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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인공 Feb 26. 2024

남녀평등이 가능한 거야?

50:50이 당연한 외국인들의 사고방식


프랑스에서는 남녀가 데이트를 할 때 계산대 앞에서 50:50을 한다. 35유로가 나오면 17.5유로씩 정확히 계산대 앞에서 분할결제를 한다.

외국에서는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난 뒤 계산하는 시점이 오면 너도 돈을 벌고 나도 돈을 버는데 내가 더 내는 건 너의 능력을 무시하는 일이야.

이거는 남녀가 동일하게 교육을 받고 월급을 버는 데 남자라는 이유 만으로 사줘야 한다면, 여성의 가치는 뭘로 결정되는 거야?

남자가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내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고방식 자체가 남녀불평등을 초래하는 데 동일하게 하지 않으면서 평등을 외치는 거는 이상한 거 아니야?

신기한 건 이렇게 발언을 한 외국인 친구들 중에서 여자도 있다는 것.


사실 한국에서 몇백 원까지 정확히 남녀가 데이트 비용을 5:5로 하는 사람들은 데이트통장을 만들어서 같이 돈을 모으는 사람 말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심지어 소개팅으로 처음 만난 경우에 정말 상대방이 마음에 들지 않고서는 보통 1차는 남자가 2차는 여자가 사는 경우가 많다.

이런 어쩌면 남성주의가 팽배한 나라에서 그 사고방식을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사는 나로서는 외국의 완벽한 5:5 문화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결혼을 준비하는 외국인 커플 친구도 deposit부터 월세든 대출금이든 장 보는 거든 모든 것을 n분의 1일 한다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속으로 많이 놀란 나는 이 이야기를 L한테 전달하면서 말했다.

어쩔 수 없이 몸의 신체구조 상 여자는 아기를 임신하면 몇 개월동안 힘들고 낳는 것도 힘들고 아기가 먼저 하는 말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가 아니냐고.

둘 다 맞벌이임에도 불구하고 집안일을 무를 반으로 쪼개듯 2 분할해서 나눌 수는 없지 않냐고.

버는 돈이 다르면 그에 맞는 퍼센티지로 집세 등을 내는 게 맞지 않겠냐고. 무조건 반은 조금 그렇지 않냐고.


그렇더니 L은 그게 왜 이상한지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당연히 아기가 우유를 먹기 위해 젖이 필요하니까 여자의 시간 할애가 절대적으로 더 많을 수 있지만

그 뒤로 아기가 엄마를 부르면 아빠를 부르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고 둘 다 맞벌이니까 내니를 고용하거나 남자가 그 뒤로는 쭉 육아휴직을 내면 되는 거 아니냐고.


아 여기는 프랑스였지,

남자들도 육아휴직이 자유로운 나라였지.


나는 늘 아기를 낳으면 여자의 희생이 무조건적으로 따른다고 생각했었다.

한국의 출산율이 낮아지는 이유 중 하나도 임신을 하면 유리장벽이 아직 존재하기 때문에 더 높은 곳으로 승진하기가 어렵고 결국 아이에 대한 책임감은 남자보다 여자에 있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렇기에 이에 대한 보상심리로 그래도 돈이라도 잘 버는, 월급이라도 높은 혹은 능력이라도 좋은 남자와 교제를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들 풋풋할 때의 연애에서는 돈 이런 거 재고 따지지 않고 연애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쉽지 않고 사회생활이라는 것 자체에 고단함을 느끼면서 점점 남자를 고를 때 직업, 능력을 기준으로 삼게 되었을 것이다. 살아가는 건 사랑이 아니라 현실이니까.

어릴 때는 무조건 외모가 남자를 고르는 기준이 되었다면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하면서 가슴이 설레는 사랑의 일시적인 감정에 속기보다는 머리가 하는 사랑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돈이 행복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돈이 없으면 불행한 거는 자명한 사실이다. 울더라도 벤츠에서 우는 게 낫지 않은가”

유독 과시하는 showing off의 문화가 심한 우리나라는 능력이 되지 않으면서 차는 외제차를 사고 오마카세를 먹고 다니면서 SNS에 자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외됨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반열에 올라 뒤처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두 얼굴의 사람들.

본질이 뭔지 모르고 허황된 것들을 쫓는 공허한 사람들.


외국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믿는 자본주의, 돈의 가치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깨달았다.

남녀평등을 외치는 페미니즘을 믿으면서도 직접 돈을 내야 되는 시점에서는 계산대 앞에서는 작아지는 모순적인 페미니즘을 외치는 사람들도.

돈은 수단일 뿐 절대 목적이 될 수 없어.


단순히 예시로 든 계산대 앞에서 50대 50으로 완벽한 원 단위까지 센트 단위까지 분할결제를 하는 것을 통해 보이는 외국인들의 사상 속에서는

얻어먹기를 바라는 사고방식 자체가 평등하지 않다는 전제를 반영하는 것 아니냐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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