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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May 17. 2024

소나무숲에 가득찬 어린이의 웃음소리

<서귀포기적의도서관>

- 건축가 정기용, 제주 서귀포, 2004년

2004년 서귀포 칠십리 건축상 우수상 수상작  


        

건축 다큐멘터리 영화 <말하는 건축가: 정기용>에서 건축가 후배는 말한다. "정기용 선생님의 건축은 사랑의 건축이에요. 아이들에게 뭔가 주고 싶은 게 굉장히 많은 거예요."

대체 건축가 정기용이 그토록 주고 싶은 건 뭐였을까. 궁금함에 ‘서귀포기적의도서관’으로 향한다. 이곳은 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이다. 그의 건축물 중에 왜 서귀포기적의도서관을 먼저 택했냐고 물으면 인간과 생명을 대하는 그의 마음이 여실하게 읽혀서다. 


마을에 아이들을 위한 도서관을 짓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고 건축가 정기용(1945~2011)은 여러 장의 스케치를 했다. 세계 여러 나라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 못지않게 멋진 공간을 만들어 주리라 상상하며. 어린이의 키에 맞게 책꽂이 높이를 낮추고, 놀이공간도 그렸다. 집중해서 그리다가 뭐 더 필요한 게 없을까 싶어 도서관이 지어질 부지를 보러 현장에 갔다. 아, 이걸 놓쳤구나. 허허벌판인 그곳에는 구불구불 자란 소나무 열댓 그루가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수십 장의 스케치를 구겨버렸다. 소나무 모둠을 어찌 할까 생각하며 스케치를 새로 했다. 소나무의 자리를 두고 가운데를 비우려니 둥그런 원형의 몸체가 그려졌다. 언덕배기에 위치할 도서관이 땅의 흐름을 타고 그대로 안착하도록 비스듬히 지붕을 올렸다. 몸체는 통창을 내어 도서관 어디든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게 했다. 그렇게 소나무 모둠을 한아름 품에 안듯 크게 둘러싼 원형의 도서관, 잔디인형의 머리마냥 소나무들이 삐죽빼죽 튀어나와 보이는 독특한 도서관이 그려졌다.


누군가는 그깢 소나무 베어버리면 깔끔할 걸 괜한 미련을 둔다 했을 것이다. 건축가 정기용에게는 자신이 야심차게 그려낸 설계 원안보다, 건축가로서의 자신을 빛내줄 으리으리한 도서관보다 우선인 건, 오랜 시간 거센 제주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내고 묵묵하게 버텨온 소나무들의 시간과 찬란한 생명력이었다. 그러한 선택 덕분에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도 중정에 소나무숲이 자리한 서귀포기적의도서관에서 뛰노는 어린이와 부모들의 웃음소리가 가득 찬다.          




주소 : 제주도 서귀포시 일주동로 8593

운영 시간 :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관/설, 추석, 1월1일, 12월 31일은 임시 휴관일

문의 : 064-732-3251

홈페이지 : http://lib.je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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