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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통로봇 Apr 27. 2024

히말라야 뛰어다녀봤어?

비 맞기 싫어

반단티 – 고라파니(1박) - <푼힐> - 고라파니 – 데우랄리(차 한잔) – 반단티(점심) - 타다파니 – 츄일레(2박)           




히말라야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가지는 막연한 두려움 중 가진 큰 것이 고산증이었다.

행군에 가까운 빠른 등반 속도를 보여주는 한국 중년 남성들의 목표 지향적 등산 스타일이 과정을 즐기지 못한다는 것과 고산증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지적을 들었던 적이 있는지라, 푼힐 –ABC 트레킹을 하면서는 천천히 천천히(네팔말로 비스따리) 가는 것을 마음에 새기면서 가고 있었다.


어제에 이어 걸어가는 길은 네팔의 국화라는 랄리구라스가 온 산을 가득 채운 멋진 풍경뿐 아니라 천 길이라는 말이 적게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절벽들이 연달아 이어지기도 하고 능선 위에서의 조망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길들을 지나게 되면서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 행복한 길이었다.     


또 포카라에서 지프를 셰어 해서 타고 와서 함께 산행을 하게 된 푼힐만 목표로 트래킹을 하는 일행이 있어 선행 가이드가 보조를 맞추어 주느라 천천히 가고 있어 속도를 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반단티 (어제 지프를 내려서 트레킹을 시작한 곳의 지명도 반단티였는데, 지명이 같은 곳들이 종종 있어 헷갈리게 만들기도 한다)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부터 타르초(風幡 -불교 경전이 쓰인 오색 깃발을 긴 줄에 걸어 두어 바람에 날리게 한 것, 바람을 타고 진리가 세상에 퍼져 중생들이 해탈하라는 염원이 담겼다고 한다)를 세차게 날리던 바람에서 비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타다파니에 거진 다 와 갈 무렵에는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도 한다. 여기까지 동행했던 일행은 타다파니에 롯지를 잡아 여기서 머물게 되니, 츄일레까지는 내 가이드 시바와 나만 가면 되는 상황. 요란하게 울리는 천둥소리에 비를 흠뻑 맞으며 가는 모습이 머리에 떠 오르며 ‘아, 비 맞기 싫은데’라는 생각이 강력하게 발길을 유혹한다.


 평소 비 맞고 등산하는 걸 즐기지도 않거니와, 우비를 쓰고 산행을 하는 상황은 더욱 좋아하지 않는다. 비를 맞으나 비옷을 입어 땀으로 젖으나 매 한 가지라는 생각이 있어, 저체온증을 조심하며 여간해서는 비옷을 입지 않는다. 좋은 습관은 아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일정이 창창히 남은 지금 비를 맞으며 몸을 춥게 할 수는 없어서, 비가 오면 비옷을 안 입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시바에게 남은 길의 거리를 물어보니 40여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빨리 갈 수 있냐고 물으니, 너만 가면 자신은 전혀 문제가 없다는 눈빛으로 가시는 만큼 따라오겠단다.


자 그럼 시작. 한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를 맞으며, 내리막 길을 달려 내려가기 시작한다. ‘이건 빨리 가려는 것이 아니라 비를 피하려는 몸부림이다’라고 위안을 하며 실수로라도 미끄러지지 않게 하기 위해 보폭을 짧게 하면서 빠른 속도로 내려가는데, 여기에도 얼굴이 하얀 원숭이가 보인다. 타다파니 도착 전 숲 속에서 보았던 부류의 원숭이들이다. 간혹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협한다고 느끼면 공격을 하기도 한다니 남의 영역을 지날 때는 경거망동한 행동을 자제하고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지나가야겠다. 내리막 계단과 돌길 숲길을 거침없이 내려와 숙소로 들어가는데 마지막에 우리 초보 가이드 시바가 롯지 들어가는 길을 잘 못 들어 다시 5분여를 올라가는 상황을 만들어 미안해 죽으려고 한다. 어차피 힘든 길을 걸으려고 와서 걷고 있는 판에 그거 조금 더 걸은 게 무슨 대수겠냐고 아무 문제없다고 대답을 해 줘도, 마지막에 힘들 때 좀 더 걷게 한 것이 자꾸 마음에 남나 보다. 마음이 여리고 사람이 진실된 태도를 보여주어 트래킹 내내 나를 편하게 해 준 시바 가이드.


아무튼 20분 가까이 시간을 줄여 내려와 롯지에 도착하니 천둥소리가 더 요란해지고 살짝씩만 내리던 빗줄기가 굵어지고 거칠게 쏟아지기 시작한다. 거의 비를 피해 왔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짐을 풀어 정리하고 따뜻한 물로 씻고 나와 다이닝 룸으로 들어가니 난로가 피어져 있다. 난로가 만들어내는 온기는 어디서나 고향을 느끼게 해 주는 맛이 있다. 마지막을 고생한 나와 시바(술을 하지 않는다)를 위해 맥주와 콜라를 시켜 축배를 든다. 시바는 자신이 가이드하면서 뛰어 내려와 본 것은 처음이라며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한다. 이후로도 이 얘기를 여러 번 했으니 그에게도 인상적인 기억이었던 것 같다.

다이닝 룸 창밖을 보며 맥주를 홀짝이고 있으니, 우비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속속 도착을 한다.

도착한 사람들 마다 젖은 신발을 숙소 앞에 내놓고 우비와 젖은 옷 등을 방 앞 빨랫줄에 죽 걸으니 롯지 앞에 타르초를 걸어놓은 듯한 풍경이 펼쳐진다.  


한바탕 쏟아 던 빗줄기가 잠시 소강 상태를 보이더니 산너머로 흐릿하게  마차푸차레의 모습을 보여준다. 새벽에 푼힐에 일출을 보러가서 보고 싶은 봉우리 였으나 구름에 가려 볼 수 없었기에 저만큼이라도 보는것에 반가운 마음이 둔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오후에 비가 내렸는데, 이곳 날씨가 아침에는 그래도 맑은 날씨를 보이다가 점심을 전후해서 아래로부터 뿌옇게 안개, 구름이 올라오면서 비를 뿌려대곤 한다.  날씨는 이후로도 계속 같은 패턴을 보였고 이틀이나 더 오후, 저녁에 비를 뿌렸다.


어제 이어 오늘도 도착하고 나서 바로 비가 쏟아지니, 아무래도 아침에 일찍 움직여 날씨가 안 좋아지는 시간 대에는 롯지에 도착해 있자고 시바와 이야기를 나누어, 일정 중에는 계속 7시에 아침을 먹고 7시 30분에는 출발을 했는데, 이렇게 해서 다행히도 일정 중에 비를 맞으면서 걷는 경험은 피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나서 노트를 꺼내서 오늘 하루의 일정을 정리하고 있자니, 난로 주변으로 가이드들이 모여서 흥겹게 이야기를 나누다, 한 명이 악기를 들고 온다. 흥겹게 이야기를 주도하던 수염이 멋있는 가이드가 악기를 잡으니 폼새가 여간 나는 게 아니다. 악기 연주를 하려고 해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멋있게 잘 찍어 달란다.

그리고 연주를 하는데, 하! 이건 속았네. 그냥 뚱땅거리며 시시덕거리는~. 그러자 여기저기서 서로 그냥 한 번씩 만지고 돌아가며 뚱땅거리다가 나에게도 한번 쳐보라고 건넨다. 그래도 건너편에 앉은 가이드 한 명이 제대로 두드리며 노래를 하니 민요 풍의 노래를 가이드들이 따라서한다. 난로 주변으로 가이드들과 트래커들이 모여 왁자지껄해지자, 먼 길 돌아오게 된 동네 사랑방 같은 훈훈함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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