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지구와 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홈은 Sep 21. 2022

불편을 선택한 삶

인간과 자연이 함께 하길 바라는 소망

얼마 전 배우자에게 선물을 받았다. 레몬그라스 향이 나는 화장품이었는데 친환경 생산을 하는 스웨덴 브랜드였다. 향은 자극적이지 않았고 발림성은 우수했으며 끈적임도 적었다. 리필 화장품과 고체 화장품을 주로 쓰다 보니 딱히 새로운 용기에 든 화장품을 구입할 일이 없었다. 쓰던 용기에 새로 담아 쓰거나 종이와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팩에 든 화장품을 구입하다 보니 펌프 형태의 화장품 용기도 생소했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가 없었다. 삶에 새로운 플라스틱이 더해졌기 때문이다. 재활용 가능한 페트 소재의 화장품 통에는 '재활용 어려움'이 적힌 펌프가 붙어있었다. 재활용이 어렵기 때문에 펌프는 씻어서 계속 쓰는 것이 그나마 나은데 글리세린이 잔뜩 들어있는 화장품을 씻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물로 씻어야 한다. 배우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지만 아주 난감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친환경 제품이 담겨 있는 용기의 문제점과 스웨덴에서 한국까지 가져오기까지의 탄소 발자국을 생각하면 국산 리필제품을 쓰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말을 선물해준 사람에게 할 수 없다. 친환경을 하고 싶은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들어오는 선물을 감사히 받아야 하는 것은 힘들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지 않은 바를거리와 고체 씻을거리를 쓰겠다고 선언했을 때 식구들은 난감해했다. 짜서 쓰고 거품도 풍성한 액체 씻을거리에 익숙해져 있던 식구들에게 불편함을 주겠다는 말이었으니까. 사용하던 펌프 통을 마지막으로 바를거리는 덜어 쓰는 통으로 교체하였고, 치약과 샴푸 같은 씻을거리는 고체로 바꿨다. 시행착오를 거치며 익숙하게 받아들이기까지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집에 놀러 온 사람들은 화장실을 사용하고 화장대에서 로션을 빌려 쓰기도 한다. 샤넬, 바비 브라운, 맥, 키엘 같은 브랜드 제품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어있던 곳이 이름도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정체불명의 용기들로 채워진 모습을 보며 놀라는 사람도 있고 딱하다는 듯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정제수와 글리세린이 대다수인 바를거리지만 브랜드 제품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한 사람들에게 내 화장대의 변화는 작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보이는 것에 민감한 사회에서 남루한 것을 보여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나는 한때 펜디와 보테가 마니아였다. 프라다나 페라가모를 쓰다가 다른 브랜드로 옮겨가면서 갖고 있던 가방과 지갑도 모두 교체했다. 부드럽게 가공된 가죽으로 만들어진 제품들을 사용할 때면 좋은 제품을 골라 곱게 사용하는 나의 취향과 성격이 드러나는 것 같아 자부심도 들었다. 가죽이 죽은 동물의 피부라는 것을 인식한 후부터 가죽 제품 사용을 줄여나갔다. 쓰고 있던 것들이 질리면 팔아버리고 새로 살 일이 생기면 유기농 면가방 또는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재활용 가방을 구입했다. 학부모 모임에서 곁눈질로 나의 가방을 훑어보던 사람들의 눈초리를 신경 쓰지 않게 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철마다 옷을 구입하던 습관도 버렸다. 한 번 구입한 옷은 낡아서 찢어질 때까지 입고 집에서 입는 옷은 찢어져도 대충 꿰매서 그냥 입었다. 구입 당시의 반듯함을 잃은 옷은 나를 남루하게 만들었다. 신상과 새로운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에 둔감한 사람이 되었다. 집으로 날아오는 카탈로그와 회원 할인 혜택은 점점 줄어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닫힘 버튼을 누르지 않는다. 탈 사람이 오고 있을 때는 열림 버튼을 눌러 쓸데없는 운행 시간을 줄이지만 불필요한 닫힘 버튼을 눌러 안 써도 될 에너지를 쓰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함께 탄 사람이 버튼을 누르면 어쩔 수 없다. 어쩌다 한 번씩 마주치는 주민에게 다음부터는 닫힘 버튼을 누르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고 전기 에너지 절약에 대해 일장연설을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면 가능하지만 그럴 때도 좋은 소리는 듣지 못한다. 고작 닫힘 버튼 누르는 것으로 에너지 절약을 생각하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 더 많다.


말 좋아하는 호사가들은 쉽게 비웃었다. 정치인도 아니고 환경 운동가도 아니면서 뭘 그렇게 까다롭게 사는지 모르겠다며 말이다. 이젠 고기도 먹지 않는다니 갈수록 가관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내 뒤에서 하는 이야기는 이렇다. 

앞에서 점잖게 하는 말이라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섬세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지는 않으니 나는 까탈과 섬세의 중간 지점에 애매하게 자리 잡은 사람이 된다.


 용기를 들고 다니며 음식을 사고,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방에 장바구니를 챙겨 다니며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뜨개질을 할 때는 가성비보다 유기농 면사로 제작한 공정무역 제품인지를 따지는 삶은 피곤하다. 택배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고 살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노력과 돈이 들어간다. 피곤하고 비싼 삶을 유지하려면 많은 불편함을 감내해야 한다. 내가 선택한 불편함은 나를 바라보는 타인도 불편하게 만든다. 불편한 마음이 점점 커지면 어떤 사람들은 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식구들은 나만큼 열심히 분리수거를 하지 않는다. 씻기 귀찮으면 재활용 가능한 것들을 그냥 종량봉투에 버리기도 하고 테트라팩도 대충 씻어서 비린내가 나기도 한다. 주부인 나의 선택이지 그들의 선택이 아니니 열심히 할 이유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좀 더 자라거나 독립을 하게 되면 나와는 전혀 다른 삶을 선택하고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불편한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불편한 삶을 선택한 나는 많이 달라졌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과거의 나와 비교하면 그렇다. 식구들은 플라스틱 구입에 민감해졌다. 똑같은 내용물이라면 플라스틱 대신 유리를 선택한다. 유제품이 먹고 싶을 때 아이들은 동물복지 무항생제를 찾는다. 택배를 뜯거나 쓰레기를 정리할 때 배우자는 포장지의 분리수거 유무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경을 위한 불편함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주변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쓰레기로 만든 가방을 들고 칠이 벗겨진 텀블러에 음료를 받으면서도 주눅 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불편함이 사그라든다. 달라진 나를 불편해하지 않고 불편함을 일상으로 만드는 마법을 부리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더 불편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니 세상이 편리를 추구한다고 속상해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과 자연이 오래 함께하길 바라며 새로운 불편함을 찾아 선택할 뿐이다.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식물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