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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의자 김소정 Sep 05. 2023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라헐 판 코에이/

동화책 읽기1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라헐 판 코에이/박종대역/사계절


바르톨로메가 책과 그림, 사랑하는 주변의 선량한 사람들을 지팡이 삼아 일어났다.

한 인간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여러개의 지팡이가 필요하다.

-별 넷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라헐 판 코에이/



이 책은 디에고 벨라스케스(1599-1660)의 <시녀들>이라는 그림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동화다. 스페인 펠리페 4세의 조정에서 궁중화가로 이름을 날린 화가였다. 특이한 것은 왕족의 인물화나 초상화뿐 아니라 백성들의 궁핍한 일상이나 궁정에서 생활하는 난쟁이, 어릿광대들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화가였다. 그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시녀들>에서도 시녀, 난쟁이, 개가 신분의 귀천과는 상관없이 똑같은 비중으로 그려져 있다. 마르가리타 공주와 난쟁이 둘, 그리고 개가 정면 중앙에 위치해 있다. 왕과 왕비의 모습은 뒷면에 걸린 거울에 비친다.  

이 동화는 그림에 개가 등장한 배경을 상상해서 그려내고 있다.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상상력이 만난 아주 행복한 예가 되는 책.





1. 문장이 좋다. 간결한 문체에 그림이 그려지듯 묘사력이 훌륭하다. 이야기는 묘사로 쌓아올린 서사다. 서사로 쌓을 수 있는 이야기는 없다.

회칠이 누렇게 변한 낮은 돌집들로 이루어진 마을이 멀리서 손짓하고 있었다. 마치 화가가 푸른 언덕 사이로 작고 하얀 얼룩을 그려 놓은 것 같았다.
바르톨로메 카라스코는 성당 정문 그늘의 무른 돌계단에 앉아 아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기러첨 맨발에 꾀죄죄한 옷을 걸친 아이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놀리 위해 마을 광장에 모여 있었다. 바르톨로메는 멍하니 손가락으로 모랫바닥에 그림을 그렸다.  


첫 문단을 읽어보자,

"아, 좋은 동화겠구나!"

라는 것을 직감했다. 주인공이 있는 장소, 성격, 배경, 분위기를 은은하게 품고 있다. 어느 문장하나 묘사되지 않은 것이 없고 이야기에 정확하게 기여하고 있다.



2. 쳅터마다 마지막 문단을 긴 여운이 남기도록 잘 썼다.

후안도 동냥하는 불구 아이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이제야 내가 왜 바르톨로메를 데려오지 않으려고 했는지 알겠지?"
후안은 이렇게 툭 내뱉고는 이사벨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바삐 걸음을 옮겼다. 나머지 식구들도 천천히 그 뒤를 쫓아갔다. 이사벨은 광장을 떠나면서 한번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대도시 마드리드에서 아들 바르톨로메와 똑같은 장애인들이 거지처럼 사는 것을 본 이사벨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먹먹해졌다.


3. 스릴과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했다.

바르톨로메는 사람들 눈에 띄어서는 안된다. 그것이 아버지 후안의 명령이기도 하고, 심한 장애를 가진 바로톨로메에게는 사회적 안전망이었다. 글을 배우게 하려는 형과 누나의 노력으로 빨래 바구니로 신부님께 이동하는 과정이 스릴 만점이었다. 이러다 들키는 어쩌지, 조마조마했다.


4. 바로톨로메 주변의 사람들이 선량하다. 등장인물이 무작정 선량한 것이 조금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순순히 받아들여진다.

이런 고상한 아버지는 바르톨로메가 네발로 기어 다녀도 때리지 않았다. 매를 드는 쪽은 항상 어머니였다. 바르톨로로메는 어머니에게 매를 맞을 때면 자신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깨닫곤 했다.
"넌 짐승이 아냐!"
어머니는 아들이 기어 다니는 것을 볼 때마다 붙잡아성 매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너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야! 알겠니?"

하루 종일 작은 방에 갇혀 있으면 얼마나 외로울까? 동생에게 글을 가르치려는 것이 바르톨로메가 잘되기를 바라서라기보다는 실은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호아킨은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
"바르톨로메, 글을 배울 수 있는 길이 분명 있을 거야. 형이 꼭 약속할게."

그러나 아무리 위로를 해주고 싶다해도,

당사자에게 상처가 될 때가 있다. 

안드레스가 바르톨로메의 슬픈 얼굴에 분장을 해주면서 위로조로 말했다.
"개란 충직과 용기의 상징이라는 것을 잊지 마."
바르톨로메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개가 아니었다. 개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스페인에서 가장 용감하고 충직한 개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자신은 그냥 바르톨로메이고 싶었다.


5. 책에 대한 동경을 잘 보여준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바르톨로메가 책에 빠지는 순간, 그리고 글을 쓰면서 내면이 치유되고 글자의 주술성까지 표현되는 걸 보면 가슴이 뛴다.


바르톨로메는 아무 생각 없이 종이를 집었다. 그러고는 펜에다 잉크를 묻혀 이렇게 썼다. '후안나 누나가 날 돕겠다고 약속했다.' 하얀 종이 위에 검은 글씨로 이렇게 쓰고 나자 정말 누나가 자신을 도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바르톨로메는 펜을 잉크에 묻혀 다시 한 문장 한 문장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음속에 숨어 있던 근심과 슬픔을 솔지갛게 적고, 호아킨에게 하지 못했던 말도 글로 표현해 보았다. 이렇게 모두 털어놓고 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호아킨에 대한 마음도 어느 정도 가시는 것 같았다.



6. 익살꾼과 어릿광대- 소설가는 어릿광대다. 글쓰기와 작가에 대한 작가의 관을 엿볼 수 있다.

"왕실에는 익살꾼과 어릿광대가 있다. 익살꾼은 터무니없는 농담으로 사람들을 웃길 뿐이지만, 광대의 농담에는 뼈가 있어. 청중들의 어리석음을 꼬집고 있는 게지. 청중들은 어릿광대의 농담을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깔깔거리지만, 똑똑한 청중이라면 광대가 표현하는 것이 결국 자신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게 돼. 그러니까 광대는 청중들에게 거울을 보여 주며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마음껏 비웃으라고 놀리는 거지."


7. 가장 좋았던 부분

"Autumn(가을)"
바르톨로메가 읽었다. 이 단어를 외우는 건 별로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철자가 몇 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A,U,T,U,M, 그다음이 이상했다.
"끝의 N은 소리가 나지 않는데 어째서 나오는 거예요?"
"보기 좋으라고 붙여놓은 거지. 그걸 운치라고 한단다. 말로 표현된 단어에는 소리밖에 엇지만, 글로 쓴 것에는 형태도 있어. 그래서 간혹 미적인 운치를 위해 귀로는 들을 수 없는 철자를 붙여 놓곤 하지."
크리스토발 수사가 설명했다.



8. 단점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고, 수사나 일부 지배계층만이 글을 알았던 시대에 영특한 바르톨로메가 글을 읽고 쓴다는 사실은 휘귀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으로 그림을 그렸을때, 위대하다고 한 부분에서 좀 실망을 했다. 글이라는 것을 앞에서 붕 띄워놓고는 그림으로 결론을 내버리다니, 부풀어오른 희망이 바람빠진 풍선처럼 시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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