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리야, 푼힐-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히말라야를 가보고 싶다는 오래된 생각은 그냥 막연한 것이었고, 그것이 나의 의지에 의해 생겨난 소망인지, 아님 멋들어져 보이는 여러 이미지들 중 어느 하나가 냅다 주입된 것이지는 모호했다. 아마 후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
장 보드리야르의 지적대로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실재가 아닌 광고를, 이미지를, 기호를 소비하고 싶은 욕망은 아닐까 의심해 본다.
아는 후배에게서 어린 시절 노트르담 드 파리를 보고 프롤로 신부를 연기하는 배우의 노래와 연기에 매료되어 그 집의 메이드라도 되고 싶었다고, 그래서 불어 공부를 열심히 했었다는 다소 엉뚱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이런 정도는 되어야 자기의 자발적 소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버킷 리스트라고 하는 이런 욕망이 어디에 기원했든 간에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시간과 상황이 나에게 생겼다. 그러니 일단은 시도할 밖에~
안나푸르나 트레킹으로 유명한 여행사를 통해 가려다가 개인적으로 가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 것은,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 때 생기는 번거로움을 피하고 싶은 경향이 요즘 들어 강해진 것이 주요 이유가 될 것 같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에 대해 정보를 얻기 위해 유명하다는 네팔히말라야트레킹 카페에 가입을 하려고 하는데, 응??? 언제 적 관심의 발로인지 이미 가입이 되어 있다.
정보를 얻고 남들의 여행 소감을 공유하며 이미 다녀온 친한 선배의 조언을 더해 푼힐- ABC로 코스를 정하고 일단 비행기표를 끊는다. 윽, 얼마 전에 경유를 해서 왕복 40만 원대 티켓도 확인을 한 것 같은데, 여권을 다시 하느라 시간을 조금 지체하는 사이 50만 원 중반대가 최저가가 되었다. 국적기 가격이 170~200만 원 사이에 있으니, 환승 이슈를 안고 있긴 하지만 큰 고민 없이 선택을 한다. 갈 때 올 때 모두 청두에서 15시간여를 기다려 환승하게 되는데 환승 시 제공되는 무료 환승호텔과 픽업 샌딩 서비스를 이용할 수가 있다고 한다. 퇴직을 하고 나니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이 이럴 때 기분 좋게 다가온다.
일정이 잡혔다. 4월 8일 출발 21일 도착.
이제 한 달여 남은 기간 등산을 잘할 수 있는 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평소 자주 다니고 집에서 전철로 접근이 쉬운 수락산, 북한산, 도봉산 등을 번갈아 가면서 코스를 늘려가면서 주 2회 등반을 한다. 천천히 다니니 등반 길이를 늘여도 별 어려움을 느끼지는 않게 되었다. 천천히 가야 멀리 갈 수 있다. 천천히 천천히~
포카라 윈드폴 게스트하우스에 숙소를 예약하며 가이드 퍼밋 지프 트레킹 비용 등에 대해 도움과 조언을 구했다.
몸을 만들고 장비 몇 가지를 구입하고 가이드를 구하며, 내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욕망을 나의 소망으로 바꾸어간다.
이제 출발이다.
문이 열릴 때마다
멀리 걸어온
네가
성큼성큼
꽃봉오리에는
시작을 준비한
다부지게
쥐어진 주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