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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형준 Mar 09. 2024

프로의 세계에서는 역시 ‘한 우물’만 파야 합니다

-은가누와 조슈아의 복싱을 보면서

프로복싱 헤비급 세계 챔피언을 지냈던 안소니 조슈아와 종합격투기 선수 프란시스 은가누의 복싱 경기(10라운드)가 한국 시간으로 9일 오전 9시 30분쯤 열렸습니다.      


조슈아가 은가누를 2라운드 실신 K.O.로 이겼습니다.     


은가누는 종합격투기 단체 UFC 헤비급 챔피언이었습니다. 압도적인 힘과 펀치력을 바탕으로 경기를 했기에, ‘그를 이길 수 있는 영장류는 고릴라밖에 없다’는 평을 들었던 선수입니다. 하지만 낮은 파이트 머니 때문에 UFC 챔피언을 반납한 뒤 지난해 10월 29일 헤비급 세계 챔피언인 ‘집시 킹’ 타이슨 퓨리와 10라운드 복싱 이벤트 매치를 가졌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무리 압도적인 종합격투기 챔피언이더라도, 난생 처음 프로 복싱을 하는 겁니다. 그것도 세계 챔피언이랑.      


저를 포함, 숱한 사람들은 은가누가 퓨리에게 ‘맞아 죽을 것’을 예상했습니다. 결과는, 은가누가 3라운드에 퓨리를 다운시키는 등 선전한 끝에 1 대 2로 판정패했습니다. 복싱계로서는 수치라고 할 만한 결과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은가누는 ‘복싱 2전째’에 전 챔피언 조슈아와 경기를 갖게 된 것입니다.      


이번에는 여론이 달랐습니다. 조슈아는 여러모로 볼 때, 은가누가 석패했던 퓨리보다 약한 선수였기에, 적지 않은 이들이 은가누의 케이오승을 예상했습니다.      


물론 도박사들의 예측은 달랐습니다. 외신은 ‘조슈아에게 350달러를 걸어야 100달러를 벌 수 있고(‘-350’으로 표현), 은가누에게 100달러를 걸면 275달러를 벌 수 있다(‘+275‘로 표현)’고 보도했습니다.      


어쨌든 지난해 10월, 퓨리와 은가누가 했던 경기 예상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은가누에게 ‘호의적’이었지요.     


막상 뚜껑이 열리니...     


일방적이었습니다.     


1라운드에 은가누가 공세적으로 나섰지만 1라운드 종료 40초를 남기고 다운을 당했습니다. 페이크 성 잽에 이어 오른손 주먹에 턱을 맞고 다운. 카운트 8에 일어나면서 1라운드를 마칩니다.     

2라운드는 일방적이었습니다. 라운드 종료 1분을 남기고 스트레이트와 훅 컴비네이션을 맞고 은가누 다시 다운. 은가누는 겨우 일어났지만 조슈아의 오른손 주먹에 결국 실신 K.O.됩니다. 2라운드 2분 38초 경기 종료.     

애초 저는 조슈아의 판정승을 예상했습니다. 은가누가 퓨리에게 1 대 2 판정으로 패하는 등 선전했지만,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퓨리의 ‘경적(輕敵)’의 결과라고 봤습니다. 이벤트성 매치로 돈이나 벌려는 퓨리와 달리 조슈아는 철저한 준비를 하고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고, 조슈아의 맷집이나 주먹이 압도적이지는 않은 이상, 조슈아가 은가누에게 ‘주먹 맞대결’을 펼칠 것이라는 느낌도 들지 않았습니다. 조슈아가 ‘짤짤이 펀치’로 은가누에게 기술 복싱의 참맛을 보여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한데, 결과가 이렇게 나왔네요. 아무리 압도적인 역량을 가졌어도,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사람에게 ‘초짜가 대드는 것’은 미친 짓입니다.      


경기 결과는 보면서 든 생각입니다.      


  1. 몇 세기에 나올 천재가 아닌 이상, 프로 페셔널 세계에서는 한 우물만 파야 챔피언에 오를 수 있다.     


  2. 종합격투기는 복싱 등 입식 타격기와 유도 레슬링 등 붙잡고 싸우는 기술(그래플링)이 종합된 경기이다. 종합격투기 챔피언이라고, 특정 격투기 종목에서 챔피언‘급’이 되는 것은 절대로, 절대로 아니다.      


  3. 이는 스포츠만이 아닌 그 어느 분야에서든 마찬가지이다. 통섭도 좋고 뭐도 좋지만, 세부나 각론을 궁극까지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총론적인 것을 쉽게 말하려는 태도는 지양해야 한다. 각론에서 뒷받침되지 않는 총론은 그만큼 허술할 수밖에 없다.     


 하긴 이는 제 성향일 수도 있습니다. 3류였지만 기자를 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횡행하는 것, 너무 싫었거든요. 제가 ‘거대 담론’을 이야기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영국 가디언의 기사를 첨부합니다.      


https://www.theguardian.com/sport/live/2024/mar/08/anthony-joshua-francis-ngannou-boxing-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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