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부턴 길 아니까 네비 꺼야겠다.”
목적지까지 약 12km를 남기고 익숙한 풍경이 보이자 나는 휴대폰 네비게이션을 껐다. ’나 멋있지? 멋지다고 해!’라는 마음으로 옆 조수석에 앉은 직장 후배에게 눈길을 주었다. 눈치 빠른 후배는 곧바로 내 운전 실력과 길머리까지 칭찬해 주었다. 그 칭찬이 기분 좋았지만, 동시에 조금 무안했다. 왜냐하면 익숙한 길조차도 매번6.2인치짜리 네모난 화면에 전적으로 의지하고 있다는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네비게이션이 보편화되기 전, 차 안에는 거의 모든 집이 전국지도책을 두고 다녔을 것이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지도는 항상 조수석 등받이에 꽂혀 있었다. 초행길에 오를 때는 지도를 펼쳐 길을 찾거나, 근처 행인이나 옆 차선의 운전자에게 물어물어 가는 일이흔했다.
“쭉 직진하다가 흰색 큰 건물이 보이면 우회전하시고, 사거리가 나오면 좌회전하세요. 그리고…”
막힘없이 길을 설명해 주던 친절한 옆차선의 운전자. 어린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던 그 ‘암호’ 같은 길안내를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아버지. 그 두 어른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그렇게 몇 번의 물음과 도움 끝에 도착한 목적지는 이제 아버지가 아는 길이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 아버지에게 길을 물어오면, 그는 예전의그 옆차선 운전자가 되어 친절하게 길을 설명해주곤 했다.
나도 어른이 되면 그럴 줄 알았다. 길을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척척 설명하고, 마치 지도를 머릿속에 그린 듯 자신 있게 안내해 줄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스마트폰 네비게이션이 내 삶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그 작은 화면에 모든 길을 맡기게 되었다. 한두 번 가봤던 길도, 심지어 익숙한 동네조차도 네비 없이는 불안했다. 네비가 “500m 앞에서 우회전입니다”라고 말해줘야만 비로소 안심이 됐다. 왠지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벗어날 방법도 알지 못했다.
길을 잃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곳에 도착했을 때, 그것이 목적지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이리저리 헤매며 간신히 찾아낸 그 순간,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길을 잃은 것은 단순히 목적지를 잃은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방향 감각과 감각적인 경험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하고.
오늘날 사람들은 머릿속에 있던 지도를 손바닥 위 작은기계에 맡긴 채 살아간다. 나는 그 옛날 아버지의 모습이 그리워졌다. 지도를 펼치고 길을 묻고, 다시 답을 건네던 그 과정 자체가 너무나 자연스럽고 멋있었다.
지금은 그 과정이 사라지고, 손끝 하나로 길을 찾는 시대가 되었지만, 나는 결심했다. 네비게이션을 끄고, 내 두 눈과 기억에 의지해 길을 찾아보자고. 길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 과정 속에서 어쩌면 잃어버렸던 나 자신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어가는 길, 그건 단순히 나이가 든다는 뜻이 아니었다. 스스로의 길을 찾는다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