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땐 누구나 최악이 된다> 를 보고.
추억으로만 남는 것이 두렵다고, 목소리로만 남는 것이 두렵다고, 상상 속에서 자주 대화를 하곤 한다는 그들의 대화. 형체가 없지만 아주 오래 나를 매료시키는 것이 있지. 때론 기억 때론 상상. 그럼에도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 그리고 온몸을 휘감는 분위기와 내 기분을 표현할 필요 없이, 표현해야 할 필요성 없이 그대로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여유. 어제는 이랬다 오늘은 저랬다. 접점이 없으면 그뿐이지 그런척 작위적인 공감에 오히려 힘이 빠져버리는, 차라리 정반대의 가치관일지라도 뚜렷한 대화를 꿈꾸는 헛헛한 표정과 찬공기에 퍼지는 담배연기, 해가지는 노을에 눈물 흘리며 상대에게 미안한 외로움을 느끼는 그녀의 표정에, 이기적이면 이기적인대로 마음껏 감정에 충실하길 온마음 다해 응원했다.
케빈에대하여의 원제에는 케빈이란 이름 앞에 ‘we need to talk about’ 이란 수식이 붙는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뒤로 영화의 원제를 꼭 찾아보곤한다. The worst person in the world. 최악. 때론 내 힘에 부치는 어떤 상황이 온다면 최선은 무엇이고 그 반대는 무엇인지, 정말 바닥이라 생각될 땐 최악을 면하는 선택만을 계산해보기도 했는데 어느샌가 그 둘이 공존할 수 있단 사실을 알아버렸다. 특히 정답이 없는 선택에선, 내가 생각한 최선와 최악은 한끝차이였다. 정반대로 보였던 것들이 사실은 가장 가까운 존재이자 동일한 감정이란걸 깨달으면, 미궁속으로 빠지고 있는 누군가의 고난을 온마음 다해 응원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된다. 저질러버려 주세요. 바닥이라 생각한다면 그 바닥을 즐겨주세요. 그리고 잠시 떨어져있자. 내 시간을 갖자.
최근 보름동안 행간에 대한 파악이라는 표현을 참 많이 들었다. 보이지 않지만 전달해야 하는 것, 읽어내야 하는 것. 어떤 시각에선 일부러 보이지 않게 하는 것. 어떻게든 감춰보는 것. 그럼에도 여지를 준다면 표정과 말투 비언어적인 요소들. 안녕하세요 한마디엔 오늘의 내 기분과 때론 방어적인 태도 혹은 당신에게 열려있음을, 함께하자는 마음이 담긴 눈빛과 말투. 여러 명의 술잔을 정신없이 부딪힐때 잔이 아닌 눈과 눈이 마주친다면 짧은 찰나 같은 공간에서 우린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음을 느끼는 맑은 소리. 피하거나 지키거나. 부엌의 불을 켜고 시간을 멈춰버린 율리에는 그제서야 정리되지 않은 관계의 깊이감을 파악하게 된걸까. 나는 지난주 누군가의 눈빛과 말투에서 직감적으로 짧지만 깊던 내 고난과 역경의 굴레에서 비로소 나왔음을 느꼈다.
이건 감상평이 아니다. 난 영화를 보며 크게 두 명의 인물이 떠올랐고 한명은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지금쯤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겠다. 잘 살고 있길 바란다. 한명은 도대체 내 머릿속을 왜자꾸 침범할까 싶을 정도로 나와의 접점이 얕은 사람이다. 사적으로 얽혀있는건 0에 가까운데 사람자체보단 종종 나눈 대화가 떠오른 쪽이 맞겠지. 별다른 감정은 없다. 또다시 상상을 하곤 해. 현실적인 사고는 잠시 꺼두고 내일부터 해보자고. 최악을 면하지 않으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