 오프라인

변화의 시점은 늘 어렵고 어색하다. 하지만 손에 익지 않은 일도 꾸준히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하는 것처럼 코로나19가 불러온 새로운 생활습관은 불편한 것 같으면서도 익숙하게 삶 속에 자리 잡았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대면 수업은 비대면으로 전환하였고,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실내에서의 모임은 제한하였고,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가지 않았다. 


사재기 사태로 웃돈을 얹어도 구하기 어려웠던 마스크는 이제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품목이지만 한 번 품절 사태를 경험했던지라 본능처럼 여분의 마스크를 구입하여 비상시에 대비한다. 외출 시에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외출하는 삶이 익숙해서 신선한 공기가 필요한 순간에나 마스크를 내리고 숨을 들이마신다. 모임을 하다가도 해가 지면 자연스럽게 귀가시간을 가늠하고 고개를 돌려 인원수를 확인한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2년 동안의 규제가 나를 이렇게 바꾼 것이다. 규제를 완화하면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코로나19가 주는 관성에서 탈출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아주 조금씩 엔데믹을 향해 삶의 경로를 틀고 있는 것에 반해 정책과 문서가 촉발한 세상의 변화는 지나치게 빠르다. 


비대면 학부모 연수는 딱히 준비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대면 연수는 강의 시작 한 시간 전에 외출 준비를 하고 필기도구와 소지품을 가방에 담고 집 밖으로 나가야 한다. 사람들과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아 강의를 듣고 질문을 하고 관련 서류에 서명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내가 이렇게 힘들어했었던가를 떠올려보지만 2019년 학부모 연수가 어땠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부엌에서 팥을 삶으며 시청한 2021년 12월에 들은 서울시교육청의 유튜브 스트리밍 연수가 생각날 뿐이다. 


둘째 아이의 첫 방과 후 교실 참관 수업을 다녀왔다. 마스크를 쓰고 입학식을 치른 학생이라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학교에서의 만남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교실에서 어색하게 눈인사를 했고 2년 만에 학부모 잠관 수업을 진행하는 방과 후 선생님은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1시간 30분을 어떻게 앉아있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금방 시간이 흘렀다. 비대면 참관 수업이었다면 아마 화면을 보며 다른 일을 하고 있었을 텐데 대면 수업은 딴짓을 하기 어려우니 내내 수업에 집중해야 했다. 조용한 교실에 '차그락 차그락'하며 아이들이 맞추는 큐브 소리가 울렸다. 시스템 에어컨과 선풍기가 조용히 돌아가고 교사가 지도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모들이 평가서를 작성하는 소리, 누군가 펜을 떨어뜨리고 줍는 소리, 작게 들리는 '감사합니다.'......


그간 격조했던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살아온 내게 다가오고 있다. 팬데믹 기간 동안 포기 혹은 무시하고 살았던 것들을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일에 적응하느라 노력 중이다.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띄워놓고 일하던 것보다는 비효율적일 것이니 예전보다는 해내는 일의 양이 줄어들 테다. 그럼에도 오프라인을 중심에 둔 삶이 시시하거나 아까울 것 같지는 않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균형을 잡기 위해 현실로 대체할 수 있는 부분은 '로그아웃'하고 '진짜'를 만날 시간이다. 오감의 역치를 높여 더 많이 실수하고 사랑하며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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