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얼굴이 표정을 잃었다. 언제나 말보다 얼굴로 생각을 먼저 드러내던 그녀였다.
"선생님!"
전에 없이 그녀의 목소리가 비장했다. 그녀의 말 한마디가 그녀의 심리상태를 짐작하게 했다. 나는 그녀의 다음 말을 차분히 기다렸다. 한참 뜸을 들이던 그녀가 내게 물었다.
"늦둥이를 두셨다고 했지요?"
그녀의 말투, 표정으로 짐작건대 단순한 호기심으로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넘겨짚어보았다.
"혹시 둘째 가지셨어요?"
"....."
그녀의 표정이 돌아왔다. 미간에 잡힌 주름이 어떤 말보다도 확실하게 그녀의 마음을 알려주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네 살배기 아이의 엄마였다. 아이는 하나면 족하다며 육아에 진심을 다했다. 이제 그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둘째를 가졌다면 터울이 꽤 날 터였다. 그녀의 근심이 이해되고도 남음이 있었다. 하염없이 나를 바라보는 그녀에게 조언을 해줘야 할지 공감을 해줘야 할지 나는 잠시 망설였다.
"많이 두렵지요?" 그녀에게 물었다.
"선생님께만 말씀드리는 건데... 안 낳을 순 없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그녀는 거의 울 것 같았다.
십여 년 전 나도 그녀와 같았다. 생각지도 않은 선물이 내게로 왔는데 반갑기는커녕 당황스럽기만 했다. 반납할 수만 있다면 돌려보내고 싶었다. 내 인생에 자식은 하나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이제 와서 무슨... 신이 잘못 보낸 것이 분명하다고 현실을 부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몇 주를 보냈다.
"낳으실 거잖아요." 내가 말했다.
"잘못되면 어떡해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첫아이를 늦게 낳은 그녀는 이미 사십 대에 접어들었다. 요즘은 결혼을 늦게 하는 추세라서 첫 출산도 예전보다 늦은 나이에 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십 즈음에 아이를 갖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나도 노산이라 아이가 기형의 위험이 높다느니, 터울이 크면 초산이나 다름없이 힘들다느니 하는 말들을 임신 기간 내내 들었다. 가뜩이나 두려운 마음에 부정적인 말까지 들으니 마음 다스리기가 쉽지 않았다.
"늦둥이들이 똑똑하다네요. 엄마 아빠 우성인자만 다 갖고 태어난대요." 나는 과학적 근거는 없으나 심적 근거를 가지고 그녀에게 말했다.
"게다가 딸이라도 낳아보세요. 집안 분위기가 완전히 바뀐답니다." 물론 아들이라고 집안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못할까마는 나는 역시 근거 없는 주관적인 경험으로 아들 하나를 둔 그녀에게 말했다.
"만약 어린것 두고 제가 어떻게 되면...?"
"...."
그녀가 채 말을 잊지 못하고 묻는 말에 나는 잠깐 숙연해졌다.
나이 사십에 나를 얻으신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날 밤, 달 보면서 우셨다고 한다. "내가 저 아이를 책임지고 가야 할 텐데." 하셨다고... 늦은 나이에 둘째를 낳은 나도 딸아이를 보며 울었다. 아버지와 똑같은 마음으로 '책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녀도 자신의 늦둥이 아이를 책임지지 못할까 봐 염려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후 변하셨다고 한다. 뭐라도 좋은 것, 맛난 것이 생기면 서랍에 감추시곤 했단다. 그리고는 내게만 하나씩 꺼내 주셨단다. 아버지의 책임감이 더 큰 사랑이 되어 막내딸에게 쏟아졌음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바다. 아버지는 종종 어린 딸을 무등 태우고 방 안을 빙글빙글 도셨는데 그때마다 나는 천장에 손이 닿는 것이 좋아서 까르르 웃었다. 그런 나를 아버지는 덤으로 얻은 선물 같다고 하셨다. 기대하지도 않았던 덤이라 더 좋으시다고...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물을 받으신 거예요. 선물을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우울해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저 기쁘게 받으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그 말은 나 자신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아직도 가끔은 내가 너무 일찍 아이 곁을 떠나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부질없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기우라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녀와 대화를 나눈 지 한 해가 훌쩍 지났다. 그녀는 엄마 아빠의 좋은 점만 빼닮은 늦둥이 딸을 낳았다. 나뭇잎이 곱게 물든 어느 날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기 너머 그녀의 행복한 목소리가 전해졌다.
"선생님, 제 생애 최고의 선물을 받아서 너무 감사해요."
나도 내 생애 최고의 선물과 함께 오늘도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