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장꼬장한 말투로 조목조목 따지는 것만 같은 제목을 대놓고, 저자는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이 심리학적으로 적확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인간을 집요하게 연구하고 파헤치는 심리학으로도 인간은 완벽하게 설명되지 않으며, 모든 인간을 알맞게 정의하거나 맞출 수 있는 마스터 피스 따위는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어떤 것도 맞다, 틀리다로 이분할 수 없다는 말이다.
뉴 미디어의 등장으로 즉시성과 민감성 높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놈의 도파민! 도파민의 세상이다. 심리학은 동시대의 흐름 속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학문 중에 하나이다. 이렇게만 하면 내 아이가 말 잘 듣고 똑똑해질 것이며, 이렇게만 하면 가스라이팅을 벗어날 수 있고, 이렇게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는 정답지가 도처에 깔렸다. 몇 가지의 매뉴얼만 익히고 나면 세상만사 모두 해결되리라는 확언이 일상을 장악한다. 여기에 저자는 묻는다. 심리학을 기반으로 하여 실험 결과에 따른다는 이 수많은 메시지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냐고. 또한 그 실체는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검증된 것인지 검증했느냐고 따져 묻는다. 그것은 정말 맞느냐고. 이토록 빠르고 떠들썩한 세상에서 느리게 움직이며 뒤늦게 결과를 내놓는 학문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근본적인 질문으로 날카롭게 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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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심리학 관련 저서의 대부분은 개념을 서술하고 해당 개념을 이해시키기 위한 실험과 결과를 뒷받침하는 사례를 인용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무엇이 어떠하다는 정확한 증거는 어디에도 없고, 부분적으로는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반대의 경우도 많다는 식이다. 딱 떨어지는 명쾌한 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다만 틀렸거나, 수정되었거나, 너무 오래되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거나, 통제된 실험실에서만 먹히는 심리학적 명제들에 대하여 오해와 편견을 풀고 정정할 뿐이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제한된 정보의 일부일 뿐이며, 언제든 전복될 수 있다는 미완의 태도. 심리학이 실험과 수치로 밝히는 것은 ‘상관’ 일뿐이지 ‘인과’가 아니라는 것을 거듭 밝히며 알지 못함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간이란 무엇보다 가장 심오하고 복합한 존재이면서도 스스로를 객관식 보기처럼 나열하기 위해 분투한다. 자기와 타인을 재단하고 유목화시켜 어떻게든 빠르게 퉁치고 넘어가려는 세상에서 저자가 지속적으로 보이는 알지 못함의 자세는 어쩌면 인간을 가장 고귀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시선이다. ‘의심 많은 심리학자’라고 자기를 소개하는 것 역시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인간에게 감히 정답을 들이대지 않기 위하여 끊임없이 경계하는 겸손이다.
이렇듯 겸손한 의심을 품으며 낮은 태도를 보이던 저자가 그럼에도 ‘이해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마음의 병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것이다. 마음의 병을 가졌거나 신경학적 문제로 우리와 조금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관적 해석 없이는 객관적 실제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세계를 이해받기 위해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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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며 중립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는다. 중심을 잡고 균형을 맞춘다는 것은 많은 것을 알고도 모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자주 일희일비하며 이랬다가 저랬다가 양극을 오가는 내가 상담사로 살아가기 위해 표지 속 남자에게 배워야 할 것은 아마도 일자로 굳게 다문 입이다. 무엇도 드러내지 않은 입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이야기들이 견디고 있을지. 그의 무심한 표정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진짜 애정은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