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딸 둘을 낳고 싶었다.
아들 셋에 딸 하나를 낳을 줄 몰랐다.
명절 때 큰집에 가면 삼촌네 아기들이 그렇게 이뻤다. 갓 태어난 사촌동생들이 꼬물거릴 때만.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고 뛰어다니기 시작하면서 어찌나 쫓아다니기 힘들던지, 아기는 더 이상 이쁘지 않았다.
숙모들이 고스톱 치겠다고 나에게 사촌동생들을 맡기면, 성가시기만 했다.
남동생 챙기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는데, 명절엔 더 많은 동생들을 이끌고 골목대장 노릇까지 해야 하다니. 어린 나이에 이미 육아 프롤로그를 읽어버린 기분이랄까.
"결혼하면 애는 딱 하나만 낳던가, 안 낳을 거야." 속으로 결심할 정도였으니.
남동생이 고등학생 졸업과 동시에 취업을 했고 타 지역으로 나가 살면서 나는 외동딸이 되고 말았다. 귀찮게 하는 남동생 하나 없을 뿐인데 일상이 평온했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혼자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어쩐지 허전했다.
동생이 철없이 굴긴 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조용히 들어주는 아이여서 부재가 점점 크게 느껴졌다. 드디어 평화를 얻었다고 즐거워했는데, 얼마 못 가 투닥거리던 시간이 그리워졌다.
"혼자는 외롭겠다. 둘은 낳아야지."
누구더러 철없다 말할 처지가 못 되는 철없는 이십 대였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연애나 하고 그런 말을 하면 들어주지. 쓸데없는 소리"라며 일축했고, 아빠는 허허 웃기만 하셨다.
쳇.
'언니랑 여동생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는데, 난 꼭 딸 둘을 낳을 거야.'
라며 굳은 결심 혹은 각오랄까, 성인이 된 후부터 쭉 가져온 목표였다.
어디 인생이 내 뜻대로 흘러가던가.
아들을 낳았다. 남편이 장손이라 큰 숙제를 끝낸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젠 내 계획대로 삼신할머니와 뜻을 맞춰보고 싶었으나, 또 아들을 낳았다. 호빵을 위아래로 눌러놓은 것 같은 얼굴이라 얼마나 놀랐던지.
셋째가 생긴 줄 몰랐을 때, 금빛이 도는 아주 어여쁜 강아지 태몽을 꿨다. 예쁜 꿈을 꿨으니 딸일 거라 생각했다. 딸 같이 애교 많은 아들을 낳았다.
딸 둘을 낳고 싶었던 나는 아들만 셋을 낳은 사람이 되었고, 딸을 욕심내다가 또 아들을 낳을 것 같아 공장 가동을 멈췄다.
이제 우리 형편 상 더 이상의 출산은 없다고 생각했을 때, 술이 원수다.
공장이 가동됐고, 나는 내일모레 마흔을 앞두고 넷째를 만났다. 귀한 딸이 찾아왔다.
삼신할머니의 심보는 참 얄궂다. 이렇게 딸을 만나게 하실 거면 좀 더 힘이 남아있을 때 보내주시지, 밤수유 하느라 깰 때면 곡소리가 났다.
"아이고야~~~"
2박 3일 꿈같은 병원 생활을 끝으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진정한 헬육아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새벽 수유하느라 잠을 깨도 참 좋았다. 내리사랑이란 말은 그냥 나오는 말이 아닌가 보다.
"네가 커서 결혼하고 아기를 낳으면 더 이쁘겠지?"
아주 잠깐, 행복한 상상을 했다가,
"아니다. 넌. 너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아. 결혼? 안 해도 돼. 외로워서 할 거면 그냥 혼자 편하게 살아. 연애나 실컷 하면서."
배꼽도 안 떨어진 신생아 기저귀 갈면서 이런 말을 할 줄이야.
크는 게 아까워서 천천히 크라고 그렇게 말렸건만, 벌써 9살이라니.
남자들이 군대 이야기, 축구 이야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로 삼일 밤낮을 떠들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옆에서 웃어주는 것도 더 이상 못할 짓이라며 손사래 치는 여자친구들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임신한 이야기, 출산한 이야기, 아들 키우는 이야기, 딸 키우는 이야기, 연년생 키우는 이야기, 쌍둥이 키우는 이야기로 천일야화가 가능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까?
"세상에, 나 택시 안에서 둘째 낳을 뻔했던 얘기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