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 것인가
소설을 왜 읽을까. 좋아하는 장르를 문학이라하면서도 그 쓸모에 대해서 늘 고민한다. 깨달음, 지식을 얻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책이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알려준다. 그럼 소설이 다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이야기이고 수용방식의 다양성에 있다.
고래는 어떤 작품인가. 근현대 시대의 가난하고 불행한 여주인공 금복과 춘희 그들을 둘러싼 이야기들이다. 항구의 고래와 다방의 코끼리, 돈벼락과 그로인해 일어나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줄지어 나온다. 마치 누가 옆에서 꿈 혹은 경험담을 말해주는 듯 결말을 예고하기도 하고 갑자기 과거로, 아니면 시점을 다른 인물로 바꿔가기도 한다. 판타지 소설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 때면, 근현대의 한국을 묘사하며 정신을 이리저리 뒤흔든다. 책을 펴는 시점부터 덮을 때까지 드는 '꿈'이었다. 누군가가 꾼 장대한 꿈을 이리저리 살을 붙여 듣는 느낌이었다.
먼저 돋보이는 것은 전개방식이다. 소설의 깔끔한 기승전결은 기대하지마시라. 물론 금복과 춘희의 인생사, 그리고 그들을 거쳐간 쌍둥이자매와 걱정, 생선장수 등의 남자들, 그들에게는 시작과 끝이 당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상식적이지는 않다. 갑자기 작가가 등장하여 인물에 대해 요약해서 말하고, 지나온 시간을 한 면으로 설명한다. 마술적 사실주의를 표방하는 듯 비과학적인 이야기들로 순식간에 상황이 달라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말그대로 갑작스런 '돈벼락'이라던가, 코끼리와 상상의 대화를 나누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등의 표현들이다. 이런 여러 요소들이 책을 쉽게 내려놓지 못하게 한다. '이게 말이 돼?'싶다가도 그런 매력에 빠져 책을 덮지 못했다.
결국 책을 덮고 머릿속을 떠다니는 것은 각 인물들이다. 근현대 시대물에 나올 법한 전형적인 인물부터 정말 입체적인, 쉽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인물들도 등장한다. 생존과 돈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치는 금복, 잔인하고 냉혹할 것같은 칼잡이, 완벽한 벽돌이라는 본인만의 목적으로 살아가는 文, 그리고 벙어리로 태어나 코끼리 점보와 교감하는 춘희 등. 인물들은 모두 각자의 과거를 가지고 있고, 그에 따른 기이한 행동들을 한다. 막연하게 왜 저렇게 행동하지같은 생각은 페이지를 넘기면서 이야기로든 작가의 말로든 설명이 되었다. 독자에 따라 누구에게 더 마음이 가고 곱씹게 되는지는 다를 것이다. 시작과 끝은 책임지는 춘희, 중간 부분의 평대부터 벽돌공장이야기까지의 금복, 아니면 그 중간의 누군가를 떠올릴 것이다.
또 재밌는 부분은 글맛이다. 번역이 아닌 한국문학의 특성일지도 모르겠다만, 상황을 묘사함에 있어 와...하는 것들이 참 많았다. 특히 각 인물들의 마지막, 죽음을 묘사하는 장면들은 매번 페이지를 멈추게 했다. 마치 의도적으로 일반적인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 것도 요소 중에 하나였다.
"어떻게 살 것인가"
책이 던지는 화두는 이 것이다. 금복처럼, 아니면 춘희처럼,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의 방식대로. 맨 처음의 소설을 읽는 이유에 대한 나의 답변과도 같다. 소설은 나를 어딘가로 이끌어준다. 희미한 화살표 하나를 보여주며 나의 방향과 힘을 곱씹어보게 한다. 어떤 책들은 한 주인공을 중심으로 보여준다고 하면, 이 책이 다른 점은 수많은 길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돈, 가족, 행복, 목표, 무엇이 중한지 그 삶은 어떻고 그 끝은 어떤지, 그 시대에서 지금의 시대로 끌어와 생각해본다.
그 것은 소설의 법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