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무엇이든 말해연 Apr 16. 2023

하지 않는 쪽보다는 하는 쪽으로 생각하는 사람

동거인 탐구생활 1

나는 남자친구와 동거를 한다. 사귄지는 2년 2개월정도 됐고, 함께 산지는 1년 5개월차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헤어질지, 헤어지지 않을지, 헤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하는 지점에 와 있다.


문제는 하나지만 그 하나의 문제가 우리 사이에 골을 조금씩 만들고 있었고, 마침내 그 골이 확연히 드러나 보일 만큼 깊어졌다. 문제는 남자친구가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 발생했다. 특히 밤에 술 약속에 갈 때. 우리는 귀가 시간을 조율하는 문제로 매번 다퉜다. 그래서 합의를 본 시간은 새벽 1시였다. 합의를 보고 남자친구가 약속이 생겨 나갔는데 새벽 1시가 지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났다. 새벽 2시가 되기 전 남자친구가 들어왔다. 나는 냉랭했다. 말을 하면 싸울 것 같아서 애써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 날 대화를 나누는데 남자친구는 새벽 1시라는 통금이 새벽 1시 대, 그러니까 새벽 1시 - 1시 59분이라는 범위로 생각했고, 나는 딱 새벽 1시까지는 집에 들어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나는 약속이라고 생각한 것을, 남자친구는 규칙같이 느낀다는 것도 알게 됐다. 딱 새벽 1시까지 들어와야 한다는 것은 규칙과 같이 느껴진다고 했다. 새벽 1시 전후로 유도리 있게 들어오는 것이 약속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래도 새벽 2시로 통금 시간을 늘리면 집에서 자고 있던 내가 자다가 깨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기도 하고, 너무 늦은 시간까지 술을 먹고 밖을 돌아다니는 것이 걱정돼서, 다시 새벽 1시’까지‘로 통금 시간을 정했다.


그런데 그 후 어느 주말 나는 고향집에 내려갔고, 남자친구는 그 주말에 술 약속이 있었는데, 남자친구는 그날 새벽 4-5시쯤 집에 들어갔다. 나는 다시 화가 나서 다퉜는데, 내가 집에 없을 때에도 통금을 지켜야 하는 것이었냐고 남자친구가 반문했다. 내가 자는 데에 방해가 되니까 통금 시간을 정했다고 생각해서 내가 집에 없으니 통금 시간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야기했다. 새벽까지 술을 먹고 밖을 돌아다니는 것도 불안하고 걱정된다고. 그랬더니 그것이 믿음의 문제로 변화했다. 자신을 믿지 못하냐고. 그렇지 않았으나 그렇기도 했다. 나는 남자친구를 믿는다. 약속에 나가면 늘 연락을 꼬박꼬박 잘 하고, 허튼 짓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나는 술 먹은 사람을 믿지 않는다. 술은 사람을 통제불능으로 만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술을 마시지 않을 땐 아예 입도 안 대고, 마실 때는 얼마나 마시는지도 모르고 마신다는 것도 안다. 그래서 술 약속에 나간 그를 믿어주기 어려웠다. 하지만 내 남자친구는 자신에게 무언가를 하지말라고 하면 자신이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지 말라’는 말을 굉장히 싫어한다. 존중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남자친구의 말이 마음 아팠다. 그래서 내가 참아보자는 마음으로 내가 집에 없으면 원하는 대로 하라고 했다.


그리고 저번주 주말에 일이 발생했다. 나는 주말에 고향에 내려갔고, 남자친구는 친구들과 술 약속에 갔다. 신경쓰고 싶지 않아서 남자친구에게 연락하지 말고 놀으라고 했으나 나는 그날 밤 고향집에서 잠을 잘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다음 날 아침 집에 잘 들어갔냐고 남자친구에게 연락했는데, 술 먹다가 잠이 들어서 친구들과 해장하고 이제 집에 들어간다는 답장이 왔다. 너무나 화가 났다. 아주 끝장을 보는구나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 감정을 누르려고 애썼고, 서울에 돌아와서도 남자친구에게 짜증내거나 화 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침마다 108배를 하며 남자친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노력 했다. 이 감정은 지나갈 것이라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고 되뇌였지만 순간 순간 감정이 욱하고 올라왔다.


그리고 어제 아침 욱하는 마음을 지나보내지 못하고 순간 말로 내뱉었고, 우리 둘 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게 됐다. 우리는 점심 식사를 하고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나는 아침에 내 감정을 표출했던 일에 대해 사과했고, 남자친구는 우리가 더 이상 함께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했다. 나도 같은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감정을 참으니 내 자신이 시한폭탄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절을 하며 기도문을 외우며 노력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아직 잘 되지 않았고, 과정 중에 있었다. 남자친구는 한계점에 도달한 듯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놓기에는 아직 서로를 많이 사랑했다. 이것만 아니면 함께 있으면 즐거웠고, 서로가 서로를 더 넓고 큰 사람으로 만들어줬고, 서로를 의지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이야기를 주고 받던 중에 남자친구가 한 말을 통해 남자친구가 어떤 사람인지 알면서도 몰라줬구나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쪽으로 생각하지 말고, 무엇인가를 하는 쪽으로 생각하자’고. 즉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누군가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는 것으로 해결하기보다 무엇인가를 해서 해결하자고. 남자친구는 삶을 주도적으로 살고, 굉장히 자유로운 사람이며, 늘 노력하고 무엇인가를 해내면서 살아온 사람이다. 분명 연애를 처음 할 때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기도 했다. 진흙 속에서 피어난 순수하고 맑은 연꽃 같은 사람이라서 사랑할 수 밖에 없었다. 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마음과 생각을 점점 잊어버렸다.


그리고 남자친구가 이런 말도 했는데, 자꾸 약속에 나가면 우리 사이에 불화가 생기니까 이번에 나갈 때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렇게 놀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새벽 2-3시쯤 피곤해서 집에 가고 싶었는데도 꾸역꾸역 놀았다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을 그렇게 만든 것에 대해 너무 속상했고, 머릿 속에 법륜 스님의 말씀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중년의 여성분이 남편이 자신이 살도 찌고 예전만큼 예쁘지 않아서 여자로 봐주지 않고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고, 그래서 자꾸 남편이 어디 갔다가 들어오면 싸우게 되는 것이 고민이라는 사연을 들었다. 그때 법륜 스님이 얘기를 들어보니 남편이 바람을 피고 있을 것 같진 않은데, 계속 그렇게 남편한테 바람피우냐고 추궁하다보면 정말로 바람을 피우게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면서 본인을 위해서도 그저 믿어주는 수밖에 없고, 믿어주면 관계가 나아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가 내 상황에 대입되면서 상대가 술 먹고 이러면 어떡할까 저러면 어떡할까 걱정하고 자꾸 그런 것에 대해 미리 걱정하면 정말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말로 들렸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면, 믿어주면 그 믿음에 보답할 거고, 믿어주지 않으면 나에게 나쁜 사람 거른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헤어지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테이블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울고, 또 이야기를 나누고, 울기를 반복하다 지쳤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누워서 생각도 하고, 멍도 때리고, 휴대폰도 봤다. 그러다가 내가 아르바이트에 갈 시간이 되어 도시락을 싸는데 남자친구가 아까 침대에 누워있을 때 어떤 검사를 해봤는데 나도 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해서 해봤다. 나에 대한 여러가지 추측들에 ‘기브앤테이크’가 하트 모양 속에 쓰여 있었다. 맞다. 요즘 유튜브로 말씀을 듣는 법륜 스님의 말씀 대로 나는 사랑으로 장사를 했다. 준만큼 받으려고 했다. 준 것과 똑같은 것을 받기를 바라지 않았지만, 내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고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이 주기를 바랐다. 우리가 부딪혔던 문제에 있어서도 나는 너가 원하는 자유를 줬는데 무언가 받지 못했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도시락을 싸면서 그것을 고민했다.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받고 싶었던 걸까. 그리고 딱 떠올랐다.


나는 내가 남자친구에게 최우선이라는 마음을 늘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내 남자친구는 없는 말을 못하는 사람이고, 선의의 거짓말도 썩 내켜하지 않는 사람인데, 나는 말이라도 늘 예쁘게 노력하는 사람이고 그런 말을 나도 듣고 싶어한다. 나는 남자친구가 약속에 나갈 때 집에 혼자 남겨질 내 마음이 괜찮겠는지 물어봐주길 바랐고, 나는 어쨌든 남자친구의 자유 자체를 막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약속에 못 가게 하지 않을 거니까 말이라도 ‘너가 원한다면 가지 않을 수 있어.’라고 말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참 창피하고 성숙하지 못한 마음이다. 안다. 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이었고,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지금도 나는 그런 사람이다. 이 이야기를 했더니 남자친구가 조금은 밝아졌다. 그러면 자기가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노력해보겠다고. 참 감사했다. 나도 불안이 올라와도 붙잡지 않고 놓아주고, 외로움이 와도 흘려보낼 수 있도록 꾸준히 마음을 수련하겠다고 이야기했다. 이렇게 한 고비 넘겼다. 다음에 남자친구가 약속에 갈 때 과연 우리는 잘 넘어갈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도록 매일매일 마음 수련을 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No more give and tak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