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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론

by 낭만찬 Mar 26. 2025

 직장 생활 각각 3, 4년 차에 접어든 나와 그녀.

우리는 겉으로 봐서는 제법 직장인스러운 모습이 되고 있었다. 특히 나의 경우 야근이 매우 잦아서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밤 10시는 넘기는 게 부지기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칠 수 없는 건 그녀를 잠깐이라도 보는 것!


 하루 종일 쌓여있는 업무와 시름하고 그로 인해 발생되는 스트레스와 여러 갈등 상황 속에서도 퇴근하고 그녀를 한 번 보면 충전이 되는 게 신기했다. 잠이 쏟아지고 피곤이 몰려와도 그녀를 보는 게 좋았다.


 어느 평일 밤. 그녀의 집 앞 카페는 조금 늦게까지 운영을 하는 곳이라 자주 가곤 했다. 


“정인아 나 오늘 일 진짜 많았어”

“아이고 수고했어, 나는 오늘 나름 여유 있었는데 이를 어쩌나?”

“뭐야~ 일도 여유 있고, 옷도 노란색 검은색 체크 패턴 블라우스에 무슨 꿀벌이야?”

“괜찮지 않아? 오늘 패션은 내 인생 모토 ‘꿀벌처럼 살자’와 맞닿아 있구먼”


 그날따라 유난히 꿀벌 같았던 그녀가 공교롭게도 꿀벌에 대해 남다른 철학과 소신을 가진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이는 지금까지도 그녀의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이른바 ‘꿀벌론’이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대략적으로 이렇다. 

우선, 꿀벌들은 자기 자신들이 좋아하는 꿀을 먹는 일을 하는데 그 행동 자체가 꽃들의 수분이 이뤄지는데 유익한 도움도 된다는 것이다. 즉, 그녀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왕이면 그 일과 행동이 자연이나 주변에 유익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듣고 보니 그녀는 직장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자동이체로 유니세프에 매달 일정 금액을 후원하는 걸 적금이나 그 어떤 재테크보다 먼저 했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대단한 봉사활동이나 자선활동을 하진 않아도 그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롭게 하고자 소소하게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 생각났다. 


 두 번째로, 꿀벌은 꽃밭에서 일하는 순둥이라고 했다. 꿀벌은 벌침을 가지고 있지만 누군가 공격하기 전까지 공격성을 드러내는 법이 없다. 심지어 일터가 꽃밭이 아닌가? 그녀도 공격성을 드러낼 일 없이 직장에서 꿀 빨고 싶다고 해맑게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집단생활을 하는 대표적인 곤충이기도 하지만 비행할 땐 마치 정지된 것처럼 혼자서 유유히 하늘을 나는 꿀벌이 자유로워 보여서 좋다고 했다. 인간도 사회적 동물인지라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다. 그럼에도 때때로 혼자 자유로이 비행하는 꿀벌처럼 독립된 개체로 살고 싶다는 그녀의 소망이 담겨 있었다.


 전혀 과학적이거나 전문적이지 않은 단지 그녀의 눈을 통해서 본 꿀벌의 모습이지만 일 리가 있었다. 꿀벌 룩을 입고 꿀벌처럼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녀의 얘기를 들으며 어쩌면 꿀벌의 삶이 인간의 삶보다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벌침이 있지만 화난다고 함부로 쏘지 않는 통제력, 함께 사는 방법을 알고 공동체를 위하는 마음, 다른 생명을 위해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는 여유까지 생각보다 배울 점이 많았다. 


 별생각 없이 사는 것 같지만 누구든 함부로 대하지 않고 생색내지 않고 조용히 후원금을 내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하고 여유롭게 퇴근하는 그녀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다.


 다시 나에겐 바쁘고 피곤한 일상이 펼쳐졌다. 그날도 그랬다. 아니, 유독 더 힘들고 피곤했다. 수없이 걸려오는 전화에 귀에 피가 날 것 같았고, 올려야 하는 기안서와 발표해야 하는 기획들에 숨통이 막혔다. 여지없이 야근을 하고 늦은 시각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녀와 통화를 하며 충전을 하고 있었다. 몇 개의 역이 지났을까 정차한 역에서 보이는 한 광고판. 드넓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가 보였다. 문득, 저 바다를 날아다니는 꿀벌이 되고 싶었다. 그러고는 대뜸 그녀에게 제안했다.




정인아우리 꿀 빨러 갈래?”

?”

우리 다 때려치우고 세계여행 가자!”

     

3초 후 그녀의 대답

그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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