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저)> 을 읽고
가끔 책을 읽으면서 내 성향(취향)내지 가치관을 아는 경우가 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김정선 저)> 책이 이런 경우다.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액자 소설]을 좋아한다는 걸, 그리고 나도 책에 메모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방법론을 다룬 실용서이다. 그런데 책 중간중간 작가 본인(김정선-교정자)와 교정했던 책의 저자(함인주-작가가 교정한 책의 저자)가 교류한 메일이 들어있다. 액자식 구성이다. 왜 그렇게 교정했는지 책의 원저자가 의문을 가지면서 시작된 메일을 읽으면 문장을 다듬는 방법보다 문장을 보는 관점의 차이를 알아가는 것이 더 흥미로왔다.
요즘 내 글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하고 있다. 계획서나 보고서외엔 남에게 내 글을 알린 적이 거의 없고, 대부분의 글쓰기 경험들은 일회성으로 그쳤기 때문에 피드백을 받을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그때그때 나쁘지 않다라는 평가로 만족했고, 내가 글을 잘 쓰는지 못쓰는지 내 글의 성격이 어떤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직장생활 연차가 오래되고 다양한 형태의 글을 쓸 기회가 생기면서 직장 동료들에게 내 글이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잘 읽히는데, 항상 사용하는 용어만 사용했는데 왜 내 글이 어렵다고 하지? 그래서 글쓰기 강좌도 수강해 보고, 글쓰기 책도 읽어보고, 다른 사람의 글도 참고하면서 조금씩 내 글이 왜 어려운지, 잘 읽히는 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가기 시작했다.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는 이런 고민을 하는 중에 만난 책이다.
리뷰 이벤트!! 우연찮게 무료 전자책을 배포한다는 글을 보게 되었다. 독서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책 한권 집필하는 것이 꿈일터, 앞서간 거인들의 노하우를 공짜로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책을 읽었다. 재밌네! 자~ 그럼 리뷰를 함 써볼까?? 이런~ 한 문장도 쓸 수가 없다.
내가 왜 책을 받았을까? 후회가 되었다. 리뷰를 쓰지 말까? 양심이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써달라고 할까? 아니지! 그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하지! 어떻게 꾸역꾸역 리뷰를 작성했다.
그렇게 완성된 글을 공개하기 전 조카에게 검열을 부탁했다. "총체적 난국이네"
이 때 알았다. "내 문장이 이상하구나!"
조카와 둘이 리뷰 수정했다. 이 과정에서 조금씩내 글의 정체성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고모는 다른 사람과 글쓰는 방식이 달라. 그냥 리뷰든 뭐든 원래 고모 방식으로 써"
그랬다. 리뷰는 작성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다는 생각-글의 줄거리도 들어가고, 작가 소개도 들어가고, 내 생각도 조금 넣고 등등-에 나 만의 글이 아닌 다른 사람의 글쓰는 방식을 따라한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에서 억지로 썼다고 느껴졌고 내 생각을 마음대로 연결할 수 없었다.
다시 작성!! "그래 이번엔 좀 낫네! 자~ 그럼 같이 함 볼까?"
교정후 공개한 글은 반응이 좋았다.(리뷰 이벤트니까 공개는 필수!)
그래! 이게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이구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이것은 내가 글을 쓰고 누군가 내 글을 봤을 때 내가 항상 하는 말이었다. 자신감이 없어서였겠지! 아니면 인정욕구 폭발했거나! 하지만 누구에게도 한번에 글 좋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 걸 보면 ‘내가 글을 쓰는 방식은 다른 사람과 조금 다르구나’라고 은연중에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장의 주인은 문장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문장 안에 깃들여 사는 주어와 술어다. - p52
영어 문장을 해석 할 때도 항상 주어와 동사를 먼저 찾아야 했다. 하나의 주어에, 하나의 동사! 이것은 국어나 영어나 같은 원칙인가보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얘기가 '문장의 주인은 주어와 서술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 책에서 습관적으로 쓰는 오류들을 지적하고 있다. 안써도 상관없는데 굳이 쓸 필요가 없다며. 그러면서 '좋은 문장은 주로 빼기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보고서에 문장 하나를 적어놓고 이것저것 설명을 붙이다 보면 보고서가 두장 세장 되는 경우가 있다. 한 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보통 주어와 조사를 먼저 삭제한다. 그리고 서술어를 명사형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다 보면 중의적 해석이 가능한 이상한 보고서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보고서를 왜 작성했는지 회의가 들 정도로 상사 앞에서 말로 설명해야 했다.
모든 문장은 다 이상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한 것처럼 말이죠. 제가 하는 일은 다만 그 이상한 문장들이 규칙적으로 일관되게 이상하도록 다듬는 것일 뿐, 그걸 정상으로 되돌리는 게 아닙니다. 만일 제가 이상한 문장을 정상으로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면, 저야말로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p102
그래! 모든 사람은 이상하다. 나만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 문단은 주변 사람들에게 4차원 또라이로 통하는 내가 별난 게 아니라고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모든 사람이 다 이상하므로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쓰지 말고 너가 하고 싶은 것, 너가 표현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용기를 주는 것 같았다. 일관되게 이상한 것? 그 또한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의 문장은 이상합니다. 그리고 그 이상함 속에서 문장의 결이랄까요, 무늬랄까요, 아무튼 선생님만의 개성을 엿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선생님이 갖고 있는 그 이상함이 선생님의 문장에도 고스란히 베어 있는 셈이죠 - p103
그래서였을까? 내가 쓴 보고서에 붉은 색 줄이 그이고, 내가 원하는 방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정 된 것을 보면 '이렇게 수정된 보고서는 내가 쓴 것일까? 아니면 수정한 상사가 쓴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남의 글에 내 이름만 적혀 있는 보고서를 내가 왜 결재를 맡고 있는지 허탈하기도 했다. 이럴 때마다 내가 기분이 상한건 내가 표현한 내 글이 부정당함으로써 내 자신이 부정당하는 느낌이 들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김훈의 주체는 주어와 달리 첩질을 하지 않는다. 서술어를 여럿 거느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주어 하나에 서술어 하나, 서술어가 둘 이상일 땐 주어를 반복해서 쓴다. - p193
20년 넘게 교정을 해서 그럴까, 작가가 본인의 원칙을 얘기할 땐땐 '따끔하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자기 분야에 대한 자신감과 자부심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내가 느꼈던 것들을 이 책을 읽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기억에 남는 문장도 다를 것이고, 줄긋고 메모를 한 문장도 다를 것이다. 하지만 책 한권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책 값 14,000원! 소위 말해 이 책은 내게 남는 장사였다. 이러니 어떻게 내가 책을 싫어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