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는 카톡 1에서 시작하여,
현대인은 크.게. (전체를 양분화하려는 의도가 아님을 빌드업 해본다) 두 부류가 있다. 용건이 있든, 시시콜콜한 단발적 대화든 웬만하면 채팅을 마무리 짓고 하루를 끝내야 하는 부류와. 스팸메일 쌓여있듯 며칠, 길게는 몇 달, 그 이상 쌓아둬도 문제가 되지 않는 부류. 여기에 대해 구구절절 글을 쓰고 있는 것부터가 나는 전자에 속한다. 물론 매일의 일상 대화를 나누는 단톡방도 있고, 영양가 없더라도 하루를 버티기 위해 오후 두세시쯤 가장 활발하다 말아버리는 사적인 대화방도 있지만, 그럼에도 빨간 알림 말풍선을 모두 없애야 속이 시원한 성격. 할 말이 없으면 대화를 끝내든, 자연스럽게 읽고 끝을 내든. 내가 그걸 확인했다는 사실은 상대에게 인지시키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냥. 답답했다. 뭘 물어보려고 용건이 있어 대화방에 들어갔는데 반년 전쯤 내가 보냈던 연락에도 아직 숫자 1이 남아있는 게. 그닥 중요한 대화는 아니었다. 그럼, 그냥… 끝냈으면 되는 게 아닐까? 확인하지 않았음을 알리는 숫자 역시 하나의 메시지로 다가오는데, 설마 그 의미를 나에게 전하는 건가? 메신저가 일상의 당연한 소통 창구로 자리 잡은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용건이 있어 연락을 하려다가, 괜한 불편함과 민망함에 대화창을 닫아버리고 싶던 기억이 듬성듬성 꽤 있다.
24시간 365일 메신저를 붙들고 있자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난 누구보다 이 시대의 소통 방식을 불편해하고 아날로그적 소통을 선호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래서일까. 더욱 부지런히 (몰아서라도)확인하고, 정리하고, 깔끔해진 상태로 자리에 눕는 게 습관화된 게. 나의 확인 여부가 누군가에겐 기다림이자 초조함이자 부담으로 느껴지진 않을까 하는 과한 걱정이 들 때도 있고, 그렇다고 억지 안부를 물어가며 지속해 나가기엔 상호 간 머릿속만 복잡해질 터이니. 단발적이든 지속되든 멈추어 정리하고 넘어가는 게 편한 사람.
이렇다 보니. 시간이 갈수록 전화를 선호하게 됐다. 전화보단 만남을 선호하고. 이 시대의 역설과도 같다. 보이지 않는 선으로 촘촘히 엮여 소통할 수 있는 시대라는 건, 어찌 보면 가장 멀리 있는 존재라는 걸 망각할 수 있는 상태. 나는 감각에 참 민감하다. 대화하며 주고받은 단어와 문장을 섬세하게 기억하지만, 사실 눈빛과 표정 제스처에서 그 사람의 생각과 분위기를 더 많이 읽었던 것 같다. ‘요즘 세상’에서 상대의 기분과 이 분위기를 추측할 수 있는 건 텍스트의 말투, 한두 개 붙는 이모티콘의 여부 정도이지 않나. 그마저도 기기의 폰트가 상대와 다르다면 전달하려는 의도는 정반대가 될 수 있는 현실. 차가운 표정에 긴장했다가 풀어지는 눈웃음과 목소리에 긴장이 자주 녹곤 했던 마지막 경험은 언제인가요.
사진은 쓰면서 계속 생각났던 영화 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