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누군가 길을 건너길 기다린다면 나는 늘 멀찍이서 멈추는 편이다. 횡단보도는 보행자 우선 구역이므로 멈추는 것이 당연하지만, 덩치 큰 무쇠의 기계를 끌고 먼저 가고 싶다는 조바심을 이겨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법, 규율, 규칙, 금지, 규제를 담고 벌칙의 성질을 가진 빨간불의 강제가 없이 힘을 다스리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힘을 가진 자가 힘을 쓰지 않으려거든 반드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그러한 습성을 본능적으로 알기 때문에 보호받아 마땅한 곳에서 조차 차보다 먼저 멈춰 서기 마련이고, 거대한 힘에 치이지 않기 위해 잔뜩 긴장을 하며 발을 구른다. 그럴 때 속도를 줄여 먼저 멈춰서는 차를 보면 사람들은 보통 놀라는 표정을 한다. 먼저 갈 줄 알았는데 멈췄네? 의아하다는 식이다. 그러고 나면 그들 중 열의 여덟아홉은 횡단보도의 길이가 길든 짧든 상관없이 종종걸음으로 길을 지나거나 뛰어가곤 한다.
나는 바로 그 순간 길을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이 사랑스럽다고 느낀다. 당연한 권리를 누리며 천천히 건너도 좋은 곳에서 예기치 못한 행운을 만난 듯 놀라워하고 고마워하는 순진한 마음이. 또 드물게 호의를 보낸 사람에게 보답하듯 빨리 길을 건너 차가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주려는 그 다정이 참으로 기쁘다. 차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연약한 사람이 언제든 폭주할 수 있는 기계에게 보내는 다정함이 꼭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아 마음이 울렁인다. 연약함만이 건넬 수 있는 힘이고 위로다.
그래서 나는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에서 멈춰 선다. 고개를 까딱이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람, 유모차를 끌고 미안하다는 듯 지나는 아이 엄마, 저보다 큰 가방을 메고 휘청이며 건너는 초등학생, 바쁜 와중에 그나마 시간을 벌었다며 뛰어가는 청년, 차가 멈춘 것이 맞나 한참을 고민하다 후다닥 지나는 어르신들 모두에게 위로받기 위해서. 그들의 종종이는 발걸음이 내게는 하루치의 다정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까.
상담사로 살며 늘상 찾아보고 공부하는 영역이 정서 문제와 관련하다 보니 세상을 보는 시선이 박해지는 때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문제로 보게 되기도 하고 이 사람 저 사람 전부가 금쪽이처럼 보이는 때가 많아서 그렇다. 그래서인지 가끔은 보통의 좋은 사람들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한다. 사람 우선의 횡단보도에서도 기다리는 차 안의 사람을 배려하는 이들이 이렇게나 많은 것을. 세상은 아직 따뜻하다는 말이 인터넷 미담으로 신화처럼 떠도는 것이 아니라 실은 주변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따듯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