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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롱언니 Dec 05. 2023

1. 함께여서 행복했어

재롱은 내가 12살이던 때에 만나 14년을 함께 보낸 반려견이다. 

첫만남은 길거리에서였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할머니를 따라 시장에 갔다.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동생은 할머니를 따라 한바퀴를 쭉 돌고 큰 길가를 지나고 있는데 웬 할아버지가 조그만 아기 강아지 대여섯을 데리고 나와계셨다. 할머니의 지인도 그 자리에 계셨는지 자연스레 웬 강아지냐며 대화를 이어갔고, 나는 활발한 강아지들 사이 혼자 모퉁이에 가만히 앉아있는 재롱을 만났다. 2009년 8월 7일의 일이다.


알고 보니 할아버지가 키우는 강아지가 새끼를 낳았고, 감당이 되지 않아서 키울 분들을 찾기 위해 데리고 나왔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사이 재롱을 안아들어버린 나는 데리고 가고 싶다고 했고, 어떻게 키울 거냐며 할머니랑 실랑이를 하다가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 다 그렇듯 산책도, 목욕도, 배변패드도 다 내가 책임지겠다며 데리고 왔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하고 이런 식으로 반려동물을 입양한다는 건 절대 지양해야 한다.) 집에 오자마자 할머니가 너, 재롱이 할래? 바둑이 할래? (털이 갈색, 흰색 섞여있다.) 하다가 재롱 많이 부리라며 재롱이가 됐다.

재롱은 소심한듯 무심한 성격을 가졌고, 다른 강아지들과는 확실히 다른 유별나고 독립적인 강아지였다. 


준비 없이 데려온 강아지를 제대로 양육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집을 비울 때면 현관의 신발들을 집 안으로 끌어다두고, 문이란 문을 다 긁어버리고 벽지까지 뜯어버렸다. 이갈이를 해서 그런 거라는 것도 나중에야 알았다. 정말 무지한 사람들이었다.

재롱에게도 답답한 생활이었을 거다.

아기 강아지는 태어나고 일정 시간동안 어미와 교감하면서 나름의 가정교육을 받는다고 했다. 그 과정이 어떤지는 모르지만 어미와 일찍 떨어진 재롱은 분명히 교육이 부족했으리라 짐작한다.

재롱이 처음 계단을 오르던 날이 아직도 생각난다.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는데 계단을 무서워하던 재롱은 다른 강아지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걸 빤히 보더니 견생 첫 계단을 올랐다. 

산책 횟수도 현저히 적어서 여름에 문을 열어둘 때면(지금 생각하면 위험하지만 그때는 더우면 문을 열어두는 게 당연했다.) 무작정 뛰쳐나가 집 앞에 놀이터와 이어진 작은 동산을 종횡무진했다. 그때는 산책을 시켜주지 않아 그런 줄도 모르고 어린 나는 애만 태웠다

계단 오르내리는 걸 배우고 나서 시작된 재롱의 작은 외출이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어서야 할머니가 매일 산책을 시켜주기 시작했고, 재롱의 작은 외출은 거의 사라졌다. 

많이 먹지만 늘 말라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보면 굶기나 .. 싶을 정도의 몸매의 소유자였고, 그만큼 날렵하고 민첩해서 늘 그렇게 곁에 있어줄줄만 알았다. 내가 중학생 때도, 고등학생 때도 어제가 오늘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늘 같은 모습으로 용맹하게 곁을 지켜줬다.


내가 20살이던 어느날 할머니가 재롱의 눈이 이상하다고 했다. 병원에서 백내장 진단을 받았고 다음 해에는 갑자기 사료도 안 먹고 복통을 호소하더니 자궁축농증, 복막염 진단을 받았다.

내가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는 게 피부로 와닿았던 시기이다.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작은 동네 병원이 아닌 24시 큰 동물병원에 가서 입원도 하고 수술도 했다. 병원에서는 상태가 꽤나 심각해 수술하다가 잘못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인생에서 그렇게 울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정신없이 울다가도 내가 정신을 차려야지 하면서 머리를 차갑게 하길 반복하던 시기였다.


다행히 재롱은 다시 건강을 되찾았고 그 때는 벌써 재롱 나이가 9살이었다. 남들이 노견이라고 하는 나이였다. 

그동안 내가 재롱을 너무 익숙하게 대하며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걸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하루 한 번은 꼭 재롱과 산책을 했고, 조금 더 많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서 겁 많은 재롱이 버거워하지 않는 선에서 반려동물 동반 가능 카페와 꽃들이 예쁘다고 유명한 공원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재롱이 11살이던 어느 날 희귀병인 ‘인슐린 노마’ 진단을 받았다. 인슐린 노마는 인슐린이 과다 분비돼서 수시로 혈당이 떨어지는 병으로 당뇨보다 훨씬 위험한 병이었다.

경련이 있어서 병원에 갔는데 큰 병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수의사 생활을 하면서 두어마리밖에 보지 못한 희귀병이고 보통은 남은 수명이 길어야 1년이라고 했다. 그렇게 또 병원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재롱에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 갔고, 혈당 그래프를 작성하려 2시간에 한 번씩 혈당을 쟀고, 산책은 10분 이상 하지 못했고, 사료와 간식은 시간에 맞춰 새벽도 마다않고 4-5시간마다 급여했다.

병원에서는 1년을 넘긴 건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이 3년을 이어가던 2023년 4월 10일 재롱은 갑작스레 강아지별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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