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이건 콤플렉스다. 그것도 과학도로서 가장 치명적인 콤플렉스. 논문을 읽다 보면, 논문에서 제시하는 가장 핵심 주제를 잘 파악 못할 때가 더러 있다. 논문의 곁다리에 너무 관심이 많아서 그 잔상들이 머리에 가득 찬 나머지, 논문을 읽고 나면 남들과 딴생각을 갖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다. 물론 곁다리로 빠진 덕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 낼 때가 있지만, 그럴 때면 내가 공부를 못하니까 저렇구나 자책 많이 한다. 노력을 꽤 해봤는데 잘 안 되는 걸 보니 뇌를 바꾸지 않는 이상 절대 안 될 것 같다.
어제는 한국에 있는 지인과, 박준 시인의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 질문은 ‘사람 이름 짓다가 행복해서, 며칠은 행복했다는 의미가 나 혹은 이름을 짓는데 며칠이 걸렸다. 인 것 같은데 제가 제목을 제대로 잘 이해 못 한 것 같아요’였다. 그러니까 또 저자가 제시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 같은 불안감이 떠올라서 물어본 게다. 그러자 대뜸, “그래?, 난 저 여자 누구야?라는 생각을 했어.”라고 했다. 그러니까 얼마나 사랑하기에 저 사랑하는 자의 이름을 짓는데 시간이 걸렸는지 질투가 났다 했다. 그러더니, “그래서 시가 좋지 않아? 내 맘대로 해석해도 되거든.” 이런다. 나는 근데 그게 너무 힘들어서 시가 너무 싫다고 했다. 오독하는 게 싫다고 했다. 그에 덧붙여 내가 홍상수 영화 같은 걸 보면, 참 재미있어하면서도 혼자 숨이 넘어간다고도 했다. 영화만 보고 나면 홍상수 영화 관련된 기사란 기사는 다 찾아본다. (www.cine21.com/news/view/?mag_id=86829) 내가 생각한 게 맞는지 혹여 내가 너의 의도에 맞지 않게 잘못 이해한 건 아닌가 싶어서. 그랬더니 상대방이 깔깔 넘어간다. 오독을 즐기고 맘대로 즐기란다. 그냥 난 뼛속까지 과학도로 살겠다고 했다.
언제 기회가 되걸랑 박준 시인에게 대체 저 제목을 지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어떤 의도였는지 시원하게 알려주셨으면 한다. 오독을 즐기지 못하는 과학도에게 시원한 해답을 주셨으면. 안 그럼 궁금해서 수명도 같이 짧아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