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시민이 되어간다는 것
낮에는 13도까지 올라가는 요즘의 리옹
봄이 다가오면서 봄 날씨로 변하는 중이고 자주 흐리던 날씨가 화창해지고 있다.
그 때문일까
벤치는 앉아서 수다 떠는 사람들, 책을 읽는 사람들, 샌드위치를 먹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고
어쩐지 더 북적거리는 느낌이 많이 든다.
나 조차도 예쁜 하늘의 색깔을 담기 위해 카메라를 켜는 일이 많아지고 있고
가끔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를 만끽하기 위해 일부러 가던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발걸음도 괜스레 느려지곤 한다.
해가 길어지고 덕분에 해가 지는 풍경을 멍하니 바라보는 일들이 늘어났고
가만히 멍 때리며 손강을 따라 걷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프랑스에서 어학공부를 하고 프리랜서 일을 하면서
어쩌면 단조롭게 출퇴근을 했던 한국의 일상보다 복잡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마음 한편은 훨씬 더 여유로워졌다.
도시가 이 나라가 여기 문화가 주는 선물일까
아니면 여기서 만나는 모든 이방인, 외국인 친구들의 가치관이 나에게 전염되어 가고 있는 중인 걸까
자연이 주는 평화로움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지면서
욕심껏 앞을 보고 살아가던 나는, 작은 소시민이 되어가고 있다.
늘 친구들이 나에게 하는 말,
아직 프랑스에 온 지 3-4개월 차 밖에 안 됐는데 정말 빨리 느는 중이라서 가끔은 신기할 정도야
그러니까 너무 조급해하지 마,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지금이 아니면 언어를 제대로 배울 시간도 기회도 오지 않을 수 있으니까 조금 더 즐겨봐 -
최근에 친해진 남아공에서 테라피스트를 하다 온 친구는 나에게
불안함을 느껴서 빨리 안정감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몸의 본능이야
당연히 한국에서 하루에 할 수 있던 것들이 10가지였다면 여기서는 3-4가지만 해도 벅찬 게 당연한 거고 몸한테 더 적응할 시간을 줘야 해.
언어의 장벽이 있는 여기에서 하루하루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스스로가 인정해 주면서 다독여줄 필요가 있을 거 같아.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당장 없다고 해도 누구나 다 열정을 한 그릇에 담지는 않아.
가끔은 하고 싶은 일이 없는 사람도 있고 그렇게 여러 그릇에 열정을 담는 것도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어.
.
여기서 사귀는 외국인 친구들은 나에게 하나같이 말한다.
한국인 아닌 거 같다고,
왜?
한국인들은 한국인들끼리 몰려다니거나 말을 잘 안 하거나 영어 하는 거를 수줍어하는데
너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고 틀려도 질문하는 거를 두려워하지 않고
서양인의 spontaneous를 가지고 있다고.
한마디로 나대는 성향의 나는 외국이 더 잘 맞나 보다.
“더 많이 나대야지”
.
지금 당장 따듯하게 잘 곳이 있고 맛있는 거를 먹을 수 있고 주말마다 약속으로 가득 차 있는
호화스러운 타지생활을 하고 있는 나.
불어 공부하다가 모르겠으면 물어볼 프랑스어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수두룩한 나의 환경을 보며
조금 더 양보하고 눈앞의 이익을 좇지 않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