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김수근이 보낸 카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불광동 성당을 제일 먼저 보고 싶었지만, 주인공은 나중에 멋있게 등장하는 법이죠. 직접 보고, 느끼고, 생각하기 위한 <나 홀로 건축여행>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고, 아르코 예술극장 → 경동교회 → 공간사옥 → 불광동 성당의 여정으로 하루를 꽉 채워보기로 했습니다. 오로지 '건축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건축여행이기에 건축물에 대한 설명은 생략하고자 합니다. 있는 그대로 느껴보시고, 세 건축물의 공통점 또한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세 건축물의 공통점을 찾으셨나요? 바로 '벽돌'이라는 재료의 사용인데요, 그의 건축물은 벽돌의 향연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다채로운 표정으로 입혀졌습니다. 불규칙적으로 쌓는가 하면 인위적으로 벽돌을 깨뜨려 깨진 면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무수히 다른 인상을 가진 울퉁불퉁한 벽면을 만들어내기도 했죠.
"암만 급해도 벽돌은 한꺼번에 쌓지 못하기 때문에 한 장 한 장 단정히 쌓지 않으면 무너지거나 제대로 힘을 받지 못한다. 한 장 한 장 손으로 쌓아야 하는 벽돌에서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는 그의 철학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이제 여정의 마지막 주인공, 드로잉 속 불광동 성당을 찾아가기로 했습니다. 1986년 작고하시기 전 마지막으로 지은 그의 종교 건축물이자, 한국의 10대 건축물 중 하나이자,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이기도 합니다.
서울시 미래유산이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미래세대에게 전달할만한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말한다.
주룩주룩 비 내리는 날, 아직까지도 너무나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날의 기억은 이렇습니다. 건축물 밖으로 크게 돌아야만 예배 공간에 다다를 수 있었어요. 조심스럽게 예배 공간에 한걸음 내딛자마자 그대로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거친 빛이 예배당을 비춰주는데 너무 황홀했기 때문이죠.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빛과 분위기를 가진 공간을 마주할 수 있어서 벅차올랐어요. 그때 느낀 '공간의 힘'은 아직까지 너무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어떠한 건축적 지식 없이 있는 그대로의 공간과 그 공간이 모여 이루어진 건축물을 마주했을 때, 상상 이상의 벅찬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공간 속에서 다짐했어요. '건축가로서의 길을 걸어보자!'라고.
'그림 한 장'으로 시작된 건축 여행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열정 가득했던 과거의 제 자신, 공간이 주는 거대한 감동, 거장의 업적에 대한 겨 경이로움까지. 그렇게 맺어진 건축가 김수근과의 인연으로 저는 건축학도의 길을 걸었고, 여전히 그의 건축물을 가슴에 담고 있습니다.
내일이면 늦다. 건축가는 내일을 위해 사는 사람이므로, 오늘이 중요하다.
- 건축가 김수근
건축가로서의 30년. 수많은 건축 작품이 말해주는 치열한 고민의 흔적. 길지 않았던 그의 건축 인생이 그려낸 큰 그림 속 다수의 건축물이 사후에도 많은 저작을 통해 다시 논의되고, 많은 건축학도들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건축사무소 '공간'의 정신적 멘토이자 스승님으로 불리고 있다고 합니다. 입사할 때부터 '나는 디자이너다'라는 책임감을 심어주셨고, 실제로 사원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결과물로 만드는 일도 많았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일했던 선배들을 늘 부러워했다는 서상하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도 그런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불어 건축 불모지이자 문화 불모지이기도 했던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발전을 위해 튼튼한 반석을 쌓아주었고, 지름으로부터 50~60년 전에 설계된 건축물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쭉 사랑받으며 기억될 그의 건축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