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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다 Nov 08. 2019

잘 살고, 잘 자고 싶어 씁니다.

파자마 라이프의 시작/ 언제나 씀씀이의 이유는 거창합니다.

#0
‘잘 산다’는 말의 기준은 무엇일까? 경제적인 의미가 가장 크게 떠오르긴 하지만, 요즘 나의 생활에서 ‘잘 산다’의 의미는 ‘사람답게’, ‘기본에 충실할 수 있게’ 산다는 것이다. (물론 씀씀이답게 무엇이 될지는 모르지만, 유형의 어떤 것을 잘 사기도..?)
내 나름대로 정의는 내려 보았으나, ‘잘 산다’는 의미를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하고 있다. 텍스트 그 자체로만 보면 그리 어려워 보이지 않는 일 이건만 왜 이리도 사람답게, 기본에 충실하게 살기 어려운 것일까.


#1
기본에 충실했던 지난날 씀씀이를 그리워하며


나의 10대와 20대 가장 호기로웠던 씀씀이 중 하나는 ‘잠’이 아닐까 싶다. 쫓기지 않는 삶. '미래에 대한 불안’은 다들 비슷한 시기에 겪어야 하는 유행과 같은 것이라서 비슷하게나마 흉내 내 보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리 치열하게 살지 않았기 때문에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하고 ‘잠’을 자는데 쏟아부었던 것 같다. 보통 이 대목에서는 그래서 지난날 허무하게 다 써버린 시간들이 너무 후회스럽고 아깝다는 말이 나오겠지만, 솔직히 신생아처럼 잠만 자다 허송세월을 보낸 그때가 아깝긴커녕 너무나도 그립다.

#2
그 시간을 그리워하는 이유가 딱히 있겠는가, 제대로 ‘잠’을자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 이유라 할 것 도 없다. 학생 때 보다 경제적인 여유는 생겼지만 그 여유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인 시간을 쓸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가진건 그 순간의 시간뿐이니. 시간이 부족해지니 결국 채워진 주머니를 다른 방식으로 비우며(새로운 씀씀이를 실천하며) 이제는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잠’을 위한 그럴싸한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게 되었다.


#3
제대로, 잘 살고 싶어서 시작된 씀씀이.

시간 걱정 없이 ‘잠’을 청하던 시절에는 넝마를 입고 자도 별안간 상관이 없었다. 그러다 나에게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졌기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한 그 이후부터는 ‘공’과 ‘사’, ‘쉼’과 ‘활동’, ‘공간’ 등 사소한 것들을 나누고 달리보고 행동하기 시작했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가장 크게 그리고 이제는 굳혀진 사소한 습관이 바로, ‘파자마’를 입고 모으는 일이다. 온전히 쉰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 바깥에서의 나와 구분 짓고 싶어서 하나둘 사 입기 시작했더니 이제는 습관 아닌 습관이 되었다. 큰 어려움이 없다면, 짧은 여행길에도 ‘파자마’를 가장 먼저 챙길 만큼.  TPO, TPO. 일 할 때, 제안서 쓸 때나 주구장창 이야기했지 이렇게 철저하게 환경에 휩쓸려, 또는 순응하며 살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

잘 쓰고 있는 나의 씀씀이 아이템 하나

‘내 씀씀이의 활력을 불어넣어줘서 고마워, 존스 씨’


‘파자마’없이 자는 것이 어색해졌다고는 하지만 세상 까다롭게 소재부터 하나하나 따져가며 파자마를 고르는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들면 그만. 하지만 그중에서도 좋아하는 것을 굳이 꼽자면, 홈웨어 브랜드 ‘슬리피존스(sleepy jones)’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It’s the time when we are unplugged and being ourselves.”


구입해본 적은 없으나, 매우 친숙한 이름의 디자이너 케이트 스페이드 남편 앤디 스페이드가 2013년 런칭한 홈웨어 브랜드 ‘슬리피 존스’. 본인의 마음에 드는 홈웨어가 없어서 직접 브랜드를 런칭하셨단다. 처음에는 브랜드 스토리를 보고, 있는 자들의 허세일까 싶었지만 가만히 살펴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다. 이제는 파자마의 교과서 같은 슬리피존스. 군더더기 없는 마감과 디자인에 무턱대고 시작한 일이 아님을 머쓱하지만 깨달아본다.


국내에 매장이 없고, 가격대도 착하다 말하기 애매하지만 종종 수고스럽게 이 곳의 파자마를 사는 이유는 일단 귀여운 게 최고니까 가장 큰 이유로 꼽을 수 있다.

두 번째. 귀엽고, 예쁘고, 좋은 건 다 하지만 선을 넘지 않는다. 속도와 유행을 타지 않겠다는 오너의 생각대로 질리지 않고, 계속 손이 가는 적당한 디자인을 꾸준히 선보인다. 잠들 때마다, 자주자주 꺼내 입어야 하니 질리면 곤란하다. 그렇고말고.

세 번째.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만들어진 무언가’를 소비할 때 내 스스로를 잘 돌보고, 애정을 쏟는구나의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괜스레 소중한 사람이 된 기분이 들어서인지 이 기분을 맛본 이후 꾸준한 씀씀이를 이어가는 중. (번외로 생각보다 자주, 그리고 많이 프로모션을 해서 생각보다 가성비 좋게 소비할 수 있다. 그래서였을까.......)


<SLEEPY JONES SOHO, NYC>

몇 개월 전 거의 8년 만에 뉴욕을 다시 찾았을 때에도 ‘슬리피존스’ 때문에 소호에 들렸다.

파자마를 입은 러블리한 직원에게 내가 평소 이 브랜드를 애정한다는 사실을 소소하게 전하고, 직구의 과정에서 항상 직면하는 사이즈 고민 없이 다양한 아이템을 입어본 것은 물론,  세일 기간이라 득템까지 하며 아마 가장 즐거웠던 씀씀이 순간이 아녔을까 싶다.



원치 않아서 쓰고,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 쓰는 일들의 연속이지만 잘 살고, 잘 자고, 잘 지내기 위해 앞으로도 잘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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