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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정희 Nov 24. 2022

물과 화해하다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는 평온했다. 강한 햇살이 바다에 꽂히고 있었다. 바다는 햇빛에 몸을 맡긴 채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 바닷속으로 들어갈 참이었다. 스쿠버다이빙! 내게는 꿈만 같았던 일이었다. 물이 무릎까지만 차올라도 불안해지는 내가 물속으로 들어갈 생각을 한 것은 순전히 나이 탓이다.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무서운 것이 없어지는 탓이다. 그렇지 않고는 도저히 그날의 내 용기를 해석할 방법이 없다.


 장비를 차려입고 공기통을 등에 멨다. 납덩이를 매단 허리띠까지 착용하니 만만치 않은 무게에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몸의 중심을 잡느라 물에 대한 공포는 잠시 잊고 있었다. 허리 깊이의 물에 들어가서 호흡법을 연습할 때까지도 괜찮았다. 긴장은 했으나 함께 하는 일행이 있어서 의지가 되었다. 난생처음 해보는 경험인지라 살짝 기대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밧줄을 잡고 간다는 말에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바닷속에서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나는 마치 생명선이라도 되는  두 손으로 밧줄을 꼭 쥐었다.


 물속으로 한발 두발 들어갔다. 물이 목까지 차오르자 바닷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실감 났다. 온몸에 전율이 돌았다. 심호흡을 하고 조심스럽게 한 발을 더 앞으로 내디뎠다. 내 시야가 물에 갇혔다. 조금 전까지 밝았던 세상이 온통 흑암으로 변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랬다.  설레던 마음이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었다. 연습한 호흡법에 집중하려 했지만 일단 몰려온 공포심은 사정없이 나를 공황상태로 밀어 넣었다. 쥐고 있던 밧줄도 내 두려운 마음을 잠재우지 못했다.


 나는 물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뒤로 몇 걸음만 걸으면 나갈 수 있었지만 다급한 나는 그냥 물 위로 뛰어올랐다. 이미 내 키를 넘은 물 높이인 데다 납덩이까지 매단 내 무게를 부력이 받쳐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물 위로 올라갈 수 없다는 생각에 내 공포심은 극에 달했다. 겁에 질린 어린아이가 내 앞에서 울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예닐곱 살 즈음이었다. 어느 여름날, 아침부터 먹구름이 해를 가렸다. 잔뜩 찌푸리던 하늘이 급기야 굵은 빗방울로 땅을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후드득 쏟아지는 빗소리에 신이 났다. 마루에 앉아 빗소리에 장단을 맞추며 흥얼거렸다. 부엌에선 어머니가 김치전을 부치고 계셨다. 지글거리는 소리와 고소한 기름 냄새가 집안 가득 퍼졌다. 어린아이에게는 더없이 행복한 여름 오후였다.


 막 젓가락을 들려고 할 때 어머니가 접시를 내미셨다. 외가댁에 먼저 갖다 드리고 오라는 것이었다. 한마을에 가까이 살던 외가댁은 어린 걸음으로도 오 분 안에 갈 거리여서 내가 심심할 때마다 들르던 곳이었다. 세차게 내리던 비도 어느새 그쳐서 나는 잽싸게 다녀올 생각으로 대문을 나섰다. 외할머니는 들어와 놀다 가라고 하셨지만 나는 맛난 부침개를 식기 전에 먹고 싶어서 얼른 돌아서 나왔다.


 집 앞에 거의 다 와서 보니 이상하게도 갈 때는 없던 도랑이 흐르고 있었다. 집 근처에 미나리꽝이 있었는데 그새 물이 불어서 길까지 흘러넘쳤던 것이다. 그런 사정을 알 리 없었던 나는 그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에 애가 탔다. 모름지기 김치전은 호호 불면서 먹어야 제 맛인데….


 도랑을 건너보려고 발을 물속에 넣었다. 겨우 발목까지 물이 찼을 뿐인데도 물살이 세서 나는 휘청 넘어질 뻔했다. 발을 빼고 물러날까 잠시 고민했지만 고소한 부침개가 다 식어버릴 것 같아서 나는 한 발 더 앞으로 나갔다. 어느새 물은 내 정강이 언저리까지 차올랐다. 몇 걸음만 걸으면 될 거리인데도 이상하게도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물살은 더 거세졌다. 한 발이라도 떼면 넘어질 것 같았다.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엄마를 목청껏 불렀지만 바람소리에 내 목소리가 잠겼는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엉엉 울었다. 내 울음소리에 놀란 듯 빗방울도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몰려왔다.  


 스쿠버다이빙 교관이 내 몸을 떠받쳐 물 위에 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시야가 물 밖으로 나오니 그제야 이성을 찾을 수 있었다. 포기하겠냐고 교관이 물었다. 나는 그러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물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같이 간 일행과 눈이 마주쳤다. 그들의 눈은 내게 ‘포기하면 안 돼. 너 없이 우리끼리 들어갈 수는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심호흡을 몇 번 한 후에 나는 물속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야가 물속에 갇히자 다시 불안이 몰려왔다. 하지만 이번엔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호흡에 집중했다. 숨이 쉬어지자 마음이 진정되었다. 옆에서 교관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잘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다.


 얼마나 들어 것일까. 긴장이 조금씩 풀리면서 물속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눈앞에 형형색색의 물고기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교관이 물고기에게 주라며 물고기 먹이를 우리에게 나눠주었다. 그것을 건네받자마자 내 손 주위로 물고기들이 몰려들었다. 한입씩 베어 먹고 달아나는데 그 힘이 어찌나 세었는지 자꾸만 내 손이 흔들렸다.


 나는 제법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바닷속을 내려다보았다. 내 발 밑에 크고 작은 돌들이 빼곡했다. 바닷속 돌들과의 조우가 반가워서 나는 눈인사라도 나누고 싶었는데 돌들은 낯선 시선이 부끄러운지 물풀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시선을 위로 돌렸다. 저 위쪽에서 바닷물 표면을 뚫고 들어오는 햇빛이 보였다. 육지에서만 보던 햇빛이었다. 이상하게도 내 몸이 자유로워지는 것 같았다. 여전히 무거운 허리띠에 공기통을 메고 있었지만

한없이 내가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도랑에서 꼼짝 못 하고 서 있던 어린 소녀는 급히 뛰어나오신 아버지의 품에 안겨 도랑에서 나왔다. 다음 날 맑게 갠 하늘을 보면서도 도랑이 무서워서 대문을 나서지 못했다. 도랑 물이 줄어서 가는 물줄기만 남았다고 어머니가 알려주셨다. 그래도 아이는 그 후로도 며칠 동안 집 밖에 나가지 않았다.


 바닷속에서 햇빛을 보며 나는 그 어린 소녀를 소환했다. 아이에게 형형색색의 물고기들과 수줍게 얼굴을 가린 돌들, 그리고 바닷물을 뚫고 들어온 햇살을 보여주고 싶었다. 거센 물살에 놀라 물을 사납게만 알던 아이였다. 물속도 육지럼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아이가 알게 되길 바랐다. 그리하여 아이도 마침내 물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울고 있던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 겁먹은 아이의 흔들리던  눈동자가 점차 안정을 찾더니 어느새 아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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