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비틀비, 바틀비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안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
지금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지금은 좀더 합리적인 사람이 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우리는 어떤 길을 따라 살아간다. 어느 나이에는 그에 맞는 학교에 들어가고 또 취직 혹은 결혼을 한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어느정도 사회가 정해주는 시간이 있다. 요즘은 좀 달라졌다고 해도 가족이 또 사회가 주는 압박감이 있기 마련이다.
“대학교는 가야지.”
“이제 돈 벌고 해야지.”
사회는 시간을 넘어 질을 원한다. 어떤 대학 어떤 직업을 따진다. 거기에 우리의 선택이 있길 바라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우리를 둘러싼 무언가가 더 높은 곳을 쳐다보게 하고 그러지 않으면 잘못된 것 마냥 만들어버린다. 작 중 바틀비는 "안 하는 것"을 선택한다. 직장에서, 또 사회적으로 더 좋은 사람이 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19세기 뉴욕에서조차 그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만약 지금의 한국에 바틀비같은 인물이 있다면 당장 커뮤니티에 쓰여지고 인터넷뉴스에서 말이 나올 것이다. "시키는 일도 하지 않는 후임, 정상인가요?" 이런 이름 정도로.
자기개발. 우리들에게 꼬리표처럼 달리는 숙제, 아니 일같은 것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더 잘되기 위해 항상 노력해야만 한다. 사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한국에서는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을 넘어 삶에 녹아들어 있다. 취미도 전문적이어야 하고 편하게 하면 안되는 듯 인식이 있다. 간혹 재미로 그림그려요하면 어디서 배우셨어요?가 자연스레 따라오는 질문이다. 그림은 그냥 펜으로 쓱쓱 그어도 그림이다. 꼭 누군가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고 '취미'의 영역이라면 그냥 하면 된다. 내가 배우길 생각했다면 시작을 못했을 것이다.
가물치(https://www.instagram.com/kamulch/)라는 펜드로잉을 전문으로하는 작가님이 있다. 내가 펜으로 그림을 그리는 동기가 된 분이다. 인스타그램에서 몇 번 보다보니 나도 그려볼까란 생각이 들었다. 2월, 서울 떠나기 전 일정이 맞아 개인전을 찾아갈 수 있었다. 가서 무슨 만년필을 쓰는지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지 궁금한 것들을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팬심에 그림을 보여주며 덕분에 취미를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배우지 않아서 꾸준히 하기 쉬워요. 재밌게 꾸준히만 하면 됩니다."였다.
우리는 늘 생각한다. 책 좀... 운동 좀... 영어 좀... 배워볼까? 배운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일이다. 우리가 전문가가 아니고 삶의 질을 높이는 목적이라면 배움보다는 행동이 맞다고 본다. 오히려 전문적인 정보를 받아들이다보면 '와 이걸 다 알아야 이걸 할 수 있다고?'라는 저 멀리의 벽을 미리 보고 오게 된다. 괜히 내가 하려는 것들이 하찮고 보잘 것 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면 다시 원점. 뭘 배워볼까?
나는 그것에 맞지 않는 사람이다. 그래서 "안하는 것"을 택했다. 택하고 싶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할 수 있는 한 내가 하고 싶은 것들, 좋아하는 것들로 내 인생을 채워 왔다. 책과 사람들로 내 주변을 채우며 힘듦을 이겨내 왔다. 적어도 그로 인해 나는 행복에 가깝게 지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