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후에도 꽃씨교실은 진행 중이다
젊은 날엔 일 년 사이에 한 어린이의 내면에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믿었다. 정말 한 때는 그런 믿음이 이루어진 거 같기도 했다. 기적처럼 말문이 트인 어린이도 있었고 책을 싫어하던 어린이가 어느 날 기쁨 어린 목소리로 선생님, 저 첨으로 책 한 권 다 읽었어요, 를 외치기도 했다.
교사로서 어린이와 부모 모두에게 신뢰받는다는 자부심에 젖어있기도 했다. 정말 물을 주면 싹이 자랐고 가르치는 대로 결실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모든 게 불리하게 변하고 있었다. 어느덧 능력 있는 교사라는, 나에 대한 믿음이 깨지고 있었다. 그간 일 년 안에 이루었던 성취를 이어가는 일이 과욕이란 사실도 깨달았다.
물론 부단한 연구와 연수로 학급 경영 능력은 발전했다. 이전보다 더 많은 교수기법, 놀이 기법, 도서 목록, 상담 기술 또한 장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젊음이라는 프리미엄은 사라졌고 어린이들은 멋지고 젊은 옆반 선생님에 대한 관심이 더 컸다.
90년대부터였다. 부모의 양육 방식이 달라지면서 친구 같은 부모기 되는 게 대세가 되어가고 있었다. 교사 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어린이들의 요구를 많이 수용하고 때로 선생님 의자나 컴퓨터를 허용하는 것, 어린이와 농담 나누는 것을 즐기는 일이 좋은 교사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었다.
학기 초 설문지에는 선생님, 우리 아이 사람 만들어 주세요, 대신에 우리 아이는 선생님이 친절하면 더 잘해요, 같은 은근한 압박성 답글이 등장했다.
어린이 역시 달라진 학생, 교사의 권력관계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3월 한 달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눈치 보며 차분했던 어린이의 긴장도는 턱없이 낮아졌다. 어느덧 일주일, 사흘에서 하루도 가지 않고 어린이들은 떠들었다. 새 학기 첫날부터 위세를 드러내기도 했다.
교사의 에너지는 좋은 수업을 하는데 쓰는 시간보다 갈등을 조정하고 싸움을 말리며 학부모와 상담하는데 더 들어갔다. 애써도 애써도 미꾸라지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어린이들이 늘었다. 부모의 자유로운 양육 방식과 과도한 갈등 개입, 게임, 스마트폰에 의해 집중력과 인내심을 잃은 어린이들 중에는 수업에 5분도 집중을 못하는 어린이도 있었다. 친구의 한 마디도 견디지 못하고 급발진하며 싸우는 어린이도 있었다.
어떻게 가르칠지 수위 조절이 필요했다. 강력한 처방으로 당장의 효과를 보는 일은 점점 어려웠다. 강력한 훈육 자체가 가능하지 않았다. 인내심이 필요했다. 일 년이 아닌 먼 훗날까지를 생각했다. 어느 순간 담임 선생님의 가르침이 울림이 되거나 깨달음으로 소환되기를 소망하며 학급운영 목표를 장기화했다.
이렇게 마음먹고 나니 시야가 조금 넓어지고 초조해서 어린이를 다그치는 일이 줄었다.
그 어린이를 만난 건 퇴임하던 해였다. 퇴임하는 해, 마지막 해이니까 동화 같은 학급 운영을 하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바라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학급 구성원은 괜찮았다.
크게 반항하거나 주먹질로 학폭신고를 주고받는 어린이가 없었다. 이것만으로 충분한 듯 보였다. 그래도 허방은 있었다.
잘 어울리는 남자어린이 둘이 일탈을 시작했다. 두 어린이는 고학년이 갖추어야 할 학습 습관이나 배경지식이 부족했다. 사정이 이러니 자꾸 밖으로 돌았다.
두 아이는 수업에 집중하는 시간이 부족했다. 5분에서 10분을 견디지 못했다. 둘은 과제에 집중하지 못하고 서로 눈을 마주치려고 애쓰거나 휘휘 고개를 돌리며 장난거리를 찾는데 몰두했다.
아침에는 교문까지 제시간에 들어온다. 하지만 글쓰기나 책을 읽는 아침활동이 한참 지나도록 둘은 교실 밖을 배회했다.
쉬는 시간에도 수시로 사라졌다. 이유 없이 저학년 동으로 가서 기웃거리거나 빈 교실에 들어가 놀다 수업에 늦곤 했다.
수업시간에도 자리 이탈이 잦았다. 날마다 배가 아파서 보건실에 가야 했고 영어나 과학 전담시간에는 교과서를 안 가져왔다며 교실로 내려와서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교과서를 찾다가 수업이 끝나는 일도 있었다.
수없이 붙잡고 이야기하며 애써 보았다. 약속도 끝없이 했다. 그래도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 이전 학년 담임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이전 담임은 A 어린이 부모님이 주관을 가지고 자녀를 자유롭게 양육했다고 전했다. 말하자면 학원이나 학습지 같은, 자녀가 스트레스받을만한 방과 후 학습을 하지 않았고 집에서도 부모님 지도하에 학습지 같은 걸 하지도 않은 거 같다고 했다.
학습이나 독서습관을 거의 들이지 않은 걸로 보였다. 이런 여정은 단지 습관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까지 갖게 하며 여러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
A의 학업 수행 능력은 많이 떨어졌다. 이전 담임은 부모님께 알렸지만 유년기에는 학습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부모님 의견 때문에 보충수업 같은 다른 시도를 해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누적된 문제는 학습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었다. 학습능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학습 흥미도 떨어지고 집중력, 자존감도 떨어지기 마련이었다. A는 학습에 대한 역량뿐 아니라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도 또래보다 부족한 편이었다. 무슨 일이든지 자신의 욕구대로 하려 했고 어려운 과제는 수행하려 들지 않았다.
이미 문제가 드러난 상황이었지만 중학년 때 까지도 부모님은 자녀교육을 위한 괘도수정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문제를 안고 A는 고학년이 되었다.
어느 정도 A의 상황을 파악한 뒤 어머니와 상담을 했다. 어머니하고 대화는 잘 이루어졌다. 우선 어머니께 5학년이 되어서 A가 보이고 있는 상황을 차분하게 말씀드렸다. 그리고 지금 학습 습관이라든가 생활 태도를 교정하지 않으면 이후 학년에 가서는 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어머니도 이미 문제를 알고 있었다. 아이는 더 이상 부모 말을 듣지 않고 있었다. 귀가 시간을 수시로 어겼고 친구들이랑 노는 데에만 몰두하면서 주말까지 밖으로 돌아다닌다고 했다. 자연 부모와 A 사이에는 갈등이 반복되었고 A는 계속 야단을 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 부모님이 저를 칭찬해 주면 좋겠어요. 한 번도 좋은 얼굴을 안 해요.
A가 상담할 때 내게 한 말이다. A는 A대로 힘들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습관이 전혀 들지 않은 상태로 고학년이 되었고 갑자기 학원이나 학습지를 하려고 하다 보니 힘들어서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부모와 계속 부딪혔다.
A는 노래나 춤을 좋아했고 뭔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는 텐션이 급격하게 올라가면서 그 일을 즐겼다. 하지만 조금이라고 하기 싫고 어려운 과제 앞에 서면 순식간에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하려는 엄두를 내지 않았다.
- 이거 저 못하는데요
A는 새로운 과제를 해보기도 전에 전의를 상실했다. 겨우 시작은 하지만 곧 지쳐서 끝을 내지 못했다. 5학년이 되어서 교육과정도 어려워진 데다 새로운 계획과 과제를 요구하는 담임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어린이가 쓴 글을 보았다 두문장이나 여러 글에서 그 아이가 또래보다 더 판타지속에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프로필에는 잘 생긴 배우의 사진을 올렸고 상태메시지도 '나는 잘생긴 000이다' 같은 식의 표현을 썼다.
두 어린이의 어머니와는 꾸준한 상담을 했다. 그중 A어린이는 부모님의 호응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지도를 해나갔다. 방과후에 남겨 그림책도 읽고 상담놀이도 했다. 수학문제는 아주 조금씩 풀었다. 수업시간에는 보조교사에게 일대일 지도를 받게도 했다.
A어머니는 뒤늦은 깨달음 속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 장수풍뎅이에 관심 없던 A가 조금씩 흥미를 보이자 여름방학 때 학급 장수풍뎅이 사육상자를 받아가서 A와 여름 내내 관찰하며 즐거운 추억을 쌓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A는 지그재그식으로 발전과 정체를 거듭하며 학년을 마무리했다. 새 학기에 비하면 공책정리나 토의 등 학습태도가 정말 발전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쉬웠다. 일 년 더 가르친다면 더 달라질 거라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퇴임 후 몇 달이 지났다. 친구와 어울려 A는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러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문자를 보내왔다.
<A가 보낸 문자>
선생님 저 A에요. 이제 곧 있으면 중학생이네요. 참 세월이 빨리 가는 거 같아요. 5학년 때가 그리워요. 그래서 지금도 배움 공책 잘 정리하고 집에서도 사슴벌레 키우고 있어요.
선생님이 그리워요. 그래서 가끔 00랑도 선생님 얘기할 때 있고요, 선생님이 일 년만 더 저의 선생님 이 되셨더라면 졸업할 때 볼 수 있었는데요,
선생님 제가 졸업하기 전에 친구들이랑 같이 선생님 만나러 갈게요. 지금 공부도 더 늘고 복도에서 뛰는 일도 하나도 없고 00이랑도 안 친해서 일도 안 커져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몇 번이고 A가 보낸 문자를 읽는다. 나를 잊지 않은 제자의 진정한 마음과 변화, 그 애씀에 뭉클하다. 나는 때때로 그 아이를 떠올린다. 멋진 청년을 그리며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