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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한노을 Oct 03. 2022

계절마다 떠오르는 장소가 있나요?

가을의 북유럽을 회상하며.


손끝 발끝으로 느껴지는 약간의 공허함과 숨을 들이마시며 깊은 찬 공기에 가을을 느껴버렸다면 떠오르는 장소가 있나요. 가득 만끽하고 싶은 계절, 매번 떠오르는 건 북유럽이다. 3년 전 내 가을을 가득 채웠던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그리고 영국. 그곳에서의 매일은 계획하지 않고 최대한 눈길과 발길 닿는 곳으로 라이프스타일을 즐겨보자는 마음이 컸지만, 어쩌면 오랜 시간 계획된 여행이었다. 어릴 적부터 거긴 뭐가 그리 행복하길래 행복의 나라라고 불리는지, 텔레비전보단 눈앞의 레고가 재밌었고, 우유 치즈 요거트. 유제품이라면 밥도 굶을 수 있는 내게 덴마크는 20대 꼭 한번 가봐야 하는 나라였다. 가본 적 없지만 가장 그리운 장소를, 가장 좋아하는 계절에 즐겨 보자-로 시작됐다. 휴학을 하고 두세 탕 알바를 뛰며 돈을 모으고, 여행 계획이라기보단 그냥 덴마크를 포함한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스물셋 나는 나름의 취향이 확고해지던 시기였고, 어떤 결의 삶을 살고 싶다는 가치관이 형성될 즘이었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 해외를 나가본 해였다. 막연하게 나라별로 두 가지 키워드를 정했다. 덴마크의 휘게라이프와 레고, 스웨덴의 피카타임과 이케아, 핀란드의 산타마을과 카모메식당, 영국의 뮤지컬과 러쉬. 북유럽의 라이프스타일이 궁금했고, 나라마다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었다. 기다리던 덴마크에 가장 오래 머물렀고, 멀리까지 간 게 아쉬워 런던을 끼웠다. 이 정도 계획을 컨셉이라 말할 수 있겠으나 유명한 명소 위주의 여행을 하고 싶진 않았다. 원래도 한국인이 북유럽에는 잘 가지 않는 데다, 휴학을 하고 휴가철이 아닌 가을 북유럽을 택했으니. 그곳에서 자연스러운 척, 거만하게 즐기기 적합하다고 생각했지. 나라 이동을 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곤 그곳에서 아주 평범한, 내겐 특별한 에어비앤비로 모든 숙소를 예약했다.


이것은 여행일기가 아니다. 여행정보 제공 글도 아니다. 그저 코끝으로 느껴지는 계절의 감각에 내 장소를 회상하는 주절거림. 낯설고도 설렘을 느끼며 가을을 꽉 채워 돌아다니던 그때로부터 용기를 찾아오는 과정. 현재 내 가치관을 더 단단하게 형성해 준 근본을 떠올리는 시간. 일상을 내려두고 잠시 떠나는 의미의 여행이 아니라, 익숙한 삶의 조각을 새로운 공간에서 채워 넣는 시간. 평소 미술관에 가지 않는 사람들이 관광지에서는 꼭 가는 이유가 뭘까 한참을 고민했다. 고민의 끝은, 그냥 그런가보다. 난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내 삶과 전혀 다른 곳에서 같은 패턴의 하루를 지내본다는 건 꽤 새로운 주인공이 된 것 같았으니까. 가령 낯선 나라의 영화관에 들어가 영화를 본다거나, 로컬 카페에 들어가 하루 종일 일기를 쓰는 일.


폭우와 태풍이 지나가면 보통 추워지곤 한다는데, 그래서 9월 초 힌남노가 지나감과 동시에 여름 옷을 다 넣어버렸는데 이상하게 9월 말까지 더운 날씨가 지속됐다. 불안했다. 이러다 가을 없이 그냥 겨울이 와 버릴까 봐. 살짝 덥지만 꿋꿋이 가을 셔츠와 니트를 입고 다녔고, 곧 추워지겠지만 이거 안되겠다 싶기 전까진 가을이라고 착각할래. 해가 바뀌든 달이 바뀌든 숫자보단 코로 느껴지는 공기의 변화에 더 민감해졌다. 이거 가을 냄새라고, 삼 년 전을 떠올리며 덴마크를 그리워하는 계절이 왔다고. 모두가 바삐 살아가는데 나 하나쯤이야. 각자의 추억과 상상에 빠져 사는 일, 계절에 깊숙이 침투한 감각을 마주해버리며 유난떠는 시간. 하나씩 꺼내며 더 즐기려고요. 늦기전에 만끽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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