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미겔 데 세르반테스
2023.09.01-2023.09.12
일단 책의 분량이 너무 방대하고, 줄거리와 화법이 고전적이어서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1605년에 쓴 책을 40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줄거리 자체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고, 나와 시대도 문화도 가치관도 전혀 다름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는 거다. 어릴 때 아주 얇은 청소년용 돈키호테를 읽었을 때는, 미친놈이 풍차한테 덤비는 스토리가 왜 유명한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지금은 풍차한테 덤비는 미친놈의 개똥철학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쩌면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 희극인지 비극인지 모르겠고, 소설책인지 철학 책인지 애매하지만 돈키호테의 정신이 돌아와 죽음을 앞둔 장면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제 정신일 때, 그는 미친놈인 채로 제정신의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자로서 좀 더 광인으로 남아줬으면 하는 여운이 남는다.
이 책에서 산초 판사의 입을 통해, 돈키호테의 입을 통해, 또 다른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 계속 반복되는 문장 중 하나는 “사람은 모두 자기 행위의 자식이다”라는 말이다. 이 말에서부터 시작해 보고 싶다. 이 한 문장이 돈키호테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느꼈다. 편력 기사의 이야기가 판타지 소설책처럼 통속소설로서 유행하고 실제 편력 기사가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스스로의 선택으로 기사가 된 한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이 소설의 주제인 것 같다. 돈키호테가 계속해서 강조하는 자유의지, 인간의 선택과 의지로 행위를 만들어 가는 것, 결국 인간은 자기 행위의 자식인 것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내린 나의 결론이다.
그를 광인으로, 그러나 명석한 두뇌와 깊은 사색과 이성을 갖춘 훌륭한 인간상을 겸비한 긴가민가한 애매한 광인으로 설정한 것이 또 다른 포인트다. 광인만이 이룰 수 있는 실존이라고 해야 하나. 소설이 이렇게 철학적일 수 있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관념을 늘어놓는 철학이 아니라, 수많은 생생한 스토리들과 결합되어 인생을 설명하고 그들의 인생에서, 생존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론적 고민이 산초 판사의 해학과 돈키호테의 궤변으로 빛을 내는 놀라운 글이었다. 다 읽고 나서 뒤에 작가 연대를 보다가 알게 된 충격적인 사실은 세르반테스가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고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천재는 진정 하늘이 내리는 건가 보다. 그렇다면 교육이란 무엇인가. 앰병 불공평한 세상아..
2주 내내 돈키호테를 읽었다. 성경보다 두꺼운 책이었고, 성경처럼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책이었다. 첫 장을 읽었을 땐, 성경 읽었을 때처럼 머리에다 베고 처자겠군 싶었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워서 읽으면서 한 번도 졸리지 않았다. 화장실에 가서도 잠을 자기 전에도, 돈키호테와 산초 판사의 말투가 생각났다. 광인들에게 약간 홀려있었던 것 같다. 두번은 못읽겠네..
[세월과 함께 잊히지 않는 기억은 없고, 죽음과 함께 끝나지 않는 고통은 없다는 걸세 224p]
[진실로 말하건데 , 가난한 자는 마음속에 최고의 관대함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어느 누구에게도 그 미덕을 보여줄 수가 없소. 또한 마음에만 있는 감사란, 행동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듯 죽은 것이지. 751p]
[당신은 그런 것 없이 어머니 배 속에서 나왔고 지금까지 살아왔으며 하느님이 부르시면 영지 없이 무덤으로 갈 거에요. 세상에는 영지를 모르고 사는 사람이 많아요. 그렇다고 그 사람들이 살기를 그만두는 것도 아니고 사람수에 계산되지 않는 것도 아니잖아요. 세상에서 가장 좋은 반찬은 배고픔이에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배고픔이 있기 때문엠 그들은 언제나 맛있게 먹는거죠. 그래도 여보, 만일 혹시라도 어떤 영지를 갖게 되면 나와 당신 자식들을 잊지 말아요. 107p]
[나리 슬픔은 짐승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겁니다요. 하지만 사람이 너무 슬퍼하면 짐승이 되지요 164p]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하고자 하는 것은 가장 훌륭한 목적이긴 하지만 유념해야 할 일이 있으니, 배고픔과 끝날 줄 모르는 궁핍함이야말로 사랑의 최대의 적이라는 사실이라고 했다.285p]
[ 모든 것이 혼란스러울 때는 대놓고 죄를 저지르는 사람보다 착한 척하는 위선자가 그래도 덜 나쁜 법이니 말이야 315p]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늘 같은 상태로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 인간의 목숨만이 세월보다 더 가볍게 그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 인간의 목숨을 제한할 한계가 없는 다른 생애에서가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볼 희망도 없이 말이다.655p]
[상대를 아프게 하는 농담은 농담이 아니며, 제 삼자에게 피해를 주는 취미는 취미로서 존재할 가치가 없으니 말이다. 767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