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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쏘 Nov 21. 2019

느슨하고 다정한 동료들과 글을 쓰는 동안 생각한 것

영은 아니지만 올드도 아니겠지(2)


여섯 명이 모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서 뭔가를 쓸 수 있게 될까…? 퇴근 후 두 시간 동안 앉아 있는 습관이 생기면 좋겠다. 

내가 쓰는 글은 여기 저기 있다. 다른 사람 책이나 회사 뉴스레터에 들어가기도 하고, 노트 한쪽에 작은 메모로 남기도 하고, 쓰다 말고 발행 못한 저장글에도 있다. 어릴 때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시험기간에도 몰래 서랍에 숨겨놓은 소설을 꺼내 읽던 아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자연스러운 꿈은 어른들의 칭찬을 받거나 독후감 대회에서 상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라다가 고등학교 때쯤 무너진다.  

“작가가 되면 굶어 죽는대.”  

국문학과 진학을 포기하고 작가의 꿈을 잊고 사는 일은 쉽다.  


글을 써서 뭐가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열심히 쓰는 사람들이 내 옆에 다섯 명 앉아 있다. 서로 느슨하되 적당히 자리 잡고 앉아 있게 해주는 동료가 되어 주기로 했다. 하고 싶은 일인데… 집중력의 한계가 이렇게 빨리 오다니. 술과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이 필요하다.  

한 시간 동안 고민만 하다가 십 분 전부터 의식의 흐름대로 쓰기 시작했다. 미루는 습관을 고치려면 작은 것이라도 완결해야 한다. 그리고 머릿속에 꽁꽁 뭉쳐 있는 것들을 바깥으로 꺼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어떤 일은 완성도보다 완성했느냐가 가치 있기도 해서.


작년에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이 된 기념으로 출판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면 멋진 것 같지만 사실은 괴로운 일이 더 많았다. 잘할 수 있을까? 가만히 있으면 플러스도 마이너스도 아닐 텐데. 나는 꼭 이렇게 하고 싶은 걸 해봐야 되는 사람인가? 시작한 이유를 생각해본다.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기는 했다. 7년 넘게 책을 몇십 권이나 만들었는데 혼자서 내고 싶은 것을 내면 행복해지지 않을까 했다.  

예전에는 그래 언젠가는,이었는데 지금 회사에 있으며 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정말 많이 봤다. 많이 팔린 책도 책이지만 예를 들면 S스튜디오. 어린 친구들이 처음 만든다는 책을 그렇게 완성도 높게 이끄는 것을 보면서 자극받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수두룩했고… 가까이 있었다. J프레스. 옆자리 동료가 벌이는 멋있고 고생스러운 일들은 답답한 조직생활의 탈출구처럼 보였다. 실제로 돈이 얼마나 벌릴지 모른다는 게 두려워서 계속 회사를 다니지만 나도 공간 운영도 하고 싶으니까, 쫄보 주제에 내 일을 할 수 있을지 테스트가 필요했다.  

퇴사학교 커리큘럼에 그런 게 있었다. 사이드 프로젝트로 월급 외에 10만 원 벌어보기. 외주 일을 하기는 했지만 하던 일 말고 뭔가 도전하는 게 필요했고 새로운 일도 하고 싶었고 가능하다면 나중에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했다. 월급 외에 소액 벌어보기가 현실적인 체험으로 보였다. 그럼 그토록 원하던 정직원인 상태에서 저질러보자.  

그런 생각이 들 때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모델 한혜진이 커리어 시작한 지 10주년엔 책을 냈고, 15주년이라 그림을 그린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오디너리 애니버서리 미팅을 갔다. 얘기하던 도중 이런이런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 했을 때 머리가 딩 했다.  

이건 해야 돼, 지금 해야 돼. 왜 그랬는지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의아한 면도 있다. 그냥 와인책도 아니고 와인과 어울리는 요리책이라니. 주력 분야가 실용도 아니면서. 그런데도 시장조사도 철저히 해보지 않고 제작비도 정확히 안 알아보고 덜컥 나랑 하자고 제안을 했다. 아마 이전에 갔던 취향의 와인 클래스에서 가게 사장님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좋았고, 와인 큐레이션이나 클래스로 보여주는 기획 같은 것이 마음에 들었던 참에 나는 또 와인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출판사도 하고 싶고… 그런 것들이 몽땅 그 시점에 맞았던 거 같다. 시작하기 좋은 시기에 만난 책이다.  


그렇게 출판사 신고하고, 사업자 등록도 하고, 계약서에 도장 찍고 계약금 지급도 하고, 선배들을 만나 1인 출판 하는 법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기획하고, 섭외하고, 에디팅하는 것을 빼면 나는 참 아는 게 적었구나. 그렇게 많은 세월 동안 더 폭넓게 배워두지 못한 것이 후회됐지만 이미 늦었다. 다시 하나하나 물어가며 하는 수밖에 없다. 다행히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있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있다. 책 한두 권쯤은 만들 돈도 모아뒀다. 몇몇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너는 진짜 잘할 거 같아’라는 말이 돌아온다. 얘들아 아니야. 망할까봐 걱정뿐이라고. 

출판사 이름은 보틀프레스다. 사람들에게 농담처럼 이야기한다. 와인책만 낼 것은 아닌데 어쨌든 와인병 모양 로고이고, 이게 사실은 계속 출판사 이름이 될지 술집 이름이 될지는 모르겠다고. 그런데 일단은 에세이를 몇 권 내고 싶다고. 한 권을 낼 때마다 천만 원씩 깨진다는 건 시작하고 알았다. 인생 수업료로 비싼 걸까 싼 걸까. 


보틀프레스의 탄생을 곱씹다가 슬슬 마무리할 시간이 됐다. 목요일 저녁 일곱 시부터 아홉 시. 이 시간을 매주 기다려가며 문장 몇 개씩이라도 쓰게 된다면 큰 소득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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