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나 박물관에 가서 작품을 보면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느낄 때가 있다. 몇백 년 전 사람이든, 다른 나라 사람이든 생각과 행동이 나와 내 주변 사람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을 때 드는 묘한 안정감. 그걸 느끼는 순간이 재밌다.
얼마 전 국립중앙박물관에 다녀왔다. 그동안 여러 번 봤던 도자기 전시 공간이었는데, 이번에 도자기 사이에 있는 짧은 시가 처음으로 눈에 들어왔다.
이하곤이라는 조선시대 문인이 경기도 광주의 그릇을 만드는 분원에 20여 일 머물면서, 무료한 중에 두보의 시를 본뜨고 우리말을 섞어 장난삼아 지은 시였다.
도공의 그릇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된지 그대로 전해지고, 하루 종일 열심히 그릇을 만들어도 퇴짜 맞는 그릇을 보며 한숨부터 나오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릇이 얼마나 정밀하고 색과 모양이 잘 나왔는지 검토할 필요 없이 도공으로서 정체성은 다 무너지고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란 생각과 함께 영혼 없이 수많은 뇌물용 그릇을 만드는 도공의 모습이 그려졌다.
시 몇 줄 읽고 장면이 뚜렷하게 그려지는 건 그만큼 시를 잘 지어서 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비슷한 경험을 보고, 듣고, 직접 해봤기 때문일 것이다.
디자이너로 일할 때 뇌물을 위한 작업은 아니었지만, 컨펌을 위해 기본적으로 여러 개의 시안을 작업해 여러 번 수정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수정 작업하면서 판매율을 높이는데 적합한 시안을 위한 수정이 아니라, 최종 컨펌자의 개인적인 취향과 기분을 맞추기 위한 작업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이렇게 시를 통해 자연스럽게 나의 경험을 떠올렸다.
공감의 힘이란 참 대단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에 공감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스마트폰 잠금을 풀고 사진을 찍어 글까지 쓰게 만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