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북유럽을 회상하며(1) 덴마크.
낯선 곳에서 낯설지 않은 척하는 움직임에 설렌다. 가본 장소를 한 번 더 가는 걸 좋아한다. 어제보단 이곳을 잘 안다는 거만한 여유로움, 에코백을 매고 천천히 둘러보는 로컬 마켓, 구글맵을 열지 않아도 버스 방향쯤은 알고 있다는 발걸음, 그리고 천천히 돌아오는 산책길. 덴마크에 갔을 땐 센트럴역 근처가 아닌 외곽에 위치한 에어비앤비 숙소를 잡았었다. 첫날 숙소를 찾을 때까지만 해도 길의 기준점이 되었던 마트에서 다음날부턴 저녁을 위한 빵과 치즈 과일을 샀고, 호스트의 자전거를 빌려 내 동네인 듯 두어 바퀴를 돌았다. 간단하게라도 요리를 해먹는다는 것. 과일을 씻어 치즈와 함께 발사믹 소스를 뿌리는 가벼운 행위일지라도, '이 공간에 내 하루가 있다는 것' 따위를 실감하기 가장 좋았다. 뽀득한 설거지를 끝내고 커피와 함께 일기를 쓰는 것. 빨래를 널어두고 거실의 사진집을 보는 것. 해가 질 시간 발코니로 나가 빨간 지붕을 내려다보는 것. 그리고 포근한 이불로 들어오는 것.
일주일동안 두번이나 루이지애나 미술관에 갔었다. 가장 큰 이유는 머릿속에 계속 맴도는 피필로티리스트의 미디어아트 작품 때문이었고 두 번째 이유는 탁 트인 야외 잔디밭과 거기서 보이는 바다 때문인데, 이 잔디밭에서만 한 시간을 앉아 있었다. 세 번째 이유를 둘러대보자면 미술관이 꽤 멀리 위치해있기 때문에 센트럴역에서 열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열차에 앉아있어야 하는 40분가량의 창밖 보는 행위가 즐거웠다. 돌아오는 저녁 쌀쌀해진 공기에 커피를 테이크아웃하고 또다시 열차를 기다리는 것도. 9월에 안 왔으면 어쩔뻔했을까-를 하루에 다섯 번 정도 생각했다. 미술관 잔디밭에는 남매로 보이는 어린아이 두 명이 데굴데굴 몸을 굴리고 있었다. 어른들 각자의 대화가 웅웅거리는 배경음악처럼 들렸고 까르르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또다시 잔디밭 위로 올라가는 힘찬 걸음걸이가 아직도 머릿속에 맴돌곤 한다.
첫 집에서 사흘을 보내고, 다른 에어비앤비로 옮겼다. 참 낯설었는데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준 공간으로 남아있다. 처음 발 디딜 땐 노르딕 인테리어에 설레다가도 밝은 조명 하나 없는 방이 밤마다 무섭게 느껴졌다. 포토그래퍼가 직업인 호스트는 개인 일정으로 삼일간 집을 비울테니 나보고 자유롭게 공간을 쓰라고 했고, 넓디 넓고 어두운 그 집에 나만 있다는 사실이 유난히 더 헛헛했다. 하지만 아침이 되니 감탄할 정도의 채광이 집 전체로 들어왔고 전날 밤까지 낯설었던 원목 가구와 어두운 청동 소품에 반사되는 빛이 참 아름다웠다. 짙은 원목 가구와 채도낮은 패브릭의 노르딕 인테리어, 곳곳에 붙어있는 호스트의 작업 사진과 디자인 매거진, 이때 즐겨 들었던 시가렛애프터섹스의 헤븐리, 매일 아침 내려마시던 커피, 어둠에 반항하며 매일 밤을 함께한 써머스비 맥주, 와사 크래커와 모짜렐라 치즈.
덴마크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빠지지 않는 건 캔들이었다. 카페에 들어가도, 레스토랑에 들어가도, 심지어 패스트푸드점 테이블에도 캔들이 있었다. 초가 켜진 무드를 좋아하지만 불이 붙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강박과 걱정에 평소엔 워머를 쓰거나 인센스를 태우곤 했었다. 코펜하겐에서 즐겨 방문하던 브런치집이 있는데,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불안감이 없다고? 생각될 정도로 입구부터 테이블, 창가 식물 옆, 메뉴판과 빌즈가 잔뜩 꽂혀있는 카운터까지 캔들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트레이나 홀더 없이. 한국이라면 흔히 말하는 SNS용 핫플레이스 사진에 최적화 된 인테리어를 자아내느라 캔들을 곳곳에 두겠지만 절대 불을 붙이지는 말라는 경고메시지가 붙어있었을 텐데.
나에게만 낯설었다. 그곳에선 익숙했다. 깊숲이 자리잡은 어떠한 분위기, 곧 라이프스타일이 되며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내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