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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라희 May 17. 2024

낮추고 감춘 마음의 진심

<제주추사관>

- 건축가 승효상, 제주 서귀포시, 2010년

2010년 제주특별자치도 건축문화대상 대상 수상작   


  

제주 추사관은 추사 김정희의 그림 <세한도>의 형상을 닮았다. 삼각 지붕에 벽면에는 큰 원형 창이 뚫려 있고, 단층짜리 건축물로 별다른 장식도 없이 소박하다. 건축가 승효상의 작품이다. 잔뜩 기대하던 마을 주민들은 ‘감자 창고를 지어 놨다’며 실망감을 표현했다고. 건축가 승효상은 추사 김정희 선생은 높다란 건축물로 위압감을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몸을 낮추고 마을의 풍경 속에 스며들길 원했을 것이라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그제서야 수긍을 하며 추사관을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제주 추사관은 땅 아래로 몸체를 낮추고 감추었다. 돌담에서 보이는 높이와 달리, 내부에 들어서면 천고가 높다. 중정으로 햇볕이 쏟아진다. 벽면에 난 측창으로도 빛이 가득 비쳐든다. 이곳은 특히 입구 계단부가 인상적이다. 추사 김정희가 제주에 유배를 올 때 산 넘고 물 건너 갈 지(之) 자를 그리며 내려온 길을 건축적으로 표현했다고 한다.


<세한도>의 그림은 초현실적이다. 우선 집의 형태가 소실점이나 시점이 맞지 않다. 앞쪽으로 보면 2D인데, 가로로 길게 늘어선 몸통부는 3D 시점이다. 곁에선 두 종류의 나무도 마찬가지다.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같이 그려져 있는데 두 종류는 같은 환경에서 자랄 수 없는 나무라 한다. 절벽이나 암석을 비틀고 자라나오는 생명력을 가진 측백나무와 편평하고 볕이 잘 드는 토양에서 자라는 소나무가 한데 심어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한도는 추사 김정희의 심경을 담았다. 세도정치의 폐해로 집안이 몰락하고 저 먼 제주까지 귀양을 와서 바깥 출입조차 금해진 죄인 신세라니, 그러한 현실에서 탈출하고픈 마음과 더불어 자신의 기개를 잃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다. 게다가 이제는 보잘 것 없는 스승임에도 여전히 따르고 챙겨주는 제자가 있으니 고마움을 그림으로나마 표현했던 것이다.


추사관에는 주목해야 할 글씨가 두 편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无量壽閣(무량수각), 아미타불(무량수불)을 모시는 불전이라는 뜻으로, 유배를 가던 추사가 대흥사에 걸린 대웅보전의 현판을 두고 핀잔하며 스스로 글씨를 써주고 교체해 걸으라고 했던 일화가 얽혀 있다. 


나란히 걸린 두 글씨를 보면, 하나는 유배를 가는 길에 쓴 현판의 글씨이고, 또 다른 하나는 귀양에서 풀려나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쓴 글씨다. 유배 전의 글씨는 내노라하는 세력을 가진 집안의 김정희의 성정을 보여주듯, 장대하고 굵고 뚱뚱한 글씨다. 이른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윤택한 글씨다. 그러나 유배 후에 쓴 글씨는 전혀 다르다. 획이 가늘고 먹에 물이 거의 없이 메마르고 거친 글씨다. 서예가들은 이를 두고 인생이 담긴 글씨라 한다. 세상의 때가 빠지고 옹골찬 본질만 남은, 깨달음을 얻의 자의 글씨라 말한다. 추사 김정희는 인생을 통한 자신의 깨달음을 글씨로 남겼다. 


추사 김정희의 인생과 그에 담긴 마음을 읽은 건축가 승효상은 자신을 낮추고 감추는 마음으로 추사관을 지었다. 건축가로서 자신을 내세울만한 으리으리한 기념관을 지을 수도 있었지만 추사의 마음을 담지 못한다면 어찌 추사관이라 할 수 있으랴. 그것은 어쩌면 자신의 명성과 영광, 영달을 위해 도시의 맥락과 건축물의 설립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자신의 건축만이 독보적인 존재감을 띠는 건축을 하고자 애쓰는 다른 건축가들을 향한 묵직한 조언일 수 있다. 


제주 추사관은 건축적 메시지부터 전시작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이 있는 울림을 주고 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추사 김정희의 삶에 비추어 들어맞듯, 우리도 그토록 일희일비하며 삶을 소모할 필요가 없고 그저 자연의 이치에 맞게 살아가라는 조언을 전한다.    


    

  

제주추사관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추사로 44지도

운영 시간: 화~일 09:00~18:00,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 해설안내 : 10, 11, 13, 14, 15, 16시 정각

문의: 064-710-6865

홈페이지: https://www.jeju.go.kr/chusa/index.htm     




(사진 이미지는 아래 링크에 올려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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