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랑라희 Dec 12. 2022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창극의 내일을

창극의 내일을 기약하는 첫걸음

창극의 내일을 기약하는 첫 걸음

-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의 신진 작창가들 ©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이 새롭고 의미 있는 문화사업을 시작했다.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가 그것이다. 작창가와 극작가가 한 팀이 되어 판소리 일곱 바탕 중 유실된 소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창작해 단막극으로 발표하는 자리다. 총 4팀이 선발되어 국립창극단의 작품을 이끌어온 멘토들과 함께 올 한 해 동안 담금질을 한 작품을 관객 앞에 펼쳐 보였다.

창극은 한국 고유의 음악극이다. 오페라나 뮤지컬의 중심적인 표현 방식이 극음악이고 작곡가의 역량이 중요한 것과 같이, 창극에서는 소리의 길을 알면서 극 전반의 흐름을 음악적으로 설계하는 이가 작창가다. 때문에 신진 작창가의 발굴과 육성은 국립창극단에서 그간 행한 새로운 창극을 만들어가는 데 있어, 창극의 미래를 기약하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의 발표작은 이 자체로 완성이 아니라 개발 중인 작품이고, 단막으로 구성되어 섣불리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단막으로서도 창작자가 가진 색깔이나 메시지, 역량을 드러내 보이기에는 충분하니, 평에 다소 씁쓸함과 날카로움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발판이자 약으로 삼아 장막으로 완성된 좋은 작품으로 다시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흥겹게 한판 놀자, <옹처>

작창가 장서윤, 극작가 김민정 © 국립창극단


소리는 잃고 사설만 남은 옹고집 타령을 기반으로 그의 처 옹처를 중심에 두고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원전에서 심술궂은 옹고집을 벌주려 가짜 옹고집을 만들었다는 설정만 가져오고, 진짜 옹고집이 돌아온 뒤 아이들이 짚으로 변해 허무함에 그에게 다시 돌아갔다는 결말은 바뀌었다. 

음악적 구성이 좋다. 극적 템포와 어우러진 작창과 폭넓은 악기적 활용이 돋보인다. 관객이 흥겹고 즐겁게 작품을 따라갈 수 있게 한다. 단막극임에도 극적 사건이 해결되고 소리와 음악적 다양성을 선보이는 완결성을 보여줬다. 가사의 내용도 충실하고 말맛의 재미를 주었다. 

의태어로 재치 있게 작품을 표현한 첫 곡과 마지막 곡이 수미쌍관으로 구성되고, 진짜와 가짜 옹고집 사이 밀당과 기싸움이 계속되며 다양한 소리가 펼쳐지고 쉴 새 없이 몰아친다. 옹고집의 아이들 캐릭터도 요즘 아이들의 특성을 반영해 가사와 창으로 극적 재미를 주는데 일조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옹처를 극의 전면에 내세웠지만 뾰족하게 캐릭터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옹처의 극적 목표가 모호하다. 진옹과 허옹 사이, 극적 시간 안에 진옹을 찾아야만 하는 이유, 마침내 찾은 진옹을 포기하는 이유가 선명하지 못하다. 더불어 이 작품이 장막으로 완성됐을 때 현대적인 시사점이 무엇일지 제시할 필요가 있다.

옹고집의 자식들이 현대적으로 해석된 방식 등을 보아 창극 <변강쇠 점찍고 옹녀>와 같이 해학과 풍자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다면, 그 계보를 이을 작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애매모호한 사설, <강릉서캐타령>

작창가 유태평양, 극작가 김풍년 © 국립창극단


‘강릉 매화타령’이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 강릉서캐타령은 바닷가에 버려진 골생원이 겨드랑이에 붙어있던 서캐 세 마리의 도움을 받아 속옷을 지어 입고 다시금 일어선다는 내용이다. 소리가 유실된 원전에서는 기생 매화와 강릉 사또가 허랑방탕한 골생원을 골려주는 이야기가 뼈대다.

소재는 참신했다. 제목에서도 내세웠듯, 서캐가 주요 캐릭터인 사례는 드물었기에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았다. 우선 극 대부분 특히 중요지점이 창(소리)이 아닌 대사로 진행되어 다소 무미건조했다. 소리 대목도 말맛과 내용적 충실함을 살리지 못한 가사로 채워졌다. 

서캐들과 골생원의 캐릭터가 선명하지 못하고 관계성도 약하다. 서캐들의 캐릭터를 극 초반에 작창과 음악적 설정 등으로 명확하게 제시해주었으면 그 매력으로 극을 이끌어갈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 그랬다면 서캐가 인간 골생원과 소통한다는 극적 설정도 보다 재미있게 다가왔을 것이다. 해당 작품에 출연한 소리꾼(창극배우)들은 창극단의 얼굴들인데 활용이 아쉬웠다.

게다가 서캐 역 3인이 등장해 사설을 할 때부터 사족이라고 보였는데, 나아가 관객이 강릉 매화타령을 모를 테니 한 대목 훑어주겠다고 한 지점은 더욱 의아했다. 더구나 이 부분은 이후 진행될 강릉서캐타령과의 연계성조차 부족해 보였다. 단막으로 주어진 30분 안에서도 극적 및 음악적 완결성을 보여야 함에 있어, 위와 같은 선택은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맘껏 펼쳐낸 실험, <게우사>

작창가 서의철, 극작가 이철희 © 국립창극단


유실된 판소리 일곱 바탕 중 ‘무숙이 타령(왈짜 타령)’을 기반으로, 막돼먹은 무뢰한 김무숙을 남편으로 둔 아내가 평양 기생 의양으로 변신해 그를 일깨우기 위해 길을 떠난다는 내용이다. 2인극으로 구성되어 처(아내/의양)과 도창(다수 역할)이 중심이다.

작창과 음악적 실험성이 두드러졌다. 신시사이저와 베이스 기타, 북과 장고 등을 활용해 창극이라는 제약이나 음악적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다양하게 구성했다. 극적 설정이나 음악적 구성을 산발적으로 펼쳐놓기는 했지만 창작자 그들만의 세계관을 구축하려는 노력은 충분히 보인다. 

그야말로 실험적이라는 표현이 걸맞은 작품이다. 극이나 음악을 풀어가는 과정을 보니, 극작가와 작창가 모두 4차원적 인물이겠다 싶은 예상이 들었다. 일반 대중 관객 입장에서는 다소 난해하다고 볼 수 있으나, 매니아적 관객들은 열광할 법한 작품이 될 수 있겠다.

창극단 단원 대다수가 출연해 규모 있는 작품으로 제작해야 하는 국립창극단의 특성상 2인극은 이곳에서 공연화되기 어렵겠지만, 이후 알차게 개발하면 대학로 소극장 규모에서도 흥미롭게 관극할 수 있을 만한 작품이다.

 

진정성 담은 한국의 정서, <덴동어미 화전가>

작창가 박정수, 극작가 김민정 © 국립창극단


조선시대 여인들이 남긴 내방가사 ‘화전놀이-화전가’를 바탕으로, 잇단 불행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한 여성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엮었다. 신세 한탄하며 목숨을 끊으려는 청춘 과부를 보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덴동어미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이 작품에는 비애의 정서가 가득하다. 극과 작창된 음악을 들으며 장면을 상상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무대적 그림이 그려지는 작품이다. 가사에서의 말맛이나 언어적 표현도 알차고 아름답다. 덴동의 의미가 밝혀지는 극적 지점에서의 감정의 고조나 해결, 청춘 과부와 황도령의 생이별 등의 장면에서의 정서적 표현이 극과 음악에 균형 있게 반영됐다.

또한 소리적 구성력과 기교가 매우 높다. 음악적으로 전통에 현대적 느낌을 조화롭게 배치했다. 대금과 가야금, 북과 장고, 특수 타악과 신시사이저 등을 폭넓게 수용해 듣는 재미를 주었다. 서정적 분위기에서 극적 긴장감을 전환시키는 소리와 음악적 구성이 탁월하다.

공연화에 있어서는 덴동어미가 현대적으로 갖는 의미를 관객에게 설득시키는 것이 관건이라고 본다. 더불어 청춘 과부나 황도령 정도로 불리는 캐릭터들이 과거 시대상을 표상하는 고루함에서 나아가 현대적 인물로 연결 또는 치환될 수 있는 지점을 찾는 노력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전에 제작된 국립창극단의 작품이 대부분 비극 일색이었던 점을 감안했을 때, 이 작품이 장막 공연화 된다면 작품에서 어떠한 차별점을 둘지 분명히 계획할 필요가 있겠다. 예를 들어 창극 <트로이의 여인들>은 한과 비애의 정서를 가득 담아 창의 정수를 보여준 작품이기는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으로 점철된 작품의 관극을 마치고 나면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을 받아 다소 힘겨운 지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약과 발전의 디딤돌,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 포스터 © 국립창극단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라는 깃발을 든 국립창극단의 새로운 시도는 박수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창극이라는 한국 음악극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 있어 작창의 개념과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인재들이 유입되는 길을 트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 창작 뮤지컬 업계도 뮤지컬 극작과 작곡을 전공한 해외 유학파들이 유입되면서 뮤지컬 창작자 중심의 아카데미가 개설되고 체계화되었고 그로부터 배출된 후배나 제자들이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그러한 측면에서 한국 창작 창극도 이러한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등을 필두로, 극작가와 작창가를 매칭 해주고 일정 시간 교육을 거쳐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차츰 도약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국립창극단은 올해는 <국립창극단 작창가 프로젝트 시연회>를 시범 프로젝트로 운영하고, 모니터링과 보완을 거쳐 2023년부터 정규 사업으로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창극의 바탕이 되는 작창가를 발굴하는 노력은 늦은 감이 있지만, 백년지계를 내다보고 시작한 사업이니만큼 오랜 시간 공들여 웅장하고 아름다운 성으로 완성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작가의 이전글 영화 <토스카나> & 이탈리아 토스카나 끼안티 와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